골목 상권의 명과 암

▲ 서울 북촌 한옥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대 웨딩거리, 종로 귀금속거리 등 서울의 대표 ‘특화거리’가 힘을 잃고 있다. 반면 이태원 경리단길, 서울 서촌 등 ‘이면(골목) 상권’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당연히 몸값도 올랐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임대료가 급격히 상승하자 힘에 부친 영세상인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있어서다.

이대 웨딩거리나 아현동 가구거리, 종로 귀금속거리는 서울의 대표적인 ‘특화거리’로 꼽힌다. 수십년 전부터 형성된 상권으로 같은 업종의 점포가 모여 있는 곳이다. 하지만 명성은 예전만 못하다. 반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지역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이대 앞 상권은 한때 결혼을 앞둔 젊은 여성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새로운 디자인 트렌드를 이끌었고, 패션에 민감한 여성이라면 이곳을 둘러보지 않고는 결혼식을 준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손님들의 발길이 차츰 줄면서 100여개에 달하던 웨딩숍은 하나 둘 다른 업종에 자리를 내줬고, 이제는 30여개만 명목을 잇고 있다. 1998년 붙은 특화거리란 이름도 무색해졌다. 북아현동 가구거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때 권리금까지 얹어 주며 거래가 이뤄지던 상가 시세도 이제는 옛말이 됐다. 그동안 탄탄한 수요층과 함께 인근 지역 대비 높은 상가시세를 유지하던 특화거리였으나 이제는 줄어드는 상권 때문에 빈 점포가 넘쳐나고 있는 실정이다.

 
호황기일 때 충무로 애견거리 내 상가 권리금은 보통 1000만원에서 많으면 5000만원 이상을 오갔다. 특화거리라는 프리미엄으로 상가 임대료 외에 웃돈을 얹어야 가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권리금이 붙지 않는다는 게 충무로 중개업소의 이야기다. 종로구 종로3가 일대에 밀집한 귀금속거리도 충무로 애견거리와 상황은 마찬가지다. 매물로 나온 귀금속 상가 물량은 1년 전 대비 30%에서 많게는 40%까지 증가했다. 통상 5000만~1억5000만원 이상 권리금이 붙던 가게도 이제는 들어오고 싶어 하는 세입자가 없을 정도로 상권이 약화됐다. 월세도 하락하는 추세다. 과거 보증금 6000만원에 월 임대료 120만~140만원이던 상가는 현재 보증금 4000만원에 월 임대료 110만원으로 내린 상태다. 건물주가 20% 정도 할인된 임대료로 재계약을 하자고 제의할 정도다.

반면 강남역 언덕길, 이태원 경리단길 등 ‘이면 상권’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사례를 보자. 서울 삼성동 소재 금융회사에 다니는 30대 남성 A씨. 그는 퇴근 후 신사동 가로수길을 즐겨 찾는다. 지인과 가로수길 내 유명 음식점과 이국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맥주집에서 음식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소개팅도 자주한다. 젊은 여성들이 가로수길을 선호해서다. 이면 상권에 투자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월 임대수익 400만원인 용산동 해방촌길 소재 지하 1층, 지상 3층의 52평 건물을 18억원에 매입한 B씨는 이 건물을 리모델링한 후 월 임대수익으로 750만원을 챙기고 있다. 투자수익률은 기존 2.8%에서 5.3%로 껑충 뛰었다.

소비패턴이 바꿔 놓은 상권

대표적인 이면 상권으로는 역삼동 강남역 언덕길ㆍ삼청동 북촌 한옥마을ㆍ방배동 사잇길ㆍ서교동 카페거리ㆍ용산동 해방촌길ㆍ이태원동 장진우거리ㆍ이태원동 경리단길ㆍ한남동 독서당길을 꼽을 수 있다. 이면 상권은 소득 상승과 함께 이색적인 분위기와 삶의 여유ㆍ낭만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발달했다. 특히 20ㆍ30대를 중심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블로그ㆍ스마트폰 등을 통해 맛 집 또는 최신 유행을 반영한 패션 편집숍 정보가 사람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사람들 발길이 잦아지면서 이면 상권 몸값도 올랐다. 이태원 경리단길의 경우, 1년 전 3.3㎡(약 1평)당 5000만원에 거래되던 곳이 지금은 7000만원까지 뛰었다. 서교동 카페 거리도 1년 전에는 3.3㎡(약 1평)당 4000만원이었으나 5000만원 안팎으로 시세가 형성됐다. 삼청동과 가로수길 상권 중 인기가 많은 지역은 3.3㎡(약 1평)당 1억원 중반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강남역 언덕길은 3.3㎡(약 1평)당 7000만원 안팎, 서교동 메인 카페거리는 8000만원, 삼청동 북촌은 1억원을 호가한다.

▲ 종로 귀금속거기 상권이 상가에 들어올 세입자가 없을 정도로 약화됐다. [사진=뉴시스]
그러나 시세가 오르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무조건 돈을 벌면 된다는 ‘묻지마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서다. 돈이 된다 싶으면 자본으로 무장한 대형 프랜차이즈 등 법인이 대거 진출해 임대료가 급격히 상승하고,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상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상권이 흔들리고 있다. 부동산 가격은 기대수익률이 선先반영돼 실제 가치보다 비싼 게 보통이다. 상권 성장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비싸게 취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리단길이 유명해진 후 이곳 상인들은 장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입을 모은다. 매출은 몇 년째 제자리 수준인데 임대료 등 제반 비용은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인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경리단길 주요 상가의 평균 임대료는 최근 5년 기준 20~30% 올랐다. 특히 경리단길 초입부터 삼거리까지 100m 남짓한 주요 상가는 1~2년 새 최대 2배 가까이 임대료가 치솟았다.

부동산 투자가 몰리면서 20억~30억원 건물이 50억원대에 거래되는 등 높은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게 되자 건물을 팔고 동네를 떠난 건물주도 늘었다. 도로를 낀 건물은 대부분 1~2년 새 건물주가 바뀌었다. 기존에 있던 소규모 자영업자는 더 싼 임대료를 찾아 중심 골목이 아닌 더 외진 골목과 주택가로 밀려났다.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일종의 투자 학습효과 때문이다. 건물주나 임차인이나 상권이 활성화되면 거품이 꺼질 거라는 불안 심리가 생긴다.

임대료 급증, 상인 부담 느껴

건물주는 가격이 올랐을 때 되도록 팔려고 하고, 임차인은 임대료가 더 오르기 전 조금이라도 권리금을 챙길 수 있을 때 나가려고 한다. 서울 서촌도 마찬가지다.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서촌으로 불리는 이곳은 한옥마을 등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관광명소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내국인은 물론 외국 관광객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서촌 역시 상권 활성화와 더불어 동네슈퍼ㆍ세탁소 등 영세세입자가 쫓겨나고, 술집과 커피숍이 우후죽순 늘어나며 경리단길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장경철 부동산센터 이사 2002c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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