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러시아 역발상 전략’

원자재 가격하락, 루블화 가치폭락의 영향으로 러시아 자동차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GM, 포드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생산축소, 가격인상 등 전통적인 방어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와 기아차는 그렇지 않다. 톡톡 튀는 마케팅을 선보이면서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시장침체기를 공격적으로 뚫고 있다는 거다.

▲ 러시아 자동차 시장은 독일을 제치고 유럽 1위의 시장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러시아 자동차 시장은 2000년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2008년엔 시장규모가 연 291만대 수준까지 커져, 309만대의 독일에 육박하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이 때만해도 러시아는 중국보다 매력적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요가 ‘반토막’ 나고 말았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는 2010년 3월부터 신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보조금은 신차 구매시 5만 루블(약 93만원)을 지원하는 폐차 인센티브로 보조금 지급 대상을 러시아에서 생산•조립한 차량으로 한정했다. 수입차에 부과되는 관세는 최대 100%까지 인상했다. 그 결과, 러시아 토종 1등 브랜드 아브토바즈(Avoto VAZ)의 판매는 순간적으로 2배까지 늘어났고, 러시아 시장도 빠르게 회복하기 시작했다. 실례로 2012년 러시아 신차 판매는 239만8000대로 독일의 308만3000대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엔 유로존 위기가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 사태, 원자재 가격 급락 등의 영향으로 신차 판매량의 감소세가 더 뚜렷해졌다. 특히 루블화 가치하락은 수입차에 치명적인 충격을 줬다. 루블화의 폭락으로 수입차의 가격이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생산하는 차량도 수입부품 의존도가 큰 탓에 가격상승을 피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주요 자동차 업체는 생산량을 축소하고 있다. 중저가 모델에 주력하고 있는 포드는 판매율이 78%나 줄어들어 감산을 고려 중이다. 아브토바즈는 1만3000명을 감원할 계획이고 GM은 오펠을 제외한 나머지 브랜드의 철수를 결정했다. 독일의 아우디와 인도의 재규어ㆍ랜드로버는 러시아 자동차선적을 중단했다. 폭스바겐은 공장 가동을 멈췄다.

가격인상책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GM은 오펠과 쉐보레의 평균가격을 각각 56%, 52% 인상했고, 포드는 45%가량 올렸다. 아브토바즈를 인수한 르노닛산ㆍ도요타ㆍ미쓰비시ㆍ닛산 등의 일본 업체도 평균 20% 이상 가격을 올렸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사정도 딱히 좋은 건 아니다. 201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주州 카멘카 지역에 연 15만대 규모의 생산공장을 구축한 현대차ㆍ기아차의 2012년 1분기 러시아생산법인(HMMR)은 매출과 순이익은 각각 2조8549억원, 2631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글로벌 메이커 ‘러시아 엑소더스’

하지만 지난해 3분기 기준 매출과 순이익은 각각 1조8267억원, 757억원으로 감소했다. 러시아판매법인(HMCIS)의 매출도 같은 기간 3조9002억원에서 2조4818억원으로 줄어들었고, 순이익은 적자(-43억원)로 돌아섰다. 그럼에도 현대차와 기아차는 경쟁사와 달리 가격인상을 자제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늘려가는 정책을 쓰고 있다. 그 결과, 현대차ㆍ기아차는 지난해 시장점유율 15.3%를 기록, 1위 아브토바즈(15.8%)를 턱밑까지 쫓아갔다. 올 1ㆍ2월 시장점유율은 두달 연속 20%를 웃돌았다. 자동차 판매 1위를 차지했던 토종브랜드 라다(Lada)를 따돌릴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이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시장침체와 루블화 약세의 영향으로 수출 물량을 줄였지만 현지생산 차종인 ‘솔라리스(Solarisㆍ액센트)’와 ‘리오(Rioㆍ프라이드)’를 적극적으로 판매했기 때문이다.
 
현대차ㆍ기아차의 역발상 전략도 시장을 흔들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12일 모스크바 최대 중심지인 ‘노브이아르바트’ 거리에 문을 연 모터스튜디오는 외부에서도 실내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2층 구조로 디자인했다. 이 모터스튜디오는 현지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브랜드 인지도 향상에 한몫 톡톡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현대차ㆍ기아차의 시장점유율 상승은 의미가 상당히 크다. 현대차ㆍ기아차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에서 시장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던 건 시장침체기에 선보인 공격적 마케팅과 판매전략 덕분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자동차 시장이 지금은 어렵지만 전망까지 그런 건 아니다. 러시아는 여전히 독립국가연합(CIS)의 맹주다. 카자흐스탄ㆍ벨라루스 등 주변국가로 자동차를 수출할 수 있는 여건도 좋다. 아울러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지고 있는데다, 인구도 1억4000만명에 달한다. 러시아가 2020년 혹은 그 이전에 독일을 제치고 유럽 1위의 자동차 시장이 될 거라는 기대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환경은 러시아에 꾸준히 힘을 쏟아온 현대차와 기아차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장점도 많다. 현대차ㆍ기아차의 시장점유율은 2014년 연간 기준 15.3%, 올 1~2월 20% 이상으로 독보적이다. 현지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그만큼 높다는 거다. 이런 면에서 러시아 시장의 침체기는 현대차ㆍ기아차가 한번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원경 키움증권 연구원 heavychoi@kiwo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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