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 경영의 한계 그룹 곳곳에서 물이 샌다
옥중 경영의 한계 그룹 곳곳에서 물이 샌다
  • 성태원 대기자
  • 호수 135
  • 승인 2015.03.31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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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

▲ 최태원 회장은 현재 2년 2개월째 복역 중이다. 대기업 총수 중 최장기 복역 기록이다.[사진=뉴시스]
수감생활이 길어지면서 최태원(55) SK그룹 회장의 ‘옥중獄中 경영’에도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근 한 퇴임 CEO가 공개리에 인사 불만을 제기하고 나서 그룹의 체면이 확 구겨졌다. 주요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계속 좌절을 맛보는가 하면 계열사들의 경영실적도 많이 나빠졌다. 당국의 사정司正 칼날 앞에도 연이어 노출돼 ‘오너 부재 리스크’를 절감하고 있다. 옥중 권토중래捲土重來가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재계 순위 3위인 SK그룹에 최근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연말 퇴임한 문덕규(63) 전 SK네트웍스 사장이 일종의 인사 항의 메일을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이하 수펙스협의회) 의장과 SK네트웍스 전체 직원에게 보낸 것. ‘내가 왜 임기를 남겨 놓고 중도 퇴임해야 하는가(납득이 잘 안 된다)’라는 게 골자였다. 파문이 번지자 서로 오해였다며 없었던 일로 했다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SK 측에선 애써 해프닝으로 치부하려 들지만 재계에선 무척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오너십이 확실한 재계 상위 그룹에서 최고경영자(CEO)가 그렇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 오너(최태원) 공백 장기화로 인한 부작용의 하나라는 얘기가 그래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직 사장이 최 회장의 사실상 대리인인 김창근 수펙스협의회 의장에게 항의했다는 건 최 회장에게 한 것과 다름없다는 해석이다. 수펙스협의회는 지난 2013년 1월 최 회장의 복역에 따른 경영공백을 메우기 위해 SK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로 출발했다. 이 기구의 권위가 2년여 만에 뜻밖에 상처를 입은 꼴이 됐으니 옥중에서 이 얘길 들은 최 회장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자중지란自中之亂이라며 괘씸하게 여길 수도 있겠고, 자신의 공백을 메우기엔 이 기구가 역부족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영어囹圄의 몸인지라 달리 어떻게 할 수도 없으니 답답하기만 할 것이다.

 
최 회장은 2013년 1월 31일 징역 4년의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SK네트웍스 분식회계사건으로 2008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지 5년 만이었다. 첫번째 투옥은 비껴갔지만, 두번째는 피하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고, 대기업 오너들의 불법에 대한 사법당국의 입장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후 상고심에서도 형량이 낮아지지 않았고 구속은 계속됐다. 지난 1월말로 복역 2년을 채웠고, 현재 2년 2개월째 복역 중이다. 대기업 총수 중에서는 최장기 복역 기록이다.

그 전까지는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로 사면될 때까지 약 10개월간 복역했던 임창욱 대상 명예회장이 최고 기록이었다. 반환점을 돌긴 했지만 형기를 채우려면 내후년(2017년) 1월은 돼야 한다. 그동안 연말 가석방, 3·1절 특사 1순위로 꼽혔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을 등에 없고 한때 조기 가석방 분위기가 무르익었지만 불발에 그쳤다.

지난 연말·연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조기 가석방론에 군불을 땠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허창수 전경련 회장도 공개리에 간곡한 선처를 당부했다. 공교롭게도 대한항공 조현아씨의 ‘땅콩 회항’ 사건이 터져 대기업 오너들에 대한 국민 여론이 나빠진 게 악재가 됐다. SK그룹 주변에서는 8·15 특사를 기대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지만 예단은 금물이다. 돈이나 힘도 국민 여론이나 시대 흐름까진 못 바꾼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오너 장기화 부작용 솔솔
이런 가운데 재계 3위 SK그룹의 경영에 점차 구멍이 뚫리고 구심점도 약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짙어졌다. ‘최태원 부재 리스크’가 단적으로 드러난 곳은 M&A 시장이다. 최근 분초를 다투는 대형 M&A 경쟁에서 연이어 쓴잔을 마셨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나 그룹 경쟁력 보완이란 측면에서 빨간불이 켜진 것. 조 단위의 대형 M&A에서는 오너 변수가 80~90%를 차지한다는 게 정설이다.

SK그룹에선 그게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하순 SK네트웍스는 국내 1위 렌터카 업체인 KT렌탈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당초엔 렌터카 시장의 30% 상당을 차지하는 KT렌탈을 인수해 업계 1위로 우뚝 서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짰다. 하지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과감한 결단에 밀려 꿈을 접어야만 했다. 롯데가 막판에 1조원이 넘는 가격을 써내고 따 가 버렸다. 최 회장 수감 중 M&A 실패 사례는 더 있다. STX에너지, STX팬오션, ADT캡스 등의 M&A는 저울질만 하다 모두 무산됐다. 호주 유나이티드 페트롤리엄의 인수도 검토로만 끝났다.

글로벌 성장을 견인해 왔던 그의 장기 부재는 기존 사업체들의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력계열사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창사 37년 만에 처음으로 5317억원이란 대규모 적자를 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키웠던 SK하이닉스 정도만 반도체 경기 호황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상당수 계열사들은 글로벌 경영환경 악화로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 최근 문덕규 전 SK네트웍스 사장이 김창근(사진) 수펙스협의회 의장에서 ‘중도 퇴임 시킨 이유가 무어냐’는 내용의 항의 메일을 보냈다. 한편 총수 역할을 대신해 온 수펙스협의회의 권위가 무너진 게 아니냐고 지적한다. [사진=뉴시스]
지난 연말 50대를 주축으로 대대적인 사장단 물갈이 인사를 하는 등 새 출발에 나섰으나 실적 개선은 아직 미지수다. 최근 당국의 사정 칼날 앞에 연이어 노출된 것도 ‘오너 부재 리스크’의 한 단면이다. 지난 2월 14일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 도입 비리 의혹에 연루된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을 구속했다. 그와 함께 SK C&C 임원이던 K씨도 구속돼 귀추가 주목된다.

새만금방조제 건설과정에서 담합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이미 과징금을 부과 받은 SK건설이 또다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이는 공정위에 대한 검찰의 고발요청권 첫 사례가 되고 있다. 옥중 최 회장에 대한 세인들의 시선은 아직 동정론보다 비판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고액 배당 논란이 좋은 예다.

재벌닷컴이 10대 기업 총수들의 상장사 배당금 수령실태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최 회장(329억원)이 이건희 회장(1758억원), 정몽구 회장(741억원)에 이어 3위로 올라선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배당금 156억원에서 5년 만에 2배 이상으로 급증한 것. 구속 이후 경영 활동을 제대로 못한 그가 그렇게 큰 배당을 받은데 대해 따가운 눈초리가 없지 않다. 
 
 M&A 저울질만 하다 실패
옥중이지만 나름대로 이미지 개선에 애쓰는 흔적도 역력하다.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그의 관심과 노력은 사뭇 진지한 것 같다. 사회적 기업가 양성을 위해 사재私財를 털어 만든 ‘최태원 펀드(100억원)’가 최근 사회적 기업 5곳에 첫 투자를 했다. 지난해 10월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담은 책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1998년 부친 최종현 회장의 별세로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SK 오너로 등극했다. 젊은 3세 오너 경영자로 지내 오면서 2년이 넘는 수감생활까지 하고 있다. 이젠 그도 5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옥중에서 재계 3위 기업 오너인 자신의 인생과 SK그룹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됐는지가 궁금하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i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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