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열 박사의 슬로 경제학

▲ 지난 3월 13일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경제5단체장이 간담회를 가졌다. 공교롭게도 그 직후 기업사정 바람이 불었다. [사진=뉴시스]
경제란 안정감과 이윤 동기를 먹고 자라는 생물이다. 누가 이래라 저래라 어설픈 훈수를 두거나 느닷없는 공포감을 주면 움츠러들고 만다. 물론 부패 척결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도 때가 있다. 가계·기업·정부 중 지금 경제살리기에 가장 큰 역할이 기대되는 경제주체는 누가 뭐래도 기업이다.

지난 13일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경제5단체장의 회동을 보곤 왠지 조마조마한 느낌이 들었다. 예전처럼 경제계가 정부 입맛에 맞춰 응대를 하거나 아니면 묵시적인 동조라도 하는 모양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색해 하는 쪽은 오히려 정부였다. 호사가들은 정부의 ‘판정패’를 선언할 정도였다. 그날 의제는 임금 인상, 청년 일자리 창출, 투자 활성화 등으로 누가 봐도 수긍할 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수용 여부와 해법을 놓고 서로 엇박자를 냈다. 최 부총리가 임금 인상을 당부하자 박용만 상의 회장은 사실상 어렵다고 응수했다. “임금은 한번 올리면 잘 내려가지 않는 하방 경직성이 크기 때문에 (인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려와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답한 것. 경제학 강의에서나 들을 법한 용어까지 동원해 최 부총리의 주문을 거절한 모양새가 이채롭게까지 보였다.

경제단체, 임금인상 요구 거절

상의 박 회장뿐만 아니었다. 박병원 경총 회장도 “임금과 고용은 ‘트레이드오프(상충)’ 관계”라며 임금 인상 요구에 우려를 나타냈다. 임금을 올리면 고용이 줄게 된다는 논리였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법인세 인상 반대,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투자활성화를 위한 산업 현장과의 소통 강화를 각각 주문했다.  지엄한(?) 경제부총리 앞에서 민간 경제단체장들이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다니 시대가 변해도 많이 변했구나 싶었다. 최 부총리가 챙겨간 것은 고작 두가지였다. ‘대기업들이 협력업체에 적정 대가를 지급하도록 노력(납품가 인상에 협력)한다’는 다분히 선언적인 것과 적당한 시기에 골프 회동을 갖기로 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1라운드다. 2라운드는 공수攻守 주체가 바뀐 모양새가 됐다. 정부가 동시다발적 ‘사정司正 한파’라는 칼자루를 기업들에 휘둘렀다. 양측 회동을 눈여겨봤던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그러면 그렇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양측이 회동한 바로 그날 포스코건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단행됐다. 이어 한국석유공사와 경남기업의 해외 자원개발 비리 의혹으로 수사범위가 넓어졌다. 신세계그룹·동부그룹·SK건설·롯데쇼핑 등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경제계는 다음 타깃이 누가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청와대와 정부가 경제활성화에 적극 동참해 달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해 왔는데 갑자기 왜 채찍을 들고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20일 장관급 회의를 열고 10조원대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같은날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법무부와 국세청, 공정위, 금감원, 경찰청 등 7개 사정기관 ‘부패 척결 관계 기관’ 회의가 보란 듯이 열렸다.

군사정권 시절을 방불케 하는 전방위 공개 사정이 천명됐다. 정부가 당근과 채찍을 함께 쓰며 기업에 대한 토끼몰이를 하는 것만 같았다. “투자 많이 하고, 사람 더 뽑고, 임금도 올려 경제가 살도록 좀 해 다오. 그것도 정직하게…”라는 메시지였다. 상충되는 두 메시지에 경제계가 혼란에 빠지는 것은 당연했다. 투자활성화와 고용창출이 정말 급했다면 이런 시기에 ‘기획 사정’으로 의심받을 만한 동시다발적 수사로 기업들에게 꼭 공포감을 조성해야만 했을까.

불황일수록 기업의 기 살려줘야

정부의 정책조율 기능에 큰 구멍이 생긴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절로 든다. 경제 살리기에 조바심을 느낀 정부가 악수惡手를 두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경제란 안정감과 이윤 동기를 먹고 자라는 생물이다. 누가 이래라 저래라 어설픈 훈수를 두거나 느닷없는 공포감을 주면 움츠러들고 만다. 물론 부패 척결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도 때가 있다. 가계·기업·정부 중 지금 경제살리기에 가장 큰 역할이 기대되는 경제주체는 누가 뭐래도 기업이다. 서로 엇박자를 내지 않도록 정부가 좀 더 현실적이고 슬기로운 대책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우열 건국대 경영대 겸임교수 ivenc@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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