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의 경제학

▲ 계단이 변화하고 있다. 힘든 수단이 아니라 즐거움과 보람을 주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우건설]
계단, 당신은 어디까지 올라가 봤는가. 올라가기 힘들다며 외면하지는 않았는가. 그런데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애물단지 같았던 계단이 변신 중이기 때문이다. 건강은 물론 정보도 얻고 어려운 이웃도 도울 수 있게 됐다. 계단의 무한변신을 이끈 건 ‘테크놀러지’다. 센서기술 하나가 계단을 바꾼 셈이다. 21세기 계단은 테크놀러지다.

# ‘여기까지 올라오신 여러분은 4.65㎉가 소모됐으며 건강수명이 2분 4초 연장됐습니다.’ 서울시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5호선 오목교역 2번 출구 방향 층계엔 이런 글귀가 붙어 있다. 계단을 5개씩 오를 때마다 0.75㎉씩 소모되고, 수명이 20초씩 늘어난다는 걸 알려주는 건강계단이다. 평소 이용하는 계단과 큰 차이는 없지만 계단 전체에 운동량과 수명효과를 알려주는 정보가 적혀 있어 시민의 발걸음을 유도하고 있다.

# 도레미파솔라시도. 신도림 디큐브백화점 지하 2층에서 바깥으로 나와 전철역 방향으로 가는 오르막길에 피아노 소리가 나는 계단이 있다. 운동이 되는 것은 물론 계단 한개씩 걸을 때마다 10원씩 적립된다. 계단 측면에 붙어 있는 전광판에 오늘 하루 동안 계단을 올라간 이용객수와 누적 이용객수가 기록돼있다. 누적된 사람 숫자에 10원을 곱하면 지금까지 모아진 기부액을 한눈에 확인 할 수 있다. 모인 기부액은 연말연시 후원기업(대성산업)의 기부금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된다.

# 대우건설은 최근 본사 사옥을 리뉴얼하는 과정에서 노후 엘리베이터를 교체했다. 어쩔 수 없이 비상계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직원들을 위해 회사 측은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놨는데, 그게 바로 ‘다이어트 계단’이다. 무엇보다 계단을 이용했을 때 소모 칼로리를 계산해 벽면에 누적 소비량을 표시했다. 지하 3층~지상 18층의 계단실 벽면엔 자연 친화적인 그래픽을 입혔다.

계단이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계단은 ‘힘든 것’ ‘되도록이면 피해야 할 것’ 쯤으로 여겨졌다. 오르내리는 일이 힘들고 불편하다는 인식때문이었다.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굳이 계단을 오르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요즘 계단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계단이 흥미롭고 유용한 것으로 변하고 있어서다. 계단을 변신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기술이다. 사실 계단에 센서를 부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존 버튼식 센서론 사람의 몸무게나 이동시 충격을 버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센서기술이 발달되면서 레이저를 이용한 센서, 이를테면 ‘빚 센서 기술’이 적용됐다. 적외선을 감지했을 때 반응하는 인체감지센서가 계단에 탑재된 셈인데, 원리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몸이나 동물에서 나오는 적외선 파장을 감지하는 소자를 이용해 적외선을 전압형태로 변화시킨다. 이를 통해 소리가 나고 조명이 발산하는 계단이 탄생했다.”

기술만이 아니다. 디자인도 계단의 변신에 한몫했다. 피아노·가야금을 비롯해 자연 풍경 등 디자인 요소를 계단에 가미한 것이다. 그림·그래프를 이용해 수명연장과 다이어트 효과, 금연정보 등을 알려주는 디자인을 적용한 계단이 대표적 사례다.  이렇게 새로운 계단이 활성화되자 지방자치단체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무엇보다 지역의 특산물이나 문화를 홍보하는 광고홍보용 계단을 만들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 새롭게 선보인 토마토계단을 비롯해 중랑구 둘리계단, 부천 애니메이션계단(이상 설치작업 중)이 그 예다. 기부형 계단을 선보이는 지자체도 있다.

서울시는 지역구청과 함께 시민의 비만을 예방하고 생활 속에서 걷기를 유도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시내 12개 장소에 기부하는 건강계단을 설치했다. 서울시청 시민청 입구를 비롯해 신도림역·영등포역·청량리역·잠실역·금천구청역·오목교역·왕십리역·시청역·고속터미널역·명동역·녹사평역 등이다. 이중 시민청 계단은 이용률이 기부계단으로 탈바꿈하기 전 6.5%에서 현재 22%로 3배 이상 높아졌다.

흥미롭게도 이 기부계단은 기업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계단기획, 공사비용은 물론 기부금까지 기업이 나서 해결했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도 이만한 ‘홍보수단’이 없다. 이용자가 많은 계단은 주목도 또한 높아서다. 계단을 통해 사회공헌을 하기 때문에 기업 이미지 개선에도 그만이다. 건강사회건설을 창업정신으로 삼고 있는 한국야쿠르트는 ‘건강한 습관’을 기업의 새로운 가치로 내세우며 서울시 계단 사업에 동참했다. 서울시와 건강기부계단을 시민청에 가야금 설치, 1월엔 서울고속터미널역에도 추가로 계단을 설치했다. 시민청 계단의 경우 초기 설치 단계부터 공사비는 물론 운영 이후엔 기부금 전액을 지원했다.

오정화 서울시청 건강증진과 주무관은 “현재 한국야쿠르트를 비롯해 롯데백화점, 디큐브백화점, 마사회,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등 기업과 기관들이 계단사업을 후원하고 있다”며 “어떤 이벤트보다 기업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이어서 참여를 원하는 기업과 기관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디자인 전문업체인 ‘문화예감’의 정종배 대표는 “계단을 기획하면서 1석5조의 효과를 거둘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그 이상의 효과를 내고 있다”며 “건강은 물론 각종 질병과 관련된 의료비 절감, 기부로 인한 사회의 선순환, 도시환경 개선, 에너지 절약, 기업과 기관들의 홍보와 광고효과 등 계단이 주는 긍정적인 측면는 생각보다 많다”고 강조했다. 계단은 더 이상 무미건조한 계단이 아니다.계단엔 기술이 있고, 예술이 있으며, 기부가 녹아 있다. 계단의 무한변신이 흥미로운 이유다.
김은경 더스쿠프 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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