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 이중적인 이유

▲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기업은‘좋은 기업’이 아니라‘돈 많은 기업’이다.[사진=뉴시스]

대기업을 향해 삿대질을 한다. 그러면서도 대기업에 입사를 하길 꿈꾼다. 그룹 총수가 구속되든 말든, 해당 대기업이 욕을 먹든 말든 ‘나만 입사하면 끝’이라는 식이다. 우리의 청년, 과연 문제의식이 없는 걸까. 대기업을 욕하면서도 대기업에 목매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짚어봤다.

‘애플ㆍ구글ㆍ버크셔 해서웨이ㆍ아마존닷컴ㆍ스타벅스ㆍ월트디즈니ㆍ나이키….’ 미국의 주간지 포춘(Fortune)이 선정한 ‘2015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들이다. 그런데 세계 최대 경력관리 SNS인 링크드인이 발표한 ‘2014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리스트를 보면 구글ㆍ애플ㆍ아마존닷컴이 나란히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월트디즈니와 나이키는 6위와 7위를 차지했다.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 곧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이라는 얘기다. 누군가는 “당연한 거 아니냐”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렇지 않다.

10년 전부터 매년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을 선정ㆍ발표하고 있는 한국능률협회의 자료를 보자. 올해 이름을 올린 곳들은 삼성전자ㆍ현대차ㆍ유한킴벌리ㆍ유한양행ㆍ포스코ㆍ네이버ㆍLG전자ㆍSK텔레콤ㆍ인천국제공항공사ㆍ삼성물산 등이다. 2005년에는 네이버ㆍ인천국제공항공사ㆍ삼성물산 대신 안철수연구소ㆍ현대중공업ㆍLG화학이 포함됐다. 취업포털 잡코리아도 10여년 전부터 ‘입사하고 싶은 기업’을 선정ㆍ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10년간의 통계자료를 보면 ‘존경받는 기업’에 속하는 유한킴벌리ㆍ유한양행ㆍ네이버ㆍ안철수연구소가 ‘입사하고 싶은 기업’에 선정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1~10위권은 물론 80위권에 들어간 적도 없다. 한국전력을 제외하면 ‘입사하고 싶은 기업’ 10위권은 온통 대기업 집단 계열사 판이다.

최근 잡코리아 좋은일연구소가 남녀 취업준비생 7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서도 이들의 ‘목표 그룹’은 현대차(27.0%) ㆍLG(18.2%)ㆍ삼성(17.9%)ㆍSK(13.3%)ㆍ현대중공업(6.0%)ㆍCJ(5.6%)ㆍ이랜드(4.0%)ㆍ현대(3.6%)ㆍ한샘(2.1%)ㆍ아모레퍼시픽(1.5%)ㆍ기타(0.8%) 순이었다. 취업 선호도는 역시 재벌 대기업 집단에 쏠려 있다.

더 심각한 건 구직자들이 ‘존경’과는 거리가 먼 기업집단을 선호하고 있다는 거다. 삼성그룹은 세계적인 기업이지만 비자금 사건(2007년), 노조설립 방해 의혹, 백혈병 산재인정 등으로 구설이 끊이지 않는다. SK그룹과 CJ그룹은 총수가 횡령과 배임혐의 등으로 구속수감 중이거나 형집행정지 상태다. 이랜드는 2007년 홈에버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해고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렇다고 실적이 우수한 기업을 고르는 것도 아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조단위를 뛰어넘는 사상 최악의 손실을 기록,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현대그룹은 남북관계 경색으로 현대상선을 비롯한 계열사 실적이 곤두박질 친 지 오래다.

청년 구직자들이 ‘재벌 대기업’만을 선호하는 이유가 뭘까. 역시 돈 때문이다. 대졸자 평균 초임(2014년 기준)을 보면 현대차는 6000만원, LG전자는 4400만원, 삼성전자는 4100만원, SK텔레콤 5700만원, 현대중공업 5200만원 선이다. 일반 중소기업 초임 평균이 2355만원, 대기업 초임 평균이 3140만원(취업포털 사람인 자료)이라는 걸 감안하면 월등히 높다. 물론 중소기업 중에도 대기업 못지않은 초임을 지급하는 곳들이 있다. 증류기나 열교환기 등을 제조하는 BHI의 대졸 초임은 5400만원이다. 공학소프트웨어 업체 마이다스아이티의 대졸 초임도 4000만원 이상이다.

문제는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이병훈 중앙대(사회학) 교수는 “청년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평균 초임이 센 경우가 많다”면서도 “하지만 꼭 그것 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며 말을 이었다. “글로벌 기업은 중소기업보다 간판을 내세우기 좋다. 회사 생활을 통해 쌓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도 무시할 수 없다. 이직을 할 때에도 유리하다. 중소기업은 그런 부분을 채워주지 못한다. 강소强小기업에 취직하라는 말이 슬로건에 그칠 수밖에 없다.” 청년 구직자들이 ‘존경받는 기업’보다는 ‘돈 많이 주고 간판을 내세울 수 있는 기업’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는 생태계라는 거다.

강소기업 구직난 겪는 진짜 이유

실제로 잡코리아의 설문조사(2014년 기준)에 따르면 구직자들은 ‘복지제도와 근무환경(45.6%)’ ‘기업 대표의 대외적 이미지(45.4%)’ ‘연봉수준(38.5%)’ 등을 가장 많이 고려한다. 기업에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댈 틈은 없다. 혹시 청년들이 사회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기업의 비윤리적인 측면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여기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의미 있는 자료가 있다. 2007년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은 서울지역 10개 대학, 총 600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노동운동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 대학생들은 ‘빈부격차(94.2%)’ ‘부동산 문제(93.1%)’ ‘지역갈등(68.9%)’ ‘부정부패(91.8%)’ ‘노사갈등(80.4%)’ 등 사회문제에 심각성이 있다고 답했다. 또 ‘경영자는 정직하지 않다(70.4%)’ ‘경영자는 보수에 비해 일을 많이 하지 않는다(67.5%)’ ‘경영자에게 신뢰감을 느끼지 않는다(71.5%)’고 답했다. 청년들이 사회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젊은 구직자의 눈은 왜 ‘존경 받지 못하는 기업’에 쏠려 있는 걸까. 이병훈 교수는 이렇게 꼬집었다. “중소기업 성장이 불가능한 대기업 하청구조, 평균 임금의 현격한 차이 등이 절대로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게 젊은이들의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뭔가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려는 노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실제로 2007년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의 자료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슬픈 이면’이 나온다. 사회문제를 잘 알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노조에 가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가’라고 묻자, 전체의 10.4%만이 ‘적극 참여’라고 답했다. ‘비적극적 참여’는 45.5%, ‘참여의사 없음’은 43.6%였다.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10명 중 9명은 직접 나서서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김윤태 고려대(사회학)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들이닥친 이후 경쟁에서 살아남는 게 최대의 목표가 되면서 모든 것이 개인화되고 말았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빈부격차나 청년실업, 대기업의 갑질과 부정부패 등은 모두 사회적인 문제다. 해결을 하려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하는데, 이미 청년실업이 개인의 현실문제로 닥치니까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의 장학금을 받아 공부한 이들이 어떻게 해당 기업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특히 사회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사회문제를 개인의 힐링 문제로 넘겨 버린다. 대기업을 비판하면서도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안달하는 이중적 태도가 나오는 이유다.”

구직자의 이중성에 누가 돌 던지랴

구직자들이 대기업을 비판하면서도 대기업 입사에 목매는 상황을 바꿀 수는 없을까. 김윤태 교수는 “신자유주의를 탈피한 정책들, 대중소기업간 임금격차는 물론 비정규직의 수도 줄이는 정부정책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교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 졸업자들이 점점 줄어들면 대학도 구조조정이 될 거고, 그러면 청년고용의 수급불균형은 조금이나마 해소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그 과정에서 매년 축적되는 청년실업자들을 구제할 수 있도록 대기업에 일정 수준의 고용을 유지하도록 강제하거나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등의 노사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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