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58)

순신의 승첩을 들은 선조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과연 이순신은 천하의 명장”이라며 정일품에 제수하려 했다. 그러자 서인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그만한 공에 정일품을 제수해선 안 된다는 논리였다. 이들이 순신의 대승첩을 기뻐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동인東人인 유성룡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사진=더스쿠프 포토]

한산도 승첩이 선조에게 도달하자 대신들은 크게 기뻐했다. 좌의정 윤두수가 먼저 아뢨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견내량과 한산도 사이의 바다에서 적선 70여척을 당파하고 적군 9000여인을 섬멸하였다고 합니다.” 선조는 무서운 꿈에서 깨어난 듯 기뻐하였다. 전라도사 최철견은 선조의 앞에 엎드려 이순신이 승첩한 장계를 받들어 올렸다.

그 장계에는 대전을 시작하게 된 전말과 공을 이룬 제장의 성명이 상세히 쓰여 있었다. 끝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제장과 군졸 등이 분연히 몸을 돌보지 않고 여러 차례 힘써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행조行朝가 멀리 떨어져 있고 길이 막혀 있으니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다 보면 시일이 늦어져 군사들을 감동시킬 수 없어 죽기로써 싸웠습니다.”

선조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허리를 펴고 소리를 질렀다. “과연 이순신은 천하 명장이로다. 호랑이떼 같은 천하막강지적을 연하여 때려 부수니 참으로 만고에 드문 영웅이로다!” 선조의 좌우엔 최흥원, 좌의정 윤두수, 우의정 유홍, 영부사 유성룡, 판부사 정철, 좌찬성(의정부에 소속된 종일품직) 윤근수, 병조판서 이항복 등이 서 있었다. 그들 중에는 이순신의 대승첩을 기뻐하지 않는 이가 많이 있다. 나라 일은 어찌 되든 말든 이순신은 유성룡이 천거한 사람이어서 동인東人이라고 지목된 까닭이었다.

순신의 승전보, 서인은 ‘떨떠름’

선조는 이순신의 군관 송여종이 올린 적장의 머리 3과와 왼쪽 귀만 베어 젓 담근 항아리를 손수 열어보고 친히 송여종에게 싸움할 때의 광경과 웅장한 도략을 말하게 하였다. 그후 승지를 불러 이순신을 정일품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의 작위에 올리라고 명하고, 송여종을 전라도 수령 중 비어 있는 남평南平현감을 시키라고 하였다.

하지만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정철은 “이순신의 공이 적다할 수는 없소만 그만한 공에 정일품을 주신다 하면 더 큰 공을 세울 때에는 무엇으로 갚으려 하시겠습니까? 그러니 작위는 남용하는 것도 장려하는 도리가 아닌가 합니다”고 교묘하게 반대했다. 정철의 말에 조정에 있는 많은 서인은 통쾌함을 느꼈다. ‘이놈들이 또 당파싸움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한 선조는 떨리는 어성으로 “그러면 일품이라는 작록은 당파싸움 잘하는 자들만 가지는 것인가?”라며 정철을 노려봤다. 정철은 선조의 노함을 보고 안색이 붉어졌다. 유성룡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서 있었다. 그러자 윤두수가 “조정이 모두 이순신에게 정1품을 내리심을 불가라 하오니 정2품으로 하심이 옳을까 합니다”고 조정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순신은 정2품이었다.

▲ 선조는 서인들의 눈치를 보다가 이순신에게 정2품을 하사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심지가 약한 선조는 윤두수, 정철 등 수많은 서인의 감정을 상하게 할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윤두수의 말대로 정2품 정헌대부正憲大夫를 순신에게 주고, 이억기와 원균은 종2품 가의대부嘉義大夫로, 권준·이순신李純信·어영담 등은 가선대부동지嘉善大夫同知로, 이하 제장도 차차 봉작했다. 송여종은 순신의 휘하에서 전공을 더 세우는 게 좋겠다고 하였다. 순신에게는 특별히 교유서를 내려 비상한 공을 장려하였다. 교유서의 내용은 이랬다.

王若曰 不世之才有不世之遇 …
非常之報待非常之功 …
玆擧褒嘉之典 式酬超異之勞
顧予寡昧之資 叨守艱大之業
卄五載宵衣旰食 計雖存於苞桑
二百年文恬武嬉 民不習於戰鬪
何意島人之匪茹 遽乘疆埸之不虞
彎射日之弧 … 鼓吠堯之吻 …
呼吸而破三都 蹂躪而傾八路
失城郭山河之固 何有於金湯
委兵革倉廩之多 反資于寇敵
念今乾淨之片地 只餘湖海之一方 …
六萬騎潰於畿甸痛李洸輕敵而敗師
二千兵陷於錦山哀敬命臨危而授命 …
淮西士卒得裵度爲之長城
江左生靈微管仲幾乎左袵 惟卿 業傳圯下
才出山西 藏甲兵於心胸
以身爲膽 塡忠義於骨髓 憂國如家
方守魏尙之雲中 遂制韓信之閫外 …
中流擊士雅之楫 灑泣登太眞之舟
投舸艦於烈焰 唐項之積屍渾江
斬䲔鯢於驚波 閑山之腥血漲海 …
振王靈於遐荒 … 褫兇魄於遠邇 …
群將袖手爭先棄甲曳兵
列鎭望風只知開門納敵 念非卿之勇烈
誰與國而存亡 … 玆授卿正憲大夫 …
予之望卿益深 …

세상에 다시 없는 인재에게는 세상에 다시 없는 대우를 줘야 하고… 비상한 보답은 비상한 공을 대접함이니… 이에 따라 표창하는 전거를 들어 뛰어난 노고를 갚고자 한다. 돌아보건대 나는 모자란 자질로 왕위를 지켜왔다. 25년 동안의 소의간식宵衣肝食(날이 새기 전에 일어나 옷을 입고 늦게야 밥을 먹음. 임금이 정사에 부지런하고 걱정이 많음을 뜻함)에 계책을 굳건하게 세웠지만 200년 동안의 문념무희文恬武嬉(문관들은 안일하게 지내고 무관들은 희롱한다는 뜻으로, 안일에 빠져 제 직분을 다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에 백성은 전투에 익숙하지 못하였다. 섬나라의 분수 모름을 어찌 알았으랴?
국경의 무방비를 틈타서 해를 향해 활을 당기고… 요임금을 보고 짖는구나.… 호흡하니 삼도가 무너지고 유린하니 팔도가 기울었다. 성곽과 산수를 잃었으니 어디에 금성탕지金城湯池(쇠로 만든 성과, 그 둘레에 파 놓은 뜨거운 물로 가득 찬 못이라는 뜻. 방어시설이 잘되어 있는 성을 이르는 말)가 있겠으며 무기와 곡식을 버렸으니 도리어 적을 도운 셈이다.
생각하건대 지금 깨끗한 한 조각 땅이라곤 단지 호남의 바다 한 지역만이 남았는데… 6만 기병이 경기에서 무너졌으니 이광이 적을 가벼이 여겨 패함이 원통하고 2000 병사가 금산에서 함몰되었으니 고경명이 위기에 처해 목숨을 바침이 애석하다… 오직 이순신 경만이, 계책을 가슴에 품어 온몸을 쓸개로 삼고, 충의를 뼛속에 채워 나라를 집처럼 걱정하였다. 바야흐로 맹렬한 불꽃 속에 적함을 던져 넣으니 당항포에 쌓인 시체는 강물을 흐렸고, 거센 파도 위에서 적들을 죽이니 한산도의 비린 피는 바다에 넘쳐났다.… 왕의 위엄을 변방에까지 떨치고… 흉한 넋을 주위에서 빼앗았다… 뭇 장수들은 팔짱만 끼고 있다가 갑옷을 버리고 무기를 끌고 도망가기를 다투었고, 여러 고을은 소문만 듣고서는 단지 문을 열어 적을 들여보낼 줄만 알았다.
생각해보건대 경의 용맹이 아니었다면 그 누가 국가와 더불어 존망을 함께하리오… 경에게 정헌대부를 제수하노라.… 내가 경에게 기대함이 더욱 깊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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