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비만 Exit | 살과 사랑 이야기

▲ 원자가 촘촘하게 결합한 포화지방은 웬만해선 잘 줄어들지 않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지방 이야기를 곁들인 필자 모친의 순대 장사 이야기는 이번에 마친다. 순대의 주재료는 돼지의 창자, 그리고 피와 기름이며, 여기에 당면ㆍ두부ㆍ파 등이 부재료로 이어진다. 도축과정에서 돼지의 경동맥을 끊으면 뜨거운 선혈이 솟구치는데, 이를 양동이에 잘 받아 두는 것이 순대 레시피 1번이다. 혈소판의 영향으로 공기와 접촉한 돼지피가 묵처럼 굳어가므로 신속하게 순대를 만들어야 한다. 밀가루와 왕소금을 뿌려 내장을 박박 문질러 닦고 헹군 후 잡채 위에 선지를 파ㆍ두부와 함께 흩뿌려 버무린다.

어머니의 순대 제조 과정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돼지비계를 끓여 녹아 나온 그 기름을 함께 넣고 버무린다는 거다. 순대를 차지고 기름지게 만들고, 순대의 속이 순대피 안으로 잘 들어가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고열로 기름을 모두 뱉어 낸 돼지비계는 시커먼 과자처럼 냄비에 남는다. 우리 다섯 남매는 바삭바삭한 식감의 포화지방 덩어리를 과자인 양 즐겨 집어먹곤 했다. 포화지방이란 말 그대로 원자가 빈틈없이 결합한 걸 뜻한다. 체내 산화(대사)가 어려워 다이어트를 어렵게 하는 데 한몫한다.

어찌 됐든 속이 준비되면 깔때기에 창자 끝을 씌운 후 막대기로 쑤셔가며 다져 넣기 시작한다. 창자의 끝부분은 무명실로 묶는데, 순대 속을 다져 넣는 과정에서 창자의 옆구리가 터지기도 한다. 속을 다져 넣은 돼지 창자는 늘어날 대로 늘어나 속이 말갛게 들여다보일 정도로 팽팽해진다.  생각해보면 순대는 참으로 잔인한 음식이다. 돼지의 창자를 뽑아내어 피와 함께 버무린 돼지의 기름을 다시 그 속에 채워 넣으니 말이다. 하긴 인간은 무엇인가를 먹기 위해 끊임없이 생물을 해치거나 위해를 가해야 한다.

물을 제외한 그 무엇을 먹더라도 생명을 해치는 행위가 된다.  다시 순대 얘기를 해보자. 속을 채운 순대는 돼지머리나 잡뼈를 우려낸 육수에 넣고 펄펄 끓여가며 삶아낸다. 삶는 중 순대가 터지지 않도록 대침을 몇방 놓는데 뚫린 구멍으로 하얀 김이 한숨처럼 터져 나오기도 한다.  완성된 순대는 뜨거운 김과 함께 도마에 오르는데 이를 본 사람들은 그냥 지나칠 재간이 없다. 만드는 과정이 힘든 만큼, 우월한 맛을 자랑하던 엄마의 순대는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그 돈으로 일곱 식구는 그럭저럭 먹고살았다.

평생 순대를 만들던 이북 아줌마는 다섯 남매를 모두 키운 후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는 듯 휙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12년 전 한겨울에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화장 후 유택에 담은 어머니의 납골 항아리는 유골에서 나온 열기로 인해 10분 이상 따뜻한 상태를 유지했다. 기름 묻은 어머니의 손을 피하던 아들놈은 유택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고, 어머니는 자신의 뼈에서 나온 열기로 끝까지 그놈을 덥혀줬다.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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