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 중 자살한 사람들

▲ 검찰 수사 도중 목숨을 끊는 인사들이 늘어나면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원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사진=뉴시스]
검찰의 자원외교 비리 수사가 난항을 겪게 됐다. 원인은 검찰의 수사를 받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이다. 문제는 2000년 이후 검찰 수사 도중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회지도층 피의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원인일까. 아니면 억울함을 호소하는 마지막 방법일까. 수사 도중 자살한 저명인사들을 되짚어 봤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9일 검찰 수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 전 회장은 이날 오후 3시32분께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 300m 인근 등산로 부근에서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앞서 성 전 회장은 이날 오전 5시 10분경 유서를 남긴 뒤 집을 떠나 행방불명됐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통신 추적 끝에 종로구 평창동 일대에서 휴대전화 신호를 확인한 뒤 그 일대를 수색했지만, 성 전 회장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

성 전 회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눈물로 결백을 호소하기도 했다. 기자회견 당시 성 전 회장은 “성공불융자금 집행은 ‘선집행 후정산’ 방식이어서 사적 유용은 있을 수가 없다”며 정부지원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강력 부인했다.

성 전 회장이 숨진 채 발견됨에 따라 정점을 향하던 해외 자원개발 비리 수사에 적지 않은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아울러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강압수사 의혹도 불거져 나오고 있다. ‘자신은 MB맨이 아니고 MB정권의 피해자다’라고 말한 성 전 회장도 검찰 조사 과정에서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최근 대기업 총수에 대한 구속수사가 이어지면서 과거와 달리 면죄부를 받기 힘든 사회적 분위기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 수사 중 목숨을 끊은 경제인은 성 회장만이 아니다.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은 지난 2003년 8월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서 투신했다. 정 회장은 대북송금 및 현대그룹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정 전 회장은 대검 중수부에서 세 차례 조사를 받은 직후 투신했다.

정 회장의 자살 배경은 분명하지 않지만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조성 등의 대북사업을 추진하면서 경영난과 대북송금 및 비자금 조성 수사에 대한 심리적 압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윤규 현대아산사장과 부인, 자녀 3명 앞으로 보낸 A4용지 4장짜리 분량의 자필유서에는 “나의 유분을 금강산에 뿌려 달라. 명예회장님께서 원했던 대로 모든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사건은 정 회장의 자살과 핵심 인물의 해외도피 등으로 수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도 2004년 3월 대통령 친인척 비리로 조사를 받던 중 서울 한남대교에서 몸을 던졌다. 남 전 사장은 정치권에 비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사장 연임을 위해 당시 대통령 친인척에게 금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내가 모두 짊어지고 가겠다”는 말을 남겼다. 특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친형 건평씨를 통한 인사 청탁을 거절했다”고 공개한 직후 남 전 회장이 변호인에게 “자살하겠다”고 전화한 사실이 밝혀지며 논란이 일었다.

이번에도 강압수사 없었나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도 지난 2005년 ‘형제의 난’으로 두산가문에서 제명된 후 성지건설을 인수해 재기에 노렸지만 경영난에 몰리자 2009년 11월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 전 회장은 자금 압박과 가문에서 제명된 심리적 스트레스 등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7월에는 세월호 참사 책임의 정점에 있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전남 순천 매실 밭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 소환에 불응하던 유 전 회장의 추적을 호언장담했던 검찰 수사가 곤경에 빠지기도 했다. 유 전 회장은 숱한 의문만 남긴 채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뒤 목숨을 끊은 대표적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가 정점을 향하던 2009년 5월 23일 사저가 있는 경남 봉하마을 뒷산에서 투신했다. 노 전 대통령은 가족 앞으로 남긴 짧은 유서에서 검찰 수사 이후 힘들었던 심경을 드러냈다. 이로 인해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과 수사책임자인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이 옷을 벗었고, 검찰은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모는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2004년엔 저명인사의 자살 사례가 유난히 많았다. 동성여객 로비사건으로 구속된 안상영 전 부산시장은 2004년 2월 부산구치소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 해 4월엔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직 시절 납품비리 등에 연루돼 서울남부지검에서 조사를 받던 박태영 전 전남지사가 한강에 투신했다. 6월엔 전문대 설립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내사를 받던 이준원 파주시장도 한강에서 자살했다. 이듬해 11월에는 안전기획부와 국가정보원의 도청사건에 연루된 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이 자택에서 목을 매 숨졌다. 지난해 7월에는 철피아(철도+마피아) 비리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던 김광재 전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이 잠실대교에서 투신자살했다. 김 전 이사장은 납품업체로부터 뇌물을 받고 특혜를 준 혐의로 자택을 압수수색 당했었다.

검찰 조사 중 자살한 피의자나 참고인은 최근 5년간 55명이나 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민 의원이 지난해 10월 23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검찰 조사 중 자살한 피의자가 2010년 9명, 2011년 14명, 2012년 10명, 2013년 11명, 2014년에는 7월까지 11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검별로 살펴보면 서울중앙지검에서 12명이 자살했다. 이어 대구지검 4명, 창원지검 2명, 울산지검 2명, 전주지검 2명, 안산지청 2명 등이었다. 자살자 대부분은 피의자 조사를 받은 후 주거지나 인근에서 자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의원은 “피의사실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죄인 다루듯 강압적인 수사를 하거나 인격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발언과 태도는 철저하게 개선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CCTV 녹화를 확대하고 수사 방식도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조사과정에서 물리ㆍ언어적 폭력은 대부분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유명인들의 경우 이름 있는 변호인이 선임되고, 수시로 접견도 허용되기 때문에 가혹행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결국 가혹행위는 사라졌다지만 검찰 수사과정에서의 강압적 분위기와 이로 인한 모멸감 등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곽대경 동국대(경찰행정학) 교수는 “(성 전 회장이) 지금 현재 상황에서 자기가 어떤 제도적이나 정상적인 방법으로 극복하거나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좌절한 것이 아닌가 싶다”며 “피의자들이 검찰 조사과정에서 열심히 설명한 내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실망이나 좌절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 짚어봐야 

검찰 책임론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우선 성전 경남기업 회장이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심경이 다소 불안한 듯 보였는데도 신병을 확보하지 않은데다, 검찰의 자원외교 비리 수사 착수 배경 자체가 정치적인 성격이 짙었다는 비판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은 당초 경남기업의 자원외교 비리 의혹에 초점을 뒀지만 별 소득이 없자 기업비리로 수사의 방향을 틀어 오너인 성 전 회장의 별건 혐의를 찾는데 더 주력했다”고 지적했다.

핵심피의자에 대한 신병 관리 소홀한 점도 무게를 더하고 있다. 성 전 회장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둔 전날 갑작스런 기자회견을 열고 현직 대통령을 거론하며 반발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성 전 회장의 이러한 불안한 심리상태를 감안하면 검찰이 법원으로부터 미리 발부받아 놓은 구인장을 서둘러 집행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검찰 수뇌부가 안일한 판단으로 미숙하게 대처해 큰 화禍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호 더스쿠프 기자 rombo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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