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의 PC 죽었지만 손안의 PC는 아직…

‘스마트폰 위기론’이 점점 커지고 있다. 출하량이 보급률을 앞서며 시장이 포화상태가 돼서다. 기술혁신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포스트 스마트폰’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늘어나는 이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포스트 스마트폰’으로 지목되는 제품 역시 스마트폰이다.

▲ 스마트폰 산업의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다.[사진=뉴시스]

# A시장이 있다. 1980년대부터 20년간 성장가도를 달렸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 제품 출하량이 감소했다. 출하량이 보급량을 앞서기 시작하면서 시장이 성숙기로 진입했다. A를 대체할 혁신 제품 B도 등장했다. 기업들은 A사업부문에서 줄줄이 꽁무니를 뺐다. 최근엔 사양길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 B시장은 2007년 이후 매년 두 자릿수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A시장과 마찬가지로 출하량이 보급량을 앞서면서 포화상태가 됐다. 초기에 시장을 선도하던 기업은 철수했고, B시장을 대체할 혁신제품도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B시장이 성숙기에 진입해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A시장은 PC, B시장은 스마트폰이다. 두 시장의 흐름이 비슷하다. PC시장은 사실상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PC의 대명사였던 IBM은 2004년 중국 레노버에 PC사업부문 매각했고, 애플은 아이폰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바꾼 지 오래다. 지난해엔 소니마저 PC사업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지난해 4분기 세계 PC 출하량은 8077만대로 2013년 4분기의 8277만대보다 2.4% 줄었다. PC가 혁신제품에서 일상재(Commodity)로 전락했다는 걸 잘 보여주는 결과다. PC는 중앙처리장치(CPU), 디스플레이, 저장장치 등으로 하드웨어 형태가 굳어졌고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혁신기술을 발굴하는 데 실패했다.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도 지속됐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2007년 2분기 기준 델의 PC 평균 판매 가격은 약 1000달러였다. 2013년 2분기 평균 판매 가격은 800달러를 밑돈다. 약 6년이 지나는 동안 제품의 평균 판매 가격이 20%가량 내려간 셈이다. 다른 업체도 마찬가지다. HP는 2012년 2분기 800달러에서 2013년 2분기 650달러로, 레노버는 820달러에서 420달러로 하락했다.

임규태 조지아공대 연구교수는 “소비자가 저렴한 가격으로 최신식 PC를 구입하게 되면서 PC 시장의 성장세가 멈췄다”며 “레드오션이 되면서부터 기술 차별화가 사라지고 가격경쟁력만 부각되면서 PC시장의 이익률이 낮아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시장이 이런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격이 하락하고 있어서다. 세계 스마트폰 평균 판매 단가는 2011년 330달러 수준에서 2012년에는 320달러로, 2013년에는 270달러로 떨어졌다. 스마트폰 역시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혁신제품에서 일상재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은정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초저가 스마트폰이 난무하면서 가격 경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이는 결국 스마트폰 산업의 수익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스마트폰, PC 전철 밟나

스마트폰의 하드웨어가 이미 PC수준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혁신이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고해상도 화면, 고성능 카메라, 빠른 CPU 등 잇단 기술 혁신에도 소비자가 둔감해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장의 성장세가 꺾이고 있다. 2013년 전세계 휴대전화 출하량은 18억3000만대로 2012년 17억3000만대에 비해 6% 증가했다. 2011년 13%, 2012년 9%, 2013년 6% 순으로 점차 낮아지고 있다.

배은준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스마트폰이 PC처럼 더 이상 부가가치를 만들지 못하는 일상재로 전락할 수도 있다”며 “스마트폰의 발전경로가 갈림길에 선 것”이라고 말했다. 분명 PC 시장과 스마트폰 시장의 흐름은 닮아있다. 스마트폰 시장이 PC 시장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위기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아직 혁신의 기회는 있다. ‘아이폰6’와 ‘갤럭시S6’의 출시가 그 시작이다. 지난해 9월 애플의 아이폰6는 첫주에만 1000만대가 넘게 팔리며 아이폰 시리즈 중 역대 최다 판매량을 경신했다. 4월10일 출시한 갤럭시S6의 판매량을 두고 전문가들은 5000만~6000만대를 전망하고 있다. 더 이상 폭발적인 흥행을 기대할 수 없다는 시장의 예측을 깼다.

이제호 서울대(경영학) 교수는 “PC는 새로운 기능이 나와도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스마트폰은 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언론과 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며 “최근 성장세가 꺾였다는 이유로 이런 시장을 위기라고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PC시장과 달리 스마트폰 시장은 아직 혁신의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혁신의 실마리는 사물인터넷(IoT)이다. 갤럭시S6에는 무선충전 기능이 도입됐다. 무선충전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충전이 가능하다. 최근 커피전문점 스타벅스가 매장에 무선충전시설을 설치하기로 했으며 가구회사 이케아도 무선충전용 가구를 만들기로 했다. 현대차는 하반기 출시하는 신형 싼타페에 무선충전기능을 탑재하기로 했다.

“혁신 기회, 아직 많이 남았다”

사물인터넷 시대의 웨어러블 기기와의 연동도 기대된다. 아이폰6와 갤럭시S6는 각각 스마트워치인 ‘애플워치’ ‘기어시리즈’와 연동이 가능하다. 현재는 통신 기능과 간편결제 기능, 헬스케어 기능에 머물고 있지만 전망은 밝다. 각종 센서 기술의 발달로 다른 사물과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KT경제연구소는 사물인터넷 시장이 2020년대에 다다르면 20조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봤다. 사물인터넷이 스마트폰의 새로운 시장이 되는 것이다. 임규태 교수는 “웨어러블 기기는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제품이 아니다”며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호 교수는 “기업이 점유율 경쟁을 위해 가격을 낮추려고만 하면 PC 산업과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며 “스마트폰은 사물인터넷의 허브로 새롭게 재편될 시장이기 때문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융합의 시대, ‘스마트폰 위기론’을 극복할 키워드가 곧 스마트폰이란 얘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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