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이재용 부회장은 여행용 가방을 직접 끌고 입국한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 다른 면이다.[사진=뉴시스]
이건희(73) 삼성그룹 회장의 입원이 어언 12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작년 5월 10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래 병세 호전 소식은 가끔 들렸다. 하지만 경영복귀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국내외의 시선은 그의 외아들(장남) 이재용(47) 삼성전자 부회장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렸다. 불안감과 기대가 교차했지만 삼성의 실질적 리더로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포스트 이건희 시대’를 잘 열어갈지 궁금하다.

지난 3월 24일 김포국제공항 출국장. 중국 보아오포럼 참석차 이곳을 찾았던 이재용 부회장은 기자들에게 ‘갤럭시S6엣지’를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가족들과 함께 찍은 ‘셀프 카메라’ 사진을 보여주며 “화질이 좋다”고 한 것. 기능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당시 사진은 이 부회장과 기자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3월 29일 포럼 참석 후 여행용 가방을 직접 끌고 입국하는 장면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 두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2세)과 아들 이재용 부회장(3세)의 스타일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이 회장이라면 기자들과 자연스러운 쌍방향 대화를 나누진 않았을 것 같다. 질문에 특유의 카리스마가 담긴 답변을 던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공항 입국장에서 짐가방을 스스로 끌고 나오는 장면도 그렇다. 의전을 최소화하라고 신신당부했다는 점에서 이 회장과는 분명히 다르다. 부자지간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스타일 차이요, 세대 차이가 절로 느껴지는 장면이다.

지난 가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가 두 사람의 차이를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을 직접 만나본 사람들은 ‘황제경영’을 펼친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는 달리 겸손하고 가까이하기 쉬운 사람이라는 평가를 한다.” 이어 “삼성전자가 성공 가도를 이어나가기 위해선, 유능하지만 변덕스러운 기술 인재를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에 이 부회장의 이런 성격이 삼성전자의 미래에 필요한 부분”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런 평가들은 다가올 ‘이재용의 삼성 시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이 한국 재계 부동의 1위 기업군이자 굴지의 글로벌 기업군이기 때문이다. 흔히 삼성 인재의 핵심 덕목으로 ‘몰입ㆍ창조ㆍ소통’이 꼽힌다. 이 회장의 경우 ‘창조’라는 덕목이 매우 빛난 선장이었다면, 이 부회장은 ‘소통’에 무게가 더 실린 리더라는 느낌이 짙다. 이재용 체제에서는 융ㆍ복합 시대에 맞춰 ‘소통’이 더 강조될 것 같다는 얘기다.

 
그가 기자들에게 ‘갤럭시S6엣지’를 자랑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삼성 제2 창업의 신화를 일군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1년에 가깝도록 지휘봉을 놓으면서 그가 얼마나 불안했을까. “과연 이 부회장이 삼성 차기 선장으로서의 역량과 실적을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그룹 안팎의 시선과 기대가 무척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하반기 삼성의 간판기업이자 자신이 부회장으로 있는 삼성전자의 실적이 별로 좋지 못했다. ‘갤럭시S6ㆍ갤럭시S6엣지’라는 신제품이 일반의 그 같은 시선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는 ‘이재용 삼성의 구원투수’ 쯤으로 여기진 않았을까. 차제에 국내외 반응까지 좋으니 자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4월 10일 ‘갤럭시S6’와 ‘갤럭시S6엣지’ 출시를 앞두고 미국으로 출국(2일)해 열흘 정도 현지 핵심 거래선들을 만났다. 올 들어서만 벌써 세번째 미국 출장이다. 세계 최대 고가 스마트폰 시장인 미국에 승부를 건 것이다.

소통에 무게 실린 리더

삼성의 지난 1년은 총수 경영권 승계의 과도기 또는 직접적 준비기로 봐야 할 것이다. 이 회장이 쓰러져 경영권 행사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 데서 온 결과였다. 이 회장의 용태와 관련, 삼성측은 지난 3월 18일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으며, 문제없이 건강하다”는 다소 추상적인 정보를 내놓았다. 이후 추가 정보가 없었다. 이 회장의 판단능력 회복 및 경영복귀 가능성을 완전 배제하지는 못하는 민감함 때문으로 보인다. 재계는 현재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아 오너 3세 이 부회장이 ‘제3의 창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이 회장의 용태 변화를 감안하되,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준비는 그것대로 진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교롭게도 이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아 ‘제2 창업’을 선언한 나이(46세ㆍ1988년)와 이 부회장이 사실상 삼성 경영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나이(46세ㆍ2014년)가 같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일상 업무는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과 계열사 경영진이 협의하도록 하고, 그룹차원의 주요 의사결정에는 자신이 직접 간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연초(1월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신임 임원 만찬에서 “삼성의 미래를 위해 힘차게 도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아버지 이 회장이 즐겨했던 ‘도전’이란 화두를 던진 것. 이 자리는 그가 실질적으로 주재하는 그룹 차원의 올해 첫 공식 행사였다. 동생 이부진(45)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42) 제일모직 사장도 함께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년간 삼성의 실질적 리더로써 국내외의 여러 가지 일정을 소화했고 그룹 경영에도 자신의 색깔을 칠해 나가기 시작했다. 사업구조 재편을 위해 과감한 M&A에 나서는가 하면 신수종 사업에의 도전 의지를 드러냈다. 경영권 승계에 대비한 지배구조 안정화, 조직운용의 혁신 등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지난 1년간 삼성은 미국의 루프페이, 브라질의 심프레스 등 8개 외국기업을 사들였다. 유망 해외기업 인수를 통한 신성장 동력 발굴 차원이다. 이 회장이 독자기술 개발과 혁신을 통해 선진 외국기업을 추격하고 따돌리는 데 주력했던 것과는 대비된다.

비주력사업의 철수도 눈에 띈다. 한화에 삼성종합화학ㆍ삼성토탈ㆍ삼성테크윈ㆍ삼성탈레스 등 4개 계열사를 무려 2조원대에 매각했다. 재계 분석가들은 “최근 삼성의 사업구조 재편은 불확실한 세계 경제와 이 회장의 투병이라는 대형 악재를 극복하려는 생존전략의 일환”이란 평가를 내놓는다.

 
이건희 46세 vs 이재용 46세

헬스케어ㆍ금융ㆍB2B(기업 간 거래) 등 신수종사업에 매우 공격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최근 이 부회장이 베이징北京에서 중국 최대 국영기업인 시틱(CITIC)그룹 창전밍 대표를 만나 금융사업 협력 확대에 합의한 게 대표적인 예다. 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의지다. 약 2년에 걸친 계열사 간 지분 정리도 상당히 진전돼 지배구조 안정화에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

하지만 경영권 승계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조직운용에 소통을 강화한 커다란 변화도 감지된다. 4월 13일부터 삼성전자 본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자율 출퇴근제를 실시한 게 좋은 예다. 사내 집단지성 시스템인 ‘모자이크(MOSAIC)’를 가동해 제품 및 경영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내놓고 집단 사이버 토론도 한다.

삼성은 1등 기업인 만큼 세인들의 칭찬과 비판이 공존한다. 장점은 살리되 외부 지적 사항은 슬기롭게 수용하는 변화도 요구된다. 이 부회장이 걸출한 경영자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무시못할 업적과 무게감을 극복하고 자신의 색깔이 담긴 ‘제3의 창업’을 어떻게 구현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i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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