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씨 하나 안 바뀐 ‘사고의 기록’
토씨 하나 안 바뀐 ‘사고의 기록’
  • 김정덕 기자
  • 호수 137
  • 승인 2015.04.2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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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1년

월평균 1회.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세간이 주목한 대형 인재人災의 평균 발생건수다. 사고가 나면 정부는 늘 대책을 발표하고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결과는 늘 똑같다.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많은 것들이 바뀌길 바랐지만 희망이었을 뿐이었다.

▲ 세월호 참사 이후 월평균 1회씩 대형 인재가 터졌다.[사진=뉴시스]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 딱 1주년을 맞는다. 20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이 사고를 겪으며 국민은 정부의 무능함을 똑똑히 지켜봤다. 정부는 대대적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각종 안전대책을 내놓는 등 부산을 떨었다. 법도 뜯어고쳤다. 조금씩이라도 바뀌고 있는 걸까. 아니다. 1년이 지난 지금,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 철저하고 책임 있는 안전점검 시스템만 제대로 작동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대형 사고들은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에도 월평균 1건씩 끊임없이 터져 나와서다.

◆지하철 2호선 추돌 = 세월호 침몰사고가 있은 후 보름 만인 5월 2일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잠실 방향으로 가던 열차 두 대가 추돌했다. 열차 간 안전거리를 자동으로 확보해주는 장치에 문제가 생겨서다. 수동으로 운전하던 중 앞 열차가 정차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급정거했지만, 앞 열차의 뒷부분을 들이받았다. 사망은 없었지만 이 사고로 1000여명의 승객이 대피했고, 2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아찔한 상황에서도 관제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 조사에서 관제소는 사고 14시간 전에 신호에 오류가 있다는 걸 알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열차 안에서는 세월호 때와 마찬가지로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 외에 별다른 조치도 없었다. 119에 사고를 알린 것도 일반 시민이었다. 더구나 이 사고는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도로ㆍ항공ㆍ철도 등 재난 위험이 있는 시설물 4000여곳을 대상으로 특별 안전점검을 벌이던 중에 일어났다.

◆금정역 변압기 폭발 = 5월 19일에는 서울지하철 4호선 금정역(상행선)에서 변압기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동차 지붕 위에 설치된 계기용 변압기가 폭발하면서 전동차의 절연체(애자)가 파손됐고, 애자 파편에 시민 11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고 열차의 변압기는 1993년에 설치한 것으로 내구연한을 4년가량 남겨놓은 노후 변압기였다.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 다시 며칠 뒤인 26일에는 경기 고양종합터미널에서는 화재사고가 일어났다. 인부들이 지하 1층 CJ푸드빌의 복합식당가 배관공사를 하던 중 용접 불티가 가스에 붙어 일어난 화재였다. 사망자만 8명에 달했다. 1명은 뇌사, 3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110여명이 유독가스 피해를 입었다. 사고에 비해 인명 피해가 컸던 건 대량의 유독가스 때문이었다. 인테리어 자재들은 불이 붙기 쉽기 때문에 안전조치들을 취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공사 편의를 위해 화재시 자동 작동하는 소방시설(방화벽)을 차단했다. 화재가 일어나자 소방시설은 무용지물이 됐고, 인테리어 자재들로 불이 쉽게 옮겨 붙으면서 대량의 유독가스가 발생했다. 당시 담당 공무원과 공사업체의 안전점검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더구나 고양종합터미널은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대대적으로 실시된 특별 안전점검 대상에서 제외됐다.

 
◆전남 장성 효사랑요양병원 화재 = 또 이틀 뒤인 28일에는 전남 장성 효사랑요양병원에서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22명이 사망, 6명이 부상을 입었다. 직접적인 화재 원인은 치매환자의 방화다. 하지만 피해를 키운 책임은 평소 안전관리를 제대로 취하지 않았던 병원 탓이 컸다. 일단 병원 측은 환자의 화기소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또 평소 환자보다는 직원들의 편의에 초점을 둔 관리시스템이 고스란히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병원 측에 의해 결박돼 있던 일부 환자들이 대피를 못해 사망자가 늘어나서다. 병원 측이 비용절감을 위해 당직 인력을 줄인 탓이었다. 보건소의 안전점검도 허술했다. 소화기는 사물함에 넣은 채 잠겨 있어 사용할 수 없었고, 소방안전점검 대행업체는 허위 점검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원 태백시 열차 충돌 = 7월 22일에는 강원 태백시 상장동 태백역과 문곡역 사이에서 무궁화호 열차(청량리발)와 관광열차 O-트레인(중부내륙순환열차)이 충돌했다. 이 사고로 승객 1명이 사망하고, 93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O-트레인 열차를 운전하던 기관사가 적색 정지신호와 관제사의 무전교신을 무시한 채 문곡역을 무정차 통과하면서 마주오던 무궁화호 열차와 정면충돌한 사고였다. 당시 사고 열차 기관사는 한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휴대전화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던 것으로 드러났다. 열차 운행 중에는 휴대전화 전원을 끄도록 한 한국철도공사의 규정을 어긴 거였다. 이 열차는 ‘1인 승무제’로 운행돼 열차운행 시스템 문제도 지적됐다. 

사회 곳곳에 적폐 여전

◆경북 청도 오토캠핑장 급류사고 = 8월 3일에는 경북 청도군 신원리의 펜션(삼계계곡)을 찾은 일가족 7명이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전원 사망했다. 태풍으로 인해 찻길로 쓰이던 보에 하천이 범람했고, 승용차는 이 보를 지나다 급류에 휩쓸렸다. 이 보는 비가 많이 오면 수시로 잠기는 곳이어서 피서객이 고립되는 경우가 많았다. 1998년에도 폭우로 계곡물이 불어나면서 피서객 100여명이 고립됐다가 구조된 바 있다. 때문에 인근의 펜션과 야영장 업주들은 정상적인 다리를 만들어 줄 것을 지자체에 요구했다. 하지만 지자체는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 자본의 논리, 감시망 소홀, 매뉴얼 무시 등 인재의 요건은 세월호 때와 달라진 게 없다.[사진=뉴시스]
◆판교 테크노밸리 야외광장 환풍구 붕괴 = 10월 17일에는 경기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 야외광장 환풍구에 올라가 공연을 관람하던 시민들이 환풍구 덮개 붕괴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시민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일부는 환풍구에 올라간 시민들의 부주의를 지적했지만, 시스템의 문제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환풍구 시공업체가 부실하게 시공했고, 안전을 점검해야 할 행사 진행요원이 충분하지 않았다. 행사를 진행하면서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할 수 있는 주최측이 안전펜스만 쳤어도 인명피해가 없었을 거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담양 펜션 화재 = 11월 15일에는 전남 담양의 모 펜션 야외 바비큐장에서 불이 나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화재에 취약한 건물구조가 피해를 키웠다. 이 바비큐장은 단층으로 건물 전체가 목재였고, 벽면은 샌드위치 패널(다른 종류의 재료를 샌드위치 모양을 쌓아 올려 접착제로 접착한 특수합판)로 돼 있었다. 지붕은 갈대를 엮은 거였다. 고기를 굽던 중 불티가 지붕으로 튀자 순식간에 번진 것이다. 더구나 이 바비큐장에는 창문만 몇 개 있고, 출입문은 단 1개 뿐이었다. 화재진압을 위해 마련된 소화기 역시 1대뿐이었고, 그나마도 30초 만에 작동이 중지됐다.

◆오룡호 침몰 = 러시아 서베링해에서는 12월 1일 사조산업의 명태잡이 어선 ‘501오룡호’가 침몰했다. 이 사고로 27명이 사망, 26명이 실종됐다. 사조산업이 악천후 상황에서 무리한 추가 조업을 지시한 게 화근이 됐다. 오룡호는 조업 할당량(쿼터)을 채웠지만, 사조산업이 애초 할당량보다 많은 쿼터량을 채울 것을 지시했던 것이다. 또 오룡호는 지난해 2월 선박검사를 통과했지만, 선령이 36년이나 된 낡은 배였다. 파손된 부분이 있었지만 제때 수리를 하지 않아 풍랑 중에 바닷물이 유입됐다. 게다가 위기상황에 대처할 간부선원이 없어 결국 엔진을 정지하면서 전복됐다. 그뿐만 아니라 선사에서 퇴선 명령을 제때 하지 않아 선원구조 준비도 제대로 못해 참사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의정부 아파트 화재 = 2015년에도 인재는 끊이지 않았다. 1월 10일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동의 대봉그린아파트에서 시작된 화재가 인근 아파트 3개동으로 번져 4명이 사망하고 126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발화는 주차된 오토바이에서 시작됐다. 경찰조사에서 차주인 김모 씨는 오토바이 키가 얼어서 잘 빠지지 않자 핸들커버를 열고 라이터에 열을 가하면서 화재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 화재 역시 대형사고로 번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파트 건축주가 비용절감 위해 내화성이 없는 외벽마감재를 사용해 시공했고, 건물은 불법 개조되거나 건물 간격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방화문이나 내화충전구조가 없었지만 거짓으로 감리보고서가 작성되기도 했다.

▲ 많은 사람들이 벌써 세월호 참사를 잊은 듯하다.[사진=뉴시스]
◆가거도 헬기 추락 = 3월 13일에는 전남 신안군 가거도에서 응급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착륙하려던 헬기가 바다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헬기에 타고 있던 해경 등 4명이 전원 사망했다. 해무가 많이 낀 날씨로 인한 사고였지만, 헬기 이착륙장에도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37년 베테랑 헬기 기장도 출동하기가 껄끄러운 ‘악명 높은 곳’이어서다. 방파제 위에 폭 15~20m 공간에 하얀 실선으로 사각형이 그려진 게 전부였다. 그 좁은 이착륙장에는 헬기의 야간 이착륙을 도와줄 유도등조차 없었다. 사고 당일에도 주민과 공무원들이 경광봉을 들고 수신호로 헬기를 유도하려 했지만, 결국 조종사가 보지 못하고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히 자본이 안전 잠식

◆인천 강화도 캠핑장 화재 = 22일에는 인천 강화군 화도면 동막해수욕장 인근의 펜션 내 글램핑장 텐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5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했다. 화재는 텐트 바닥에 깔린 난방용 전기패널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전기패널은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이었다. 텐트 내부 전기시설 공사는 자격이 없는 이들이 전기공사업 등록증을 빌려 작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펜션은 임대를 위한 용도변경 승인을 받지도 않았다. 불법 시설물을 싼 가격에 세워 놓고 임대업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화재사고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경기 용인 교량 붕괴 = 3월 25일에는 경기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인근의 교량공사(남사~동탄) 현장에서 교량 상판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명이 사망, 8명이 부상했다. LH공사가 동탄신도시 광역교통계획의 하나로 발주한 이 공사는 2012년 말부터 롯데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그런데 특별감사 결과 롯데건설은 129건의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것으로 밝혀졌다. 반드시 준수해야 할 ‘공사 시방서’도 준수하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했다. 시공 전 수행하는 ‘위험성 평가’는 물론, 안전사고 예방활동도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 발주자인 LH공사도 재해예방에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한 산업안전보건관리비(약 2700만원)를 시공사에 지급하지 않았다. 롯데건설과 협력업체들도 산업안전보건관리비(약 1700여만원)를 사용하지 않았다. 안전시설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거였다.

세월호 이후 지적 내용, 이전과 똑같다

지난해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확실히 인재라고 할 수 있는 것들만 추렸다. 포스코 가스 폭발사고나 LS니꼬동제련 울산공장 폭발사고,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직원들의 안전사고 등 인재로 볼 수 있지만 산업안전사고에 속하는 것들은 모두 제외했다. 그런데도 대형 인재는 월평균 1회씩 꼬박꼬박 일어나고 있다.

주목할 것은 각 사건이 종류는 달라도 인재가 일어나는 시스템은 거의 비슷하다는 거다. 안전점검이나 감시만 제대로 했어도, 민원에 조금만 귀를 기울였어도, 사업자들이 너무 이윤추구에만 몰두하지 않았어도 많은 인재를 막을 수 있었다.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지적된 문제점과 비교해 새로운 건 하나도 없다. 그만큼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바뀐 게 없다는 방증이다. 우리가 두고두고 반면교사해야 할 세월호 침몰사고의 약발이 벌써 다 된 건 아닐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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