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내정자

▲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내정자가 시장의 기대처럼‘구관이 명관’이 될지 아니면 노조가 원치 않는 악역을 맡을지 관심이 쏠린다.[사진=뉴시스]
정성립(65) STX조선해양 사장이 오는 6월 친정 대우조선해양 사장으로 복귀한다. 떠난 지 9년만이다. 재계는 그의 귀환을 매우 이례적인 일로 본다. 25년간 대우조선해양에 있으면서 두차례(2001~2006년)나 사장을 맡은 후 떠난 인물이기 때문. 사장 선임 문제로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벌이는 신경전도 만만치 않다. 그가 기대처럼 ‘구관이 명관’이 될지, 노조가 원치 않는 악역을 맡을지 말들이 많다.

“대우조선해양에 누구보다 애착이 강하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으니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해보겠다.” “어깨가 무겁다. 아무래도 부담이 많이 된다.” 지난 6일 산업은행에 의해 대우조선해양 사장 후보로 추천 받은 직후 정성립 STX조선해양 사장이 몇몇 언론을 통해 밝힌 심경이다. 기왕 추천을 받았으니 절차를 거쳐 취임하면 열심히 해보겠지만 결코 쉽진 않을 것 같다는 취지다. 지난 10일 이사회에서 그의 선임 안건이 통과됐으니, 이제 5월 29일 예정된 임시주총 통과 절차만 남았다.

추천 직후 ‘외부 인사’라는 이유로 한사코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노조 분위기도 그새 많이 누그러졌다. 게다가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강력한 추천까지 받고 있으니 6월 ‘정성립호號 대우조선해양’ 출범은 사실상 공식화된 거나 마찬가지다. 지난 연말부터 4개월이나 끌었던 고재호 사장 후임 인선 문제가 일단락된 것. 커다란 사태 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사장 인선 문제로 회사 안팎에서 잡음이 무척 많았다. 심지어 올해 경영악화의 최대 요인으로까지 비쳤다. 지난 3월 임기 만료된 고 사장은 현재 임시대표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대우조선해양 사장 인선에 왜 이렇게 말이 많고, 관심도 클까. 대우조선해양이 생각보다 덩치가 큰 글로벌 기업인데다 회사 주인도 민간기업이 아닌 공기업(산업은행)이기 때문에 그렇다. 정부나 정치 쪽에서 사장 인선에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민영화된 포스코 최고경영자(CEO) 인선에 정부 입김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사정은 대우조선해양의 역사나 지배구조 등을 살펴보면 좀 더 잘 알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소위 국내 ‘조선 빅3’로 불리는 세계 굴지의 조선사다. 연 매출 16조원 상당에 종업원 3만여명(협력사 포함)을 거느린 거대 제조업체다(그래픽 참조).

사력社歷도 37년(1978년 설립)에 이르며, 그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1973년 설립)부터 치면 42년에 육박한다. 한때 대우그룹 주력계열사였지만 그룹해체(1999년) 여파로 이듬해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에 들어가는 등 굴곡이 많았다. 매각실패와 출자전환 등을 거치며 공기업인 산업은행이 최대주주로 주인 역할을 하고 있다.

1980~1990년대 경남 옥포의 대우조선 노조는 울산의 현대중공업 노조와 함께 한국 노동운동의 메카라 불릴 정도로 그 위세가 컸다. 1989년 당시 양동생 초대 노조위원장이 ‘대우 조선, 파업이냐 폐업이냐’를 놓고 김우중 회장과 벌였던 담판은 유명하다. 이번 정성립 사장 인선 문제를 놓고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신경전을 벌이는 것을 보노라면 그때 역사가 떠오른다.

지난 연말 고재호 사장 후임 얘기가 나온 이후 몇몇 사내 인사들이 후보 하마평에 올랐고 고 사장 연임 얘기도 돌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비방과 투서 등이 난무해 회사 경영에 차질이 생길 정도였다. 인선을 질질 끄는 산업은행의 직무유기론마저 불거져 나왔다. 지난 3월 말 주총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넘겼다. 잡음 속에 4개월여 뜸을 들인 끝에 산업은행은 ‘정성립 카드’를 들고 나왔다. 하마평에 올랐던 사내 인사 모두를 물 먹인 반전 카드였다고나 할까.

산업은행 측은 지난 6일 “정성립 후보자가 대우조선해양의 기업 문화를 이해하고 있는데다 경영혁신 의지를 갖고 기업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전문경영인이라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는 말로 추천사를 대신했다. 재계에서는 그의 두 가지 경력이 인선 배경으로 꼽혔다. STX조선해양 대표이사로 조 단위 적자 규모를 3000억원 수준으로 낮추는 등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대우조선해양 사장 시절 그룹해체 여파로 워크아웃 상태였던 회사를 1년 만에 정상화해 경영난 극복 역량도 검증됐다는 것. 심지어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나와 산업은행에서 첫 직장생활(1974~76년)을 한 그의 이력까지 주목을 받았다.

정성립호 대우조선, 사실상 공식화

하지만 노조는 이때부터 즉각 반격에 나섰다.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대규모 인력 감축과 STX해양조선과의 통합이란 큰 계획 아래 추천됐다는 거였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값을 올려 매각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만큼 그가 그런 미션을 받아 추천됐다는 음모론을 폈다. 비록 대우조선해양 사장 시절 경영을 잘 했고, 노조와도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지만 그건 옛날 일로 치부했다.

노조는 일단 남의 회사 경영자로 간 만큼 ‘외부 인사’라며 각을 세웠다. 심지어 ‘후배들에게 해악을 끼치지 말라’는 투의 뼈아픈 공격까지 했다. 금융가에서는 채권단이 정 후보자를 고리로 인위적인 조선업 재편에 나서려 한다는 설까지 흘러 나왔다. 이런 가운데 정 후보자가 8일 노조를 찾아가 “노조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해 접점을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가 구두 약속을 문서화하고 이후 사태 진전을 주시하겠다고 다짐하는 가운데 반대 분위기가 많이 완화됐다. 14일엔 STX조선해양의 새 대표이사 후보로 이병모(58) 대한조선 대표가 추천돼 STX조선해양 합병 음모론도 많이 희석됐다. STX조선해양의 최대주주 역시 산업은행이다.

▲ 정성립 사장 내정자가 이끌어야 할 대우조선해양은 세계 굴지의 조선사다. 사진은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2014 국제해양플랜트 전시회’에 마련된 대우조선해양 부스.[사진=뉴시스]
이제 사장 인선 지연과 불협화음으로 인한 부작용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내부 줄서기•투서 등으로 흐트러진 조직 기강을 추스르는 일, 올들어 계속 부진했던 해외 영업력을 조기에 회복하는 일 등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물론 임금협상을 기다리고 있는 노조와 화합하는 일도 주요한 숙제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4000억원이 넘는 영업흑자를 기록하며 빅3 조선사 중 가장 앞선 실적을 보였다. 하지만 부채비율이 300%를 넘는 등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수주여건이 나빠진 게 큰 걱정거리다. 올 수주액이 1월 10억 달러, 2월 4억 달러 정도로 급감했고 3월엔 단 한 건도 수주하지 못해 충격을 던져줬다. 올 수주목표 130억 달러 달성이 발등의 불이 됐다.

정 내정자, 해결할 과제 산더미 

영업통인 정 후보자는 경쟁업체(현대ㆍ삼성중공업)들도 어렵긴 마찬가지라며 시황 회복기미도 있어 조만간 수주 회복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재계는 조선 전문경영인인 그의 능력을 비교적 높게 평가한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그는 현장을 중시하는 소통형 리더로 알려져 있다. 조선공학과 출신으로 선박설계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를 경험했다. 대우조선이 탄생해서 워크아웃~회생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본 대우조선해양이 낳은 경영 인재다. 6월 취임과 함께 조직을 새로 추스르고 해외영업력을 회복하며 노조와도 화합해 나갈지 주목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i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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