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의 보이지 않는 손 ‘錢主’의 세계

짧은 머리? 험악한 인상? 거친 말투? 아니었다. 60대 초반의 평범한 아저씨. 사채업자에게 뒷돈을 대고 사채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전주錢主’는 그런 모습이었다.

■ 임대업자 가면 쓴 사채업자
“도박자금 꽁지가 전주의 시작”
■ 신분 노출 막기 위해 아는 사채업자와만 거래
■ 전주→사채업자→수금팀, 다단계 영업과 비슷
■ 장부만 살짝 바꾸면 탈세 식은 죽 먹기
■ 세무조사 등 정부 단속 한번도 안 받아
■ 정부단속은 여우비 … 전주는 안 걸려

▲ 불법 사채업을 단속할 때 전주는 수사대상에서 제외되곤 한다.
서울 마포에 건물을 갖고 있는 유병철(가명ㆍ62)씨. 월세로만 8000만원을 벌어들이는 그의 진짜 직업은 따로 있다. 사채업이다. 부동산 임대는 부업이다.
유씨는 사채로 번 돈으로 건물도 마련했다. 그가 ‘돈놀이’를 한 것은 40대 초반부터다.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는 게 사채업을 시작한 계기다.

“도박 하우스에서 카드를 치다 우연한 기회로 도박자금을 대주는 ‘꽁지’가 됐다. 1990년대 중반에 2000만원을 도박꾼들에게 융통했는데 금세 돈이 불더라. 월 500만원씩 벌었다.”

종잣돈이었던 2000만원은 20년이 흐른 현재 350배, 70억원으로 불어났다. “사채로 버는 한달 수익이 2억원이 조금 넘는다. 이 돈을 다시 사채로 융통한다. 자본금을 늘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기업 회장 부럽지 않다.”

유씨는 임대업자 가면을 쓴 사채업자다. 더 정확히는 ‘전주錢主’다. 사채업자에 돈만 대고 일정 이율의 수익을 가져간다. 다시 말해 유씨는 시중 사채업자와 거래하는 ‘숨은’ 사채업자인 셈이다. 유씨에게 돈을 빌린 사채업자는 대출 의뢰인에게서 이자를 받아 상위에 있는 유씨의 이자를 갚는다. 쉽게 말해 ‘전주→사채업자→수금팀’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다단계 영업방식과 흡사하다.

유씨도 주머니 사정에 따라 투자를 받기도 한다. 큰 건이다 싶으면 지인들과 함께 목돈을 만든다. 이 돈을 사채업자에게 건네면 알아서 불려준다. 투자하는 이들은 평소 알고 지내는 학원 원장, 유흥업소 사장, 룸살롱 마담, 중소기업 대표 등이다. 유씨는 “연예인도 있다”고 말했다.

유씨는 사채 뒷돈을 대면서 나름 고충이 있다고 했다. 돈 떼이는 ‘사고’가 너무 잦다는 것이다. 유씨는 이런 위험 부담 때문에 더 악질적으로 돈을 관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선 돈을 풀 때 신규 거래를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알고 지내는 사채업자만 상대한다. 그렇다고 특혜를 주는 건 아니다.  누구에게든 선先이자와 수수료를 뗀다. 원금 상환과 이자 입금 약속을 어기면 그날로 불법추심을 시작한다. 

그는 “일반인들이 생각할 때 가장 어려울 것 같은 세금 관리는 되레 쉽다”고 말했다. “업무를 위임한 세무사에게 ‘용돈’만 찔러주면 장부조작은 식은 죽 먹기다. 사채시장에 있는 전주 중에서 번만큼 세금을 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유씨 역시 세금을 낸 적도, 세무조사를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사채에 양심은 없다. 법 테두리 안에서 영업을 했다간 내가 죽는 게 이 바닥 생리다. 불법과 탈법이 성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MB정부는 2012년 불법 사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국세청과 금융감독원은 사채 관련 피해 사례를 수집했다. 경찰은 사채업자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다. 검찰은 불법사금융 합동수사본부까지 꾸려 고금리 사채업 등에 대한 특별단속에 나섰다. 성과는 있었지만 사채시장의 ‘돈줄’을 완전히 뿌리뽑지는 못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유씨는 웃었다. 잠시 스쳐가는 ‘여우비’를 피했울 뿐이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 같은 전주는 문제가 없다. 직접 서민을 상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걸려도 사채업자만 걸리지 전주는 무사하다.”
이윤찬ㆍ김성수 기자 chan487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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