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이재영(58)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 사장이 ‘부채공룡 LH’ 오명 탈출에 제법 성과를 냈다. 지난해 말 대비 9조6000억원 상당의 금융부채를 경감시킨 것. 국내 최대 공기업 수장으로 취임한 지 약 2년 만에 거둔 무시할 수 없는 성적표다. 분당 본사 사옥 로비에 대형 ‘부채 시계’를 내거는가 하면 판매와 사업다각화, 원가절감 등에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5월 진주 본사시대를 맞는 LH에 2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

▲ 이재영 사장은 취임 1년11개월 만에 상당한 규모의 금융부채를 줄였다.[사진=뉴시스]
4월 하순 내내 경기도 분당의 LH 본사(정자사옥)는 분주했다. 5월부터 출범하는 경남 진주 본사로의 막바지 이사 때문이다. 국내 최대 공기업 LH가 분당시대를 마감하고 진주시대를 열고 있는 역사적(?) 순간이기도 하다. 6000여명의 임직원들이 진주 본사와 수도권을 중심으로 ‘재배치’라는 또 한 번의 진통을 겪고 있다. 2009년 10월, 당시 대한주택공사(주공)와 한국토지공사(토공)가 통합돼 거대 공기업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 재출범한 지 5년6개월 만이다.

과거 주공ㆍ토공은 국민들과 아주 밀접한 공기업이었다. ‘주택과 토지’라는 부동산 양대 축을 관장하면서 40~50년간 국민들의 경제적 상승욕구를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MB정부시절 “부실 덩어리를 통합해서 뭐 어쩌겠다는 거냐”라는 비난 속에 LH로 재발족해 오늘에 이르렀다. 기능 통합을 통해 순기능은 살리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출범 1년여가 지난 2010년 말 금융부채가 91조6000억원에 이르렀다. 말이 쉬워서 그렇지 하루 이자만 100억원이 들어가는 구조였다. ‘부채 공룡’ ‘부실 공기업의 대명사’란 비난을 피할 길이 없었다. 국민들을 위한 사업을 하다 보니 그런 결과가 됐다지만, 정작 국민들의 시선은 따가웠다.

이런 가운데 2013년 6월 취임한 이재영 사장은 ‘부채공룡 LH’에 반기反旗를 들었다. ‘부채 감축’에 경영의 초점(선택)을 두고 이에 집중했다.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는 공개 경영에 나선 것. 시작은 좀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분당 본사 1층 로비 벽면에 가로 7m, 세로 2m의 대형 ‘부채負債 시계’를 내걸고 매일 모든 사람들이 부채현황을 보도록 했다. 이 시계는 부채 현황을 일 단위, 원 단위로 표시한다. 임직원들은 물론 방문객들도 모두 볼 수 있게 완전 공개했다. 사내 포털 메인 화면에도 일 단위로 부채 규모를 표시토록 했다.

4월 22일 현재 ‘부채 시계’ 전광판에는 ‘96,125,909,647,845원’이란 숫자가 쓰여 있다. LH 금융부채가 96조1259억원 상당이란 얘기. 이 사장이 취임했던 2013년 말 금융부채는 105조7000억원이었다. 1년 4개월 만에 약 9조6000억원의 금융부채를 줄였으니 상당한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 2009년 LH 출범 이후 전년보다 금융 부채가 감소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말 금융부채는 98조5000억원이었다(그래픽참조). 이 사장이 방향을 잡고 6000여 임직원들이 매일 부채시계를 보며 합심 노력한 결과였다.

 
금융부채가 줄면서 임대주택 등 고정자산을 포함한 LH 총부채도 2013년 말 142조2602억원에서 지난 연말 137조원대로 줄었다.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무디스ㆍS&Pㆍ피치) 모두 지난해 LH의 국제 신용등급을 A1(안정적)에서 Aa3(안정적)로 정부와 동급으로 상향 조정했다. 물론 자본금 30조원, 매출 21조2419억원(2014년)인 LH의 현재 금융부채가 96조1259억원라면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여전히 공기업 중 가장 많은 부채를 가졌다. 하지만 공기업 경영의 패러다임을 전환해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둬 냈으니 화젯거리가 아닐 수 없다.

부채감축에 경영 초점 맞춰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을까. 이 사장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국가 부채시계’를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이 국가부채의 심각성을 경고하기 위해 1989년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설치한 것을 본떴다. 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전 임직원과 공유하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조치였다. 이 시계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부끄럽고 답답하다” “쓸데없는 짓” “보여주기 위한 쇼”라는 부정적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치부를 드러내 놓고 노력한 결과 조금씩 부채가 줄어들었다. 힘을 얻은 임직원들이 많아지면서 다시 부채 감축 노력을 더 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가 나타났다. LH 관계자는 “최고경영자의 최우선 목표가 부채 감축이란 점을 명확히 인식시키는 효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LH 명물이 된 ‘부채 시계’도 조만간 진주 본사로 옮겨질 것 같다. 

이 사장은 부채감축 4대 경영지침으로 ▲총력판매 ▲사업조정 ▲경영 효율화 ▲자산매각 등을 내걸고 이를 강력히 추진했다. 무엇보다 미분양 토지ㆍ주택 판매에 총력을 기울였다. ‘판매목표 관리제’와 ‘판매신호등’이란 제도도 도입했다. 판매목표 관리제는 해마다 본사 사업ㆍ판매담당 부서장, 지역ㆍ사업본부장들과 1대1로 판매경영계약을 맺고 연말 판매실적을 인사나 인센티브에 반영하는 제도다. 그 결과, 지난해 27조2000억원 상당의 토지와 주택을 팔았다. 사상 최대였다.

2013년 22조원보다 24% 늘어났으며, 지난해 판매목표 17조8000억원을 크게 상회한 것이었다. ‘판매신호등’ 제도는 회사 포털 사이트를 통해 본부별 토지 판매 성적표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한 것. 월별로 목표를 100% 이상 초과 달성하면 신호등에 초록색 불이 켜진다. 80~100%면 노란색, 80% 미만이면 빨간색 불이 온다. “가혹하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지만 임직원들이 사활을 걸고 판매에 나서는 촉진제가 됐다.

 
이 사장은 사업다각화와 강력한 원가절감 노력도 동원했다. LH는 연평균 5만 가구 정도의 서민용 임대주택을 건설한다. 하지만 한 채당 8000만원 상당의 부채를 안겨준다. 1년에 임대주택 5만 가구를 지으면 LH는 4조원 상당의 부채가 새로 생긴다는 얘기가 된다. LH는 올해 민간자본을 활용해 자체 사업비를 1조원 정도 절감할 계획이다. 지출은 줄이지만 사업 규모는 줄지 않도록 민ㆍ관이 합동으로 택지를 개발하고 임대주택을 짓도록 한 것. 민간 기업은 일거리가 늘고, LH는 부채 증가 없이 국책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윈윈 해법이다. 허리띠 졸라매기에도 나섰다. 대형 공기업 중 처음으로 노사합의를 통해 방만 경영 개선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1인당 복리후생비를 2013년보다 266만 원 줄였다는 것.

“공기업 경영정상화 롤 모델로 충분”

재계 관계자는 “LH는 공공기관 경영 정상화의 롤 모델로 삼아도 될 것”이라며 “노조의 반대를 끝까지 듣고 경영개선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이 사장이 금융부채 줄이기에 그나마 성공한 것은 ‘부채 시계’ 등을 통한 공개경영과 민ㆍ관 협력사업 전개, 노사협력 도출 등에 힘입은 바 크다. 따라서 앞으로도 LH의 부채 감소 추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그 동력이 언제까지,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 사장은 오랜 관료 생활을 통해 주택과 토지정책에 관한 노하우를 체득한 CEO다. 대對국민 사업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당국과의 소통에도 유리한 입장이다. 그런 장점과 지난 2년간의 경영 성적을 결합해 진주 본사 시대에 더욱 커다란 결실을 맺기를 기대해 본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i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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