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상인의 덕목

▲ 최근 윤리경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일류상인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능수능란한 화술로 상대방을 설득하면 그만일까. 아니면 빼어난 기술력으로 멋들어진 제품을 만들어내면 그만일까. 둘 다 아니다. 일류상인에게 필요한 건 ‘정직함’이다. 수많은 기업이 최근 윤리경영을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류상인이 되는 비결를 짚어봤다.

중국 초나라에 상인에 관한 일화가 있다. 방패와 창을 같이 파는 상인은 “자! 이 창은 그 어떤 방패라도 단숨에 뚫을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방패를 들고서는 “자! 이 방패는 그 어떤 창이라도 다 막아낼 수 있습니다”고 외쳤다. 앞뒤가 다르니 최소한 둘 중에 하나는 거짓말인 셈이다. 창과 방패를 다 팔아야 하는 상인 처지에서는 본의 아니게 거짓말도 해야 하지만 물건을 사야 하는 사람은 알고도 속아야 하니 안타까울 노릇이다.

상인은 하루에도 몇번씩 고객ㆍ거래처ㆍ지역사회 등에 약속을 한다. 과연 이 약속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어느 상인은 말한다. “이거 밑지고 파는 겁니다.” 다른 상인은 “우린 정직한 백화점입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버터를 바른 것처럼 능수능란한 화술로 단숨에 상대방을 설득한다고 과연 일류상인일까.

최근 윤리경영이 화두가 되고 있다. 윤리란 옳고 그름을 구분해 주는 도덕적 지침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기업윤리와 직업윤리가 그것이다. 기업윤리는 사업을 할 때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직업윤리는 직업과 관련해서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문제는 이 두 윤리 사이에 충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최선이지만 도덕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잘못된 일이 생길수도 있다. 또한 직업윤리나 개인윤리가 기업윤리와 부딪힐 경우도 종종 있다. 회사 관점에서 보면 회사이익을 증진시켜야 한다. 그렇지만 직업윤리나 개인윤리도 지켜야 한다.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기업체 간 혹은 공무원들 간의 비즈니스에서 어떤 선물도 주지도 받지도 않는 윤리경영이 시행되고 있다.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수백만명의 사람, 언론에 다뤄지지 않은 상당수의 사람은 정직하게 사업을 해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반대로 우리는 거대 기업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것도 지켜봤다. 어떤 면에서 보면 기업이 망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이는 조그만 틈 때문에 댐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아무리 건실한 기업이라 할지라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다.

수많은 기업이 윤리경영을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엔 디지털로 대표되는 시대의 흐름도 한몫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서는 나쁜 일일수록 빠르게 확산된다. 아날로그 시대에서는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었던 문제도 디지털 시대에서는 용서받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거짓을 일삼다가 하루아침에 몰락한 기업은 한둘이 아니다.

중요시되고 있는 윤리경영

세이부西武 백화점ㆍ세이부 철도ㆍ프린스 호텔ㆍ세이부 라이온스 야구단 등 135개의 계열사와 3만명의 사원을 거느린 ‘세이부 왕국’의 수장 쓰쓰미 요시아키堤義明가 피의자 신분으로 구속됐다. 1990년 당시 약 17조원의 자산을 보유한 세계 최고의 갑부가 범죄자가 된 이유는 거짓말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2004년 5월. 쓰쓰미 회장은 얼마 후 당시의 종이주식이 전자주식으로 바뀐다는 보고를 받았다. 전자주식으로 전환할 때 실명확인이 이뤄지면 다른 사람의 명의로 위장해 놓은 주식이 발각되고 이를 이유로 세이부철도가 상장 폐지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쓰쓰미 회장은 증권거래소에 허위보고를 지시했다. 이후 위장 지분 조사가 심해지자 지인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주식을 팔아 치우기 시작했다. 일단 지분을 줄이고 나중에 사과를 하면 일이 해결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거래소와 일반주주를 속인 세이부철도를 상장폐지 했고 세이부의 주식은 폭락했다. 게다가 쓰쓰미 회장은 내부 정보를 이용한 주식매매로 이득을 얻어 내부자 거래법도 위반했다.
▲ 아무리 건실한 기업이라도 소비자의 신뢰를 잃어버리면 살아남기 힘들다.[사진=뉴시스]

세이부 그룹과는 반대로 윤리경영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디지털 회사의 대부 격인 인텔이다. 인텔은 뇌물과 리베이트ㆍ선물 수수ㆍ기업과 개인간 이해상충ㆍ반독점ㆍ주식거래ㆍ정보관리ㆍ대외접촉ㆍ공급업체 준수 사항 등의 철저한 윤리규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인텔은 뇌물과 선물을 구별하기 위해 선물한도를 25달러(약 2만6000원)로 책정하고 이를 넘기지 못하도록 문서화 했다. 또한 구체적인 금액을 알기 어려운 선물은 돌려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반환이 어려운 경우에는 자선단체에 기증하거나 회사 내에서 소비하도록 규정하고 ‘공무원에게 선물을 할 때는 더욱 조심하라’는 규범도 있다. 개인 프라이버시도 철저하게 지킨다. 사전 고지 없이는 아무리 직원이라도 개인정보를 알아볼 수 없다. 회사는 개인정보를 알아보는 것도 철저히 업무 목적을 위해서만 가능하고, 목적이 완료되면 해당 개인정보를 삭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회사가 아무리 직원이라 할지라도 사생활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규정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최근 많은 기업이 윤리경영을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이 구체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인텔처럼 구체적이면서 바로 실천하게 한 규정이 많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21세기는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행세를 할 수 있는 환경이다. 말 그대로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기 어려운 세상이란 얘기다.

편법 경영에 무너진 세이부 그룹

최근 언론에서는 이완구 전 총리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거짓말이 회자되고 있다. 이 전 총리는 고故 성완종 전 회장과 친분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수사 결과 지난 1년간 총 210차례의 통화를 한 것으로 밝혀져 거짓말을 한 꼴이 됐다. 김 전 비서실장도 마찬가지다. 2006년 박근혜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독일ㆍ벨기에 방문을 수행한 자신에게 10만 달러를 건넸다는 성 전 회장의 주장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한 거짓말이 들통 났다. 김 전 비서실장은 방문 비용을 당시 자신을 초청한 독일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에서 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데나워 재단은 “박 대통령 일행의 방문 비용을 지원하지 않았다” 밝혔다.

거짓말의 끝이 어디인지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고구마 줄기처럼 계속 나오는 실정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모순’을 떠올린 것은 말 잘하고 거짓말 잘하는 상인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코 일류상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반드시 곱씹어 봐야 하는 고민거리는 ‘일류상인은 과연 몇 퍼센트까지 정직해야 하는가’일 것이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 tigerhi@naver.com 정리 |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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