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대부 ❾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본성의 선악 문제는 치열한 논쟁거리였다. 동양에서는 맹자와 순자가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로 충돌했고 서양에서는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가 대립한 이래 끊임없이 지속됐다.

영화 대부의 한 장면.[사진=뉴시스]
인간 내면에 잠재한 선악의 대립은 현대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히틀러는 현대사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악마’다. 그러나 유태인 700만명을 가스실로 보낸 악마가 보여주는 인간적인 면모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히틀러가 시골 사진관의 순박한 처녀 에바 브라운에게 보여준 사랑은 무척이나 순수하다. 그는 베를린의 방공호 속에서 자살 직전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렸다. 또한 히틀러를 모셨던 여비서는 그를 ‘매우 자상한 아버지’같은 인물로 회고했다.

히틀러는 연주회장에서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을 들으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독일 출신의 유태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전체주의와 인간폭력성의 문제를 연구하고 규명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가 히틀러의 악마성에 받은 충격의 영향이 커서다. 특히 아렌트는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에 주목했다. 유태인 학살의 총지휘자였던 아이히만은 종전 후 아르헨티나로 잠적했다. 1963년 이스라엘 비밀경찰에게 체포돼 예루살렘으로 압송, 재판정에 섰다.

판사는 아이히만의 범죄사실을 증언해줄 증인으로 가스실에 보내졌다 살아남은 한 여인을 불렀다. 그 여인은 아이히만을 본 순간 재판정에서 졸도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여인이 가스실의 악몽을 떠올리고 졸도했으리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깨어난 여인은 의외의 말을 했다.  “악마의 얼굴이 저렇게 평범할 줄이야….” 그것이 여인이 충격을 받고 졸도한 이유였다. 그 여인은 자신이 아이히만일 수도 있고, 자신의 속에도 아이히만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현실에서의 악마는 동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뿔 달린 괴물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다. 아이히만의 얼굴을 본 유태인 여인의 얘기처럼 악마도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영화 ‘대부’의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일상 역시 평범하기 그지없다. 단지 어느 순간 필요와 조건에 따라 악마로 돌변한다. 최근 우리나라는 정치판의 검은돈 문제로 뒤숭숭하다. 정치인이라고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악마성을 보유한 건 아니다. 보통 사람이 가진 악마성이 잘 표출되는 환경에 있을 뿐이다. 정치인이 악마의 얼굴을 하지 못하도록 시민들이 끊임없이 감시하고 온전히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인재경영의 귀재로 평가받았던 삼성의 고故 이병철 회장의 인사 철학은 의인불용疑人不用, 용인불의用人不疑다. ‘의심 가는 사람은 쓰지를 말고,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의인불용은 몰라도 용인불의까지 우리네 정치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도리어 ‘의인불선疑人不選, 선인불신選人不信’의 원칙이 적용돼야 하지 않을까. “의심가는 사람은 뽑지 말자, 뽑은 사람도 믿지는 말자.” 그러고 보면 시민 노릇 제대로 하기가 재벌총수 노릇보다 더 피곤하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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