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행의 재밌는 法테크

▲ 법률 소송상에서 입증책임이 있는 자가 이를 증명하지 못하면 패소할 가능성이 크다.[사진=뉴시스]

법원은 객관성ㆍ합리성의 보장을 위해 사실인정의 자료로서 ‘증거’를 요구한다. 그런데 주장하는 증거가 불확실한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당사자가 받는 불이익이 ‘입증책임’이다. 증거가 없을 때의 패소위험이다.

환갑을 넘긴 A씨는 고향에서 결혼한 후 두 딸을 키우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여동생을 늘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려운 살림 때문에 고단한 어린 시절을 함께 견뎌낼 수밖에 없었던 추억 때문이다. 그래서 여동생 가족이 고향생활을 정리하고 서울에 올라와 살게 되자 A씨는 자기 소유의 빌라를 기꺼이 내주었다. 여동생 가족이 서울에 정착하기 위해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집세를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10년을 공짜로 살았다. 그사이 여동생은 돈이 생길 때마다 그 돈을 A씨에게 맡겼다. 자기 남편과는 사이가 무척 나빴는데, 그래서인지 돈을 오빠에게 맡긴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여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그러자 얼마 후 여동생의 남편인 B씨가 ‘자신의 아내가 맡겨 놓은 돈을 돌려 달라’며 A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왔다. A씨는 여동생이 맡긴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돌려줬다. 그런데 돈을 받을 때는 통장으로 받은 반면 돌려줄 때는 현금으로 준 것이 문제였다. 돈을 돌려줬다는 증거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A씨는 1심에서 패소했고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A씨는 어떻게 항소심 재판에 임하는 것이 현명할까. ‘입증책임’을 이해하면 답을 내리기가 수월하다.

민사재판은 구체적 사실을 소전제로, 법규의 존부와 해석을 대전제로 해 권리관계의 존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사실관계에 관해 당사자 간에 다툼이 있는 경우에는 법원이 그 존부를 확정해야 하고, 이때에 법원의 사실인정은 객관적ㆍ합리적인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객관성ㆍ합리성의 보장을 위해 사실인정의 자료로서 ‘증거’가 요구된다.

그런데 소송상 입증이 필요한 사실의 존부가 확정되지 않을 경우 이를 ‘진위불명’이라고 한다. 진위불명의 경우에는 그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된다. 나아가 그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법률판단을 받게 된다. 이렇게 진위불명에 대해 당사자가 받는 불이익을 ‘입증책임’이라 한다. 쉽게 말하면 증거 조사를 해 보았으나 증거가 없을 때의 패소위험을 뜻한다.

당사자의 입증 노력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때에 법원은 진위불명이라는 이유로 재판을 거부할 수 없고, 사실이 증명될 때까지 소송을 무한정 연기할 수도 없다. 입증책임은 이러한 진위불명의 경우를 사실의 부존재와 같이 취급해 당사자 일방에 대해 그에게 유리한 법규를 적용치 않는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여금청구사건에서 ‘금전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이 진위불명의 상태에 이르면 대여사실이 없는 것으로 취급해 입증책임을 지는 원고에게 불리하게 판결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입증책임 분배’가 있다. 각 당사자가 자기에게 유리한 법규의 요건사실 존부에 대한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권리의 존재를 주장하는 자는 권리 근거규정의 요건사실에 대해 입증책임을 지게 된다. 위 사안에서 ‘입증책임 분배’에 따르면 B씨는 ‘자신의 처가 A씨에게 돈을 맡긴 사실’을 입증하고, A씨는 ‘돈을 반환한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만약 A씨가 항소심에서 돈을 반환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다면 결과는 1심과 동일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junhae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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