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비만 Exit | 살과 사랑 이야기
말랑말랑한 지방 덩어리처럼 부드러운 얘기로 편하게 강의를 하겠노라고 청중에게 강의의 서두를 알렸다. 시작은 무난했지만, 문제가 발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강의를 망친 강사가 청중 탓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필자는 그날 한 청중 덕분에 강의를 망쳤다. 물론 그 여성이 필자의 강의를 망칠 생각은 아니었을 테지만.
맨 앞에 앉은 여성은 한눈에 보기에도 비만한 몸집의 소유자였다. 관심이 있으니 맨 앞자리에 앉았으려니 생각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먼저 사람과 동거를 하던 돼지를 예로 들었는데, “돼지는 인간의 집에 침입한 뱀을 잡아먹었고, 인간은 자신의 똥을 돼지에게 제공하였다” 뭐 이런 얘기였다. 필자는 연이어 수분이 없는 지방의 특성상 ‘벼락을 맞아도 안전하다’ ‘혈관이 적어 뱀에 물려도 생존율이 높다’는 농반진반의 말을 던졌고, 청중은 폭소를 터트렸다.
그런데 그 즈음에 그녀는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빗대어 말할 의도가 없었음에도 그녀는 은연 중 자신을 의식했을 것이고 그것이 걷잡을 수 없는 상처가 된 것이다. 강의장에는 울고 있는 그녀와 필자뿐이란 착각이 들었고 이내 필자도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강의 중에 그녀를 달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강의장 밖으로 쫓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원인이 뭔지도 모른 채 강의는 뒤죽박죽 됐고,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강의가 끝난 후 텅 빈 강의실에서 소품들을 주섬주섬 챙기는데 어디선가 “청중도 아우르지 못하는 네가 무슨 강사냐”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녀가 앉아 있던 자리는 텅 빈 채, 눈물을 닦은 듯한 휴지만 덩그러니 남았다. 한명에 집중한 결과로 199명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은 오랜 기간 필자의 마음에 남았다.
그 후로 10여 년이 흐른 지금은 강의 중 특정인을 의식하는 일은 없다. 뒤에서 컵라면을 먹거나 큰 소리로 전화를 받아도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필자 앞에 앉아 눈물을 흘리던 그 여성에 대한 기억은 지우기가 힘들다. 바람이 있다면 그 여성이 올바른 다이어트를 통한 체중감량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그로 인해 한층 더 밝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것이다.
인간의 건강을 논한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며 많은 이들이 불안을 조장하여 상업적 이익을 챙긴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눈물을 진심으로 닦아줄 수 있는 강의에 필자는 평생을 바칠 것을 약속드린다.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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