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

▲ 최병오 회장이 글로벌 No.1 종합패션유통기업의 완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사진=뉴시스]
최병오(62) 패션그룹형지 회장이 사업 영토 확장에 몰두하고 있다. 2012년 창업 30주년을 맞아 선언했던 ‘제2창업 및 글로벌 No.1 종합패션유통기업’ 완성을 위해서다. 서울 동대문시장 3.3㎡(약 1평)짜리 옷가게를 30여년 만에 1조원대의 중견패션그룹으로 탈바꿈시킨 그의 도전에는 끝이 없어 보인다. 패션업계의 입지전적 인물로 통하는 그의 도전 행보가 새삼 눈길을 끄는 것은 왜일까.

최근 패션그룹형지(이하 형지)에 눈길 끄는 사건 하나가 있었다. 형지가 ‘에스콰이어’(구두)와 ‘에스콰이어컬렉션’(핸드백) 브랜드로 유명한 이에프씨와 인수·합병(M&A) 계약을 맺은 것. 인수 주체는 형지 계열사 에리트베이직이며, 인수대금은 670억원 상당이다. 참고로 형지는 7개 계열사의 16개 패션 브랜드를 전국 1600여 유통망을 통해 전개하고 있다. 이번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면 형지의 사업 영토는 기존의 의류·패션유통에 제화·잡화가 추가된다. 한때 국내 제화업계를 주름잡았던 ‘에스콰이어’ 브랜드를 손에 쥐게 된 최병오 회장이 다소 흥분했다는 보도까지 있었다. “우리 브랜드는 10여 년밖에 안 된 것들이 많은데, 55년 된 브랜드를 인수하게 됐으니…”라며 감격해 했다는 것.

업계에서는 형지가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궁금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에스콰이어’가 이미 한물간 브랜드인데다 형지가 이 분야 경험도 없다는 이유를 든다. 하지만 최 회장의 생각은 달라 보인다. 패션의 완성은 구두와 핸드백에 있다며 새로운 영토(사업 포트폴리오) 확장에 기대가 크다는 것. 그는 “사람들이 형지가 잘 할 수 있겠느냐고 하는데 전통적인 제화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 우리가 진출해 있는 중국에도 선보여 에스콰이어의 부활을 알리겠다”며 자신감을 보이기까지 했다. 최 회장은 창업 30주년을 맞았던 2012년 이래 국내외 사업 영토(사업 포트폴리오) 확장에 부쩍 신경을 써 왔다. 앞서 든 제화·잡화 외에도 외식·식음료·인테리어·레저업 등으로까지 관심 분야를 늘리고 있다. 매출 1조원대에 올라선 형지가 전문분야인 여성패션 등에만 의존해서는 향후 발전을 기약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 같다. 주력인 국내 패션시장이 성장 한계를 보이며 뒤뚱거리는 현실도 감안됐다는 분석. 제2창업의 각오로 사업 영토 확장에 나섰다는 해석이 그래서 나온다.

 
지난 4월 진행된 영토 확장 사례는 에스콰이어 인수건 말고 더 있다. 4월 27일 스위스 취리히 ‘와일드로즈’ 본사에서 와일드로즈 글로벌 상표권 인수에 합의한 게 우선 꼽힌다. 2010년 ‘와일드로즈’ 국내 상표권을, 지난해 1월엔 아시아 상표권을 각각 인수한 데 이어 글로벌 상표권까지 넘겨받게 된 것. ‘와일드로즈’는 세계 최초의 여성 전문 아웃도어 브랜드다. 최 회장은 4월 24일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현지 ‘투두패션’과 브라질 의류사업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투두패션은 브라질에 20년 체류한 교포 사업가가 설립한 브라질 유통 전문기업이다.

이로써 형지는 의류 재고를 브라질과 남미 의류 쇼핑센터에 내다 팔 수 있게 됐다. 향후 2년간 의류 30만 달러어치를 수출할 계획. 형지 관계자는 “브라질은 한국과 계절이 반대여서 우리 여름 상품 재고를 현지 여름 성수기에 판매할 수 있다”면서 “만성적인 재고 해소에 도움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또 최 회장은 4월 20일 페루 리마에서 프랑소아 패티 ‘잉카그룹(Grupo Inca)’ 회장과 중국 시장 공동 진출에도 합의했다. 1959년 설립된 잉카그룹은 알파카·비쿠나 등 고급 의류 소재 제조 회사다. 지난 2월엔 여성 캐주얼 브랜드 ‘샤트렌’의 중국진출 강화 의사도 피력했다. 출시 30년 된 국내 토종 브랜드 ‘샤트렌’을 패션 한류 전파의 첨병으로 삼겠다는 의지다. 1985년 논노그룹이 30〜40대 여성을 타깃으로 출시했던 ‘샤트렌’을 2006년 형지가 인수해 프렌치 감성의 캐주얼 브랜드로 키워왔다. 

최 회장은 2012년 이래 3년여 동안 모두 7건의 전략적 M&A를 구사했다. 여성패션 중심에서 남성복·아웃도어·골프웨어·학생복·유통사업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며 종합패션유통기업으로 변신을 꾀한 것. 2012년에 37년 전통의 남성복 전문 ‘우성I&C’를 인수했고, 북유럽 정통 아웃도어 ‘노스케이프’를 내놓았다. 2013년엔 여성 커리어 캐주얼 ‘캐리스노트’와 학생복 ‘에리트베이직’을 인수해 신규 고객 확보에 나섰다. 유통업 진출을 위해 서울 장안동 프리미엄 복합쇼핑몰 ‘바우하우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부산 2호점이 내년 완공될 예정이다. 바우하우스는 패션·외식·문화를 원스톱으로 즐기는 복합쇼핑몰이다.

▲ 동대문 시장 쪽방에서 형지물산을 세운 최병오 회장은 사회공헌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말‘제4회 애정담그미’행사에서 결연가정에게 제공할 김장을 들어보이고 있는 최 회장. [사진=뉴시스]
지난해에는 프랑스 명품 골프웨어 ‘까스텔바쟉’ 국내 상표권과 이탈리아 여성복 ‘스테파넬’의 국내 라이선스를 확보했다.  이같은 영토 확장에 힘입어 형지 매출은 지난해 1조30억원을 기록했다(그래픽 참조). 패션업계 매출 1조원 돌파는 이랜드·제일모직·LF·코오롱인더스트리 등에 이어 형지가 여섯번째로 알려졌다. 하지만 업계의 많은 이들이 형지의 영토 확장이 자칫 사업의 집중도와 전문성을 떨어뜨리고 재무구조를 악화시키지 않겠느냐며 우려하기도 한다. 이런 지적을 감안한 듯 최 회장은 올해 자산매각과 경영효율화 등을 통해 부채비율을 100%대로 낮추는 등 재무건전성 강화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그는 부산 국제시장 한쪽의 페인트 가게 점원으로 시작해 서울 반포 빵집 사장, 동대문시장 옷 가게 사장 등을 거쳐 국내 굴지의 중견패션그룹 형지를 일군 입지전적인 기업인이다. 그런 점 때문인지 중견·중소기업계 대표로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경제사절단을 12회 연속 수행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가 1996년 론칭한 3050(중장년) 여성 캐주얼 브랜드 ‘크로커다일레이디’는 대히트를 치며 한국 패션산업의 블루오션으로 자리를 잡았다. 고품질의 세련된 디자인, 합리적인 가격대로 매년 30% 이상의 놀라운 신장세를 기록했다. 여성복 단일 브랜드 최대 매출액과 최다 유통망 달성으로 패션업계에 성공 신화를 남겼다. 바닥에서부터 사업을 일궈 온 그는 불굴의 ‘기업가 정신’과 ‘헝그리 정신’을 늘 강조한다. 요즘은 전국을 돌며 강연에 나서기도 한다. 이달 19일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능률협회가 주관하는 ‘기업가 정신 아카데미’에도 출강 예정이다.

그의 사업 이력에는 드라마 같은 데가 많다. 고교 2년 때 부산 국제시장의 외삼촌 페인트 가게 일을 거들며 사업에 입문했던 일, 방수 페인트 제조 사업을 벌이다 망한 일화, 서울 반포에서 빵집으로 재기한 에피소드(1981년), 동대문시장에서 ‘원더우먼 바지’로 대성공을 거뒀으나 원단 장사에 손댔다가 부도 난 일(1993년), 다시 동대문시장 쪽방에서 형지물산을 세운 일화(1994년) 등등이 그것이다.  경영철학이 뭐냐고 묻자 “남보다 반의 반걸음 먼저 생각하고 실행하는 ‘영선반보領先半步’”라고 밝힌 적이 있다. 30여 년 전 서울로 올라오면서 이 말을 마음에 꼭 새겼다고 한다. 국내에서 패션사업으로 일가一家를 이룬 기업답게 형지의 경영이념은 “패션으로 행복을 나눈다”로 돼 있다. 형지를 다시 글로벌 No.1 종합패션유통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최 회장의 불굴의 기업가 정신에 기대를 걸어 본다.
성태원 대기자 i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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