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400m… 진 빼고 혼도 뺏기다
고작 400m… 진 빼고 혼도 뺏기다
  • 김다린 기자
  • 호수 141
  • 승인 2015.05.14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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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남대문 ‘길’

명동 메인스트리트와 남대문시장은 고작 400m 떨어져 있다. 그런데 명동에서 남대문시장으로 가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길이 워낙 복잡한데다 이정표까지 잘 보이지 않아서다. 명동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날로 증가하는데, 남대문 상인의 시름은 되레 깊어지는 이유다.

▲ 600년 전통의 남대문시장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고 있다.[사진=뉴시스]
명동이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로 연일 들썩인다. 5월 1일 노동절 연휴를 맞아 명동을 찾은 유커만 10만여명으로 추산된다. 명동 인근의 대형유통채널도 덩달아 수혜를 입고 있다. 명동 유네스코길 맞은편에 있는 롯데면세점의 매출은 지난해 1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8개 시내면세점 매출 중 단연 1위다.

남대문시장도 유커로 인한 ‘명동 효과’를 톡톡히 누릴 만하다. 명동 메인스트리트~남대문 거리가 400m(직선거리 기준)에 불과해서다. ‘남대문시장’이라는 이름값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2년 외국인 관광객 1만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남대문시장은 ‘가보고 싶은 관광지’ 5위에 올랐다.

그런데 여기 이상한 조사결과가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연도별 서울지역 방문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명동의 외국인 방문율은 2009년 62.5%에서 2013년 72.8%로 10.3%포인트 늘어났다. 반면 남대문시장의 방문율은 2009년 49.5%에서 2013년 32.8%로 17% 포인트 줄었다. 명동이 유커를 상대로 잔치를 벌이는 동안 남대문시장의 시계는 거꾸로 간 셈이다.

낙후된 시설, 혼잡한 내부 등 유커가 남대문시장을 외면한 이유는 여럿이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 유커 등 외국인 관광객이 400m 떨어진 명동과 남대문 시장을 ‘다른 관광지’로 보고 있는 것이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는 “통상 외국인 관광객은 명동에서 맞은편 롯데면세점까지만 동선動線을 짠다”며 “명동을 방문한 유커 역시 명동과 남대문시장을 다른 상권으로 인식하고 잘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 명동에서 남대문시장으로 가는 도보 코스. 가까운 거리지만 길이 복잡해 찾아가기가 어렵다.
왜 그런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명동에서 남대문시장으로 가는 길이 사실상 끊겨 있어서다. 출발점을 유커의 집결지라는 ‘명동 유네스코길’로 잡아보자. 이곳에서 남대문시장 방향으로 가려면 길을 건너야 한다(지도파란선 참조). 횡단보도는 없다. 길을 건너려면 ‘소공동 지하상가’로 들어가야 한다. 이를 유도하는 듯 바닥에 ‘남대문 방향’이라는 표지석도 있다. 숨을 헐떡이며 지하상가에서 올라오면 엉뚱하게도 롯데 영플라자 앞이다.

유커 수혜 못 보는 남대문

다시 남대문 방향으로 170m가량을 걸으면 지하도가 나온다. 이 지하도를 통해 남대문시장방향으로 나와도 남대문 시장은 없다. 대신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분수대 방향으로 횡단보도를 건너야 남대문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다. 지하도가 번거롭다면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박물관 건물에서 횡단보도를 한번 더 건너가야 하는 수고로움은 마찬가지다.

다른 방법도 있다(지도 빨간선 참조). 명동역 방향으로 올라가는 방법이다. 대신 이 길에는 남대문시장으로 가는 표지판이나 안내판이 없다. 걷다보면 반대 방향으로 길이 휘어져 되레 목적지와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길을 계속 걸으면 앞서 언급했던 그 ‘지하보도’가 또다시 나타난다. 눈을 딱 감고 지하보도를 지나쳐야 회현 지하상가가 나오고, 그곳을 건너야 남대문시장에 갈 수 있다. 서울에 처음 온 외국인 관광객이 ‘지하보도’를 의식적으로 지나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이 지하보도는 미관도 좋지 않다. 대낮에 노숙자가 보도 한복판에 누워있지만 내부엔 CCTV도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해당 지하보도는 매년 실시하는 안전점검에서 B등급을 받아 별 문제가 없다”며 “미관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한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여행가이드는 “명동에서 남대문시장으로 가는 길이 복잡해 수가 많은 유커를 이끌고 가기엔 무리가 있다”며 “명동 관광은 명동에서 끝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명동과 남대문시장을 효과적으로 묶는 방법은 없을까. 당연히 쉬운 방법이 있다. 명동의 소공동 지하상가와 남대문 지하상가를 연결하는 게 첫째 방법이다. 시청역에서 을지로입구역까지 이어진 지하상가 통로처럼 말이다. 지하상가 통로는 비가 오거나 궂은 날씨에도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을지로입구역과 소공동 지하상가, 회현 지하상가, 남대문 지하상가는 가까운 거리임에도 서로 단절돼 있다.

명동~남대문 이정표 만들어야

서울시가 이 계획을 세우지 않은 건 아니다. 2008년 서울시는 ‘지하공간 종합기본계획 추진·보완 계획’을 만들었다. 이 계획에는 단절된 지하상가를 연결해 지하보행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면 명동에서 남대문시장으로 이어지는 단 하나의 ‘지하통로’가 생기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폐기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오래된 계획이라서 정확한 폐기 이유를 확인하기 어렵다”면서도 “그 부근 지하에 매설된 시설이 많아 계획이 구체화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단절된 지하상가를 잇는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지금 남대문시장에 필요한 건 어쩌면 ‘친절한 길’일지 모른다. 명동을 가득 채운 유커가 남대문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남대문 시장엔 활력이 감돌 게 분명하다. 당장 지하상가를 모두 잇자는 게 아니다. 유커를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이 명동에서 남대문시장으로 가는 길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이정표를 제대로 세우자는 거다. 남대문시장 근처에 있는 지하도로의 미관이라도 개선하자는 거다. 길이 살아야 남대문 시장도 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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