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서 남대문시장까지 걸어보니…

▲ 명동 유네스코길에서 남대문시장까지 가는 길은 어렵고 복잡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명동에서 남대문시장까지…. 지하보도를 두번, 횡단보도를 한번 건넜다. 서울 중구청 관계자에게 물었다. “남대문시장으로 가는 길이 복잡한 것 같아요.” 돌아오는 답이 한숨을 쉬게 만든다. “지하보도를 왜 들어갔어요. 돌아가면 편한데.” 두가지를 묻겠다. 지하보도는 왜 만들었는가.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그렇게 설명할 건가.

5월 5일 어린이날 낮 12시. 명동의 중심거리인 유네스코길 입구에 섰다. 길 건너 정면으로는 롯데 영플라자, 뒤에는 눈스퀘어가 보인다. 주변엔 깃발을 들고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를 기다리는 관광 가이드가 여럿 포진하고 있다. 명동 유네스코길과 롯데 영플라자 앞은 유커가 명동 일대를 자유롭게 쇼핑한 뒤 모이는 집결지다. 외국인 관광객이 명동에서 쇼핑을 끝내고 다른 관광지를 둘러보고 싶다면 이곳이 시작점이란 얘기다.

기자가 가고자 하는 곳은 남대문시장. 남대문시장 인근에 위치한 메사 건물이 10시 방향으로 보인다. 조금만 걸어가면 될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아쉽게도 바로 건너갈 수 있는 횡단보도는 없다. 남대문시장 근처에 메사 건물이 있다는 걸 모른다면 방향을 찾기도 힘들다.

외국인 관광객이라면 더 어려울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교통표지판에는 남대문이 아닌 숭례문이라고 표기돼 있다. 남대문과 숭례문이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아는 외국인이 몇이나 될까. 다행히 바로 앞에 ‘관광경찰 안내소’가 있다. 경찰이 상주해가며 관광객의 길안내를 돕는 시설이다. 이 건물의 옆면엔 큰 관광지도가 붙어 있다. “지도를 보면 금방 찾아갈 수 있겠지…”라는 생각은 하는 찰나, 이게 웬걸. 지도에 남대문시장 표기는 아예 없다. 한 경찰은 “명동과 남대문시장의 상권이 다르지 않은가”라며 별다른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허탈한 마음을 접고 관광경찰 안내소 바로 옆에 있는 지하상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공동 지하상가다. “그래! 이곳으로 들어가면 남대문시장 근처까지는 쉽게 갈 수 있겠구나.” 예상은 적중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남대문’이라는 큼직한 바닥 이정표가 나온다.

명동-남대문시장 상권 다르다?

하지만 출구로 나와보니, 기대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롯데영플라자 앞으로 나와서다. 남대문이 아닌 ‘롯데’로 가는 길이었던 거다. 일단 남대문시장쪽으로 걷기로 했다. 약 170m를 걸었을 무렵, 또다시 차로가 가로막고, 왼편으로 지하보도가 눈에 들어온다. 지하보도를 지나치면 횡단보도가 나오지만 한국은행 별관이 막고 있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외국인이라면 눈 앞에 펼쳐진 ‘지하보도’로 발을 옮겼을 공산이 크다. 더구나 지하보도 입구 이정표에 ‘남대문시장’이라고 적혀 있다. 기자도 그 길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지하보도 초입부터 불쾌한 냄새가 진동한다. 흰색 벽면은 군데군데 벗겨져 깔끔해 보이지 않는다. 계단에는 노숙자가 드러누워 있다. 둘러보니 CCTV도 없다. 웬만한 배짱이 아니라면 밤에 이 지하보도를 이용하지 못할 것만 같다.[※참고: 기자는 밤 10시에 이곳을 다시 방문했다. 지하보도 통로 사이에 노숙자들이 자리를 깔고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적막한 분위기 속에 퇴근을 마친 직장인들 몇명이 걸음을 재촉하듯 지나고 있었다. ‘이 지하보도가 정말 안전한 공간일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심지어 통로도 굽어있다. 나갈 수 있는 출구가 여러 군데 있었지만 방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가 이정표를 봐야만 한다. 실제로 외국인 가족 4명이 이정표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남대문시장으로 가는 길이냐’고 묻자 “No”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들은 신세계 백화점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지하보도로 내려와 애꿎게 길을 잃어버린 거였다.

어찌 됐든 남대문시장 방향으로 나왔다. 그랬더니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건물이다. 두리번거렸다. 어느 쪽이 남대문 방향인지 헛갈린다. 내국인인 기자도 그런데 외국인이라면 더 헛갈릴 게 뻔하다. 남대문시장으로 가는 길은 분수대 방향이다. 횡단보도를 한번 더 건너야 남대문 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직선거리 400m를 가는데 걸린 시간은 10분 5초. 기자는 알고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헤매지 않았다. 느린 걸음도 아니었다. 외국인이라면 어땠을까.

▲ ①유커들이 명동 쇼핑을 마치고 유네스코길 초입에 모이고 있다.②명동 유네스코길에 있는 관광경찰 안내소. 건물 옆면에 지도가 있지만 남대문시장 표기는 없었다.③지하보도 입구에서 한 노숙자가 식사를 하고 있다.④노숙자가 자리를 깔고 잘 준비하고 있는 모습.⑤지하보도 전경. 통로가 휘어져 있어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고립되는 남대문시장

다시 천천히 명동으로 길을 되짚으며 왔다. 갈 때는 보이지 않았던 이정표가 하나 둘 보였다. 이 길이 남대문 방향임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대문과 숭례문을 혼용하고 있었고 남대문시장을 위한 길 안내도 아니었다. 남대문시장으로 가는 길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이정표는 없다는 얘기다.

✚기자 : “명동에서 남대문시장까지 가는 길이 너무 불편한 것 아닌가요.”
✚중구청 관계자 : “어휴, 소공동 지하상가를 이용하면 복잡하죠. 명동역 방향으로 쭈욱 올라가셔서 횡단보도를 걸으면 얼마나 편한데.”
✚기자 :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그렇게 설명할 건가요?”
✚중구청 관계자 : “다들 어떻게 알고 그 길로 가던데요?”
✚기자 : “이정표가 잘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요?”
✚중구청 관계자 : “잘 가더라고요.”

뻔한 질문과 뻔한 답이 오갔다.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어찌 솔루션이 나오겠는가. 남대문시장은 이렇게 고립되고 있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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