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 로리 매킬로이는 월드골프챔피언십-캐딜락 매치플레이에서 그가 왜 세계랭킹 1위가 됐는지를 보여줬다.[사진=뉴시스]

골프의 매치플레이는 사교 놀이로 시작한 골프 플레이와는 개념이 다르다. 함께 즐기자는 게 아니라 중간에 경기가 끝나거나, 끝장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랭킹 1위 매킬로이를 99% 잡은 상황에서 호셀과 케이시는 왜 엉망진창 플레이를 했던 걸까. 골프를 신사의 스포츠로 착각했던 걸까, 아니면 승부욕이 1% 모자랐던 걸까.

지난 5월 4일(한국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TPC 하딩파크에서 끝난 월드골프챔피언십-캐딜락 매치플레이에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우승했다. 그를 보면서 왜 세계랭킹 1위가 됐는가에 대한 몇가지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근대 복싱의 발상지 영국에서 벌어진 초창기 복싱(18세기)은 맨주먹 경기였다. 선수 대부분은 돈이 없고 거친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출신이었다. 무승부는 거의 없었고, KO 승부가 많았다. 말이 KO지, 기절 아니면 중상, 사망이었다.

런던의 상류층을 기쁘게 해서 빵을 얻기 위해 그들은 목숨을 걸고 링에 올라갔다. 그리고 무조건 이겨야만 했다. 복싱의 묘미는 ‘한방’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도 한방만 터지면 승리자가 된다. 이런 영향일까. 미국 서부 개척시대나, 호주 신대륙 개척을 살펴보면 ‘행동대원’은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출신들이 해냈다. 매킬로이에게도 그런 조상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캐딜락 매치플레이로 돌아가자. 이 대회는 4명씩 8개조(64명)로 나눠 각 조 1위가 8강 토너먼트를 치러 우승자를 가렸다. 1일 매킬로이 조의 마지막 매치상대는 같은 2승을 기록한 빌리 호셀(미국)이다. 패한 자는 그대로 예선 탈락. 16번 홀이 끝났을 때 매킬로리는 2다운, 즉 남은 두홀을 무조건 이겨야 연장을 갈 수 있는 도미(dormi) 상황이었다. 이 경우 반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17번 홀에서 매킬로이는 20야드짜리 장거리 버디퍼트를 성공했다.

다음 홀도 버디, 반면 호셀은 파, 파로 연장전에 돌입했다. 20번째 홀에서 매킬로이가 승리했다. 호셀은 마지막 4개 홀에서 그린을 놓치거나 드라이버가 러프에 박히는 플레이를 했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 이러한 들쭉날쭉 플레이는 한 홀도 없었다. 8강에서 폴 케이시의 플레이는 더 가관이었다. 1온이 가능한 21번째 홀(파4ㆍ333야드)에서 케이시의 티샷은 황당한 슬라이스로 페어웨이를 30야드나 벗어났다.

KO 당한 자는 모든 것이 끝난다

다행히 그린이 훤히 보이고 러프도 깊지 않았는데 40야드 어프로치가 7m나 오버됐다. 다음날 아침 22번째 홀(파 5). 매킬로이의 2온 시도가 그린을 조금 못 미쳤고, 케이시의 세컨드 샷은 그린을 살짝 오버했다. 핀과의 거리는 매킬로이가 30여야드, 케이시가 10야드 미만. 매킬로이의 3번째 샷이 핀에 붙은 반면 케이시는 이 찬스에서 ‘철퍼덕’ 뒤땅을 쳤다. 매킬로이의 버디로 승부가 끝났다.

호셀이나 케이시에게는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더구나 세계랭킹 1위를 99% 다 잡은 상황이었다. 막판에 한두번도 아니고 왜, 갑자기 엉망진창의 플레이가 나왔을까. 반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매킬로이는 어떤 생각이 났을까. 분명 매킬로이는 연타를 맞고 쓰러져가는 와중에도 ‘한방’이 있음을 확신한 그의 조상 아일랜드 기질이 발휘되고 있었을 것이다. 반면 강공을 펼치던 호셀과 케이시는 마지막 펀치를 날리지 않은 채 수비로 전환하는 허점을 드러냈던 게 아닌지.

사실 매치플레이는 사교의 놀이로 시작된 골프 플레이의 개념과는 어긋난다. 함께 즐기자는 게 아니라 중간에 경기가 끝나거나, 끝장을 봐야 해서다. 패한 자가 마지막까지 남아 승리자를 축복하는 경기가 아니라는 거다. 복싱처럼 KO당한 자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관심은 순식간에 100% 승자에게만 쏠리게 돼 들것에 실려가듯 빨리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게 정답이다. 영광을 비롯한 아량도 승자에게만 있다. 골프를 신사의 스포츠로 착각했던 프로골퍼 호셀과 케이시. 그것이 세계랭킹 1위 매킬로이와의 차이점인 것 같다.
이병진 더스쿠프 고문 bjlee284120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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