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준 한국소방산업기술원 원장

▲ 문성준 한국소방산업기술원장은 안전규제를 강화할수록 기업도 국민도 이득을 볼 것이라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최근 1년 새 일어난 세월호 침몰, 판교 환풍기 붕괴, 의정부 아파트 화재 등 각종 사고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인재人災였고, 자본이 안전을 잠식했다는 점이다. 과연 안전과 자본은 함께할 수 없는 것일까. 문성준 한국소방산업기술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돈입니다. 안전을 상품화하는 게 창조경제라는 말입니다.”

문성준(63) 한국소방산업기술원장은 소방관 출신이다. 현장을 누비던 사람이 관련 공공기관의 수장에 오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덕분에 소방현장의 무서움과 안전의 중요성을 그만큼 잘 아는 이도 드물다. 더구나 문 원장은 ‘복지부동’하는 대부분의 공무원과 다르게 합리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데 적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안전규제만은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 안전한 곳이 없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문 원장에게 혜안을 부탁했다.

✚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은 어떤 곳인가.
“국내 소방산업의 육성과 진흥을 위해 1977년(당시 한국소방검정협회)에 만들어진 국민안전처 산하(옛 소방방재청)의 공공기관이다. 여기서 소방산업은 소방용품 제조ㆍ유통ㆍ판매ㆍ수출ㆍ설치공사 등을 망라한 것이다. 소방용품의 성능시험은 물론 품질인증, 안전검사, 위험물 탱크 안전도 검사 등을 도맡고 있다."

✚ 전문지식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국민의 소방안전을 책임질 소방용품을 다루는 일이니 당연하다. 현재 기술원 직원의 30%가 석ㆍ박사 출신으로 채워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문성준 원장은 일선 소방관으로 출발해 도봉소방, 서장서울소방본부 감사반장 등을 역임했다. 고졸임에도 수학ㆍ물리학ㆍ인문학 등 다방면의 책을 읽고 지식을 쌓아 소방안전의 기술적인 면까지 두루 섭렵했다. 그가 지금까지 읽은 책만도 5000권이 넘는다. 말하자면 현장 경험과 기술적 지식, 리더십까지 고루 갖춘 소방안전 전문가 원장인 셈이다. 

 
✚ 철저한 검사가 관건이겠다.
“그렇다. 소화기의 경우 일부러 불을 내서 꺼보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기술원도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거다[※참고: 실제로 기술원은 용인시 기흥구의 외딴 곳에 있다.]”

✚ 시중 소방용품의 품질은 어떤 편인가.
“솔직히 말해서 품질수준이 많이 떨어진다고 본다. 미국이나 유럽 제품을 100이라고 하면 국산 제품은 70 수준이다.”

✚ 이유가 뭔가.
“품질수준을 높이려는 기술개발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인데, 가장 큰 문제는 업체간 저가경쟁이다. 소비자가 좀 더 안전한 소방용품을 원하면 그걸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비자에겐 그런 선택권이 없다. 일례로 아파트에 들어가는 스프링클러가 어떤 제품인지 알 수 있나. 모른다. 건설사가 선택한 걸 넣을 뿐이다. 건설사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좋은 제품보다는 싼 제품을 원한다. 그러니 소방용품 제조업체는 더 좋고 안전한 제품을 만들수가 없다.”

✚ 또 다른 이유도 있나. 
“소방용품 제조업체가 기술개발에 투자할 여력도 없다. 지금은 일부 개선됐지만 예전엔 각종 쓸데없는 규정과 규제 때문에 업체들이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제품의 내용물은 바뀌지 않고 라벨만 바꾸는 상황에서도 업체 측에서 기술원을 방문해야만 했다. 전국 각지에서 그런 거 하나 때문에 여길 온다고 생각해보라. 또 소방용품 제조사가 수천만원짜리 시험기로 필요도 없는 시험성적서를 제출하도록 한 규정이 있더라. 그걸 직접 책임지겠다고 해서 없앴다. 이런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은 제조사의 싸구려 소방용품 제조를 부추긴다.”

“안전에 IT 심으면 수출길 열린다”  

✚ 안전검사는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 
“제 기능과 용도에 맞는 시험이어야 한다. 수천만원짜리 시험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건 그 시험기가 안전하고 질 좋은 소방용품을 만드는 것과는 무관해서였다.”

문 원장은 ‘안전과 무관하다면 규제는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안전규제만은 그 어떤 규제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안전에 관련된 규제라면 어떤가.
“안전규제는 함부로 풀어서는 안 된다. 더 강화해야 한다.”

✚ 앞서 건설사 예를 들었지만 기업의 이익과 안전은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거 아닌가.
“많은 이들이 기업의 이윤과 안전은 별개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안전’은 결코 ‘비용’이 아니다. 조금만 생각을 바꿔 보면 ‘안전’은 곧 ‘돈’이다.”

✚ 무슨 말인가.
“기술원 통계에 따르면 국내 소방안전용품 전체 시장규모는 약 12조1143억원(2013년 12월말 기준)이다. 국내 건설사들이 짓는 건물에 들어가는 소방안전용품 관련 해외시장 규모만 약 67조원으로 파악되고 있다. 전체 시장을 따지자면 어마어마할 거다. 안전을 수출할 수 있단 얘기다. 국민의 안전의식도 낮고, 기업도 안전을 비용으로만 생각하니까 시장이 보이지 않는다. 가장 안전한 건물을 짓는 건설사가 소방안전용품까지 최고로 들여놓는다고 해보라.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되지 않겠나.”

 
✚ 소방안전용품 시장만 키우는 것 아닌가.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최고로 여기는 IT기술을 예로 들어보자. 현재 대부분의 제품에 IT기술이 접목돼 무선으로 바뀌고 있다. 전화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무선조종 자동차까지 나오는 시대다. 그런데 아직도 화재경보기는 전부 유선으로 연결돼 있고, 방화문은 수동이 대부분이다. 소화기는 어떤가. 불이 나면 자동으로 분사되는 소화기를 본 적이 있는가. 없다.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고도 우리의 첨단 IT 기술이 안전 분야로 들어오면 무궁무진한 시장이 펼쳐질 거라 본다. 안전과 연관성이 있는 산업, 자동차ㆍ조선ㆍ철도 등 각종 분야에 안전은 곧 돈으로 연결될 수 있다.”

기업의 이익과 소비자의 안전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이 모두는 높은 안전의식이 담보되지 않으면 현실화되기 힘들다. 때문에 문 원장은 “안전규제를 무조건 강화만 해서는 안 되고, ‘합리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합리적 안전규제’ 강화해야 

✚ 합리적 규제란 어떤 건가. 
“건물주가 소방안전시설을 잘 갖추면 보험료를 깎아주고, 제대로 시설을 갖추지 않아 위험을 방치하면 보험료를 더 높게 책정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아울러 건설사에는 어떤 소방안전용품을 얼마나 설치했는지 공개하도록 하고, 소비자는 등급에 따라 선택할 권리를 줘야 한다. 소방안전설비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가 화재가 나서 인명피해가 났을 때는 건물주와 업주에게 명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른 안전설비들도 마찬가지다.”

✚ 끝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이젠 정부도 안전을 시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안전을 상품화하는 이런 것이 바로 창조경제가 아니겠나.”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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