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 벤처기업협회장

▲ 정준 벤처기업협회장은 “3억원 이상 로또에 당첨되면 세율이 주민세 포함해 33%인데 벤처에 참여하고 받는 주식에 대한 세율은 그보다 높다”고 주장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성공한 벤처는 대체로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하겠다는 회사들입니다. 말하자면 공익을 추구하는 기업들이죠.” 정준(52) 벤처기업협회장은 “새 기술로 이런 물건 만들면 돈 좀 벌겠네 하는 사람보다 이 물건을 내놓으면 세상이 이렇게 바뀌고 나아가 세상이 발전하는 데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벤처 기업가가 성공하더라”고 말했다. 정 회장이 창업한 성공한 벤처 쏠리드에서 5월 7일 그와 마주앉았다.

✚ 창업 CEO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무엇이라고 보나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과 돈을 모으는 일로 이 일을 잘해야 합니다. 일을 맡길 팀을 구성하고 잠재적 투자자를 설득해 투자를 받으려면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나야 돼요.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역량이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거의 없는데 팀을 꾸려 일하려면 리더십이 필요할뿐더러 인간적 매력도 있어야 합니다. 또 의지력이 강한 한편 회사가 잘될 때나 어려울 때나 평상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일하는 타입이 좋습니다. 자만하지도 좌절하지도 않는 형이랄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좀 둔감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죠.”

✚ 그럼 수성기의 CEO는 좀 다른가요?
“꾸준히 혁신을 하고 시장 상황에 맞춰 변신해야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듀퐁, 코닝처럼 100년 이상 된 외국 기업들은 밖에서 보면 수성이나 하는 것 같지만 혁신과 변신을 거듭합니다. 화학기업으로 유명한 듀퐁은 농업 관련 매출 비중이 크고 유리 회사인 코닝은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바이오 산업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기업이 지속 가능하고 성장하려면 창업 CEO든 영입된 CEO든 혁신과 변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벤처 기업에 대한 세간의 인식과 정부 지원에 대해 어떤 아쉬움이 있나요?
“벤처 하면 사람들이 위험을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벤처라는 말이 사람들에게 기회를 연상시켰으면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게 가장 본질적인 지원책이라고 봅니다. 또 벤처라고 하면 대개 작은 기업이라고 생각하는데 벤처는 규모가 아니라 기업의 속성에 따른 분류예요. 단적으로 미국의 구글은 시가총액이 수백조원에 이르는 대기업이 됐지만 벤처 정신을 유지하는 회사입니다. 구글카로 불리는 무인자동차 개발, 유전자 관련 DB 구축 시도 같은 것이 좋은 예죠. 수성 모드로 바뀌지 않고 지속적으로 혁신을 한다는 점에서 벤처로 분류해도 이상할 게 없는 회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성전자보다 더 큰 벤처가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공계 출신 석박사들도 대학, 정부 출연 연구소, 대기업을 선호합니다. 더 큰 기회가 벤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 결정적으로 벤처행에 대한 보상 시스템, 보상의 크기가 문제인가요?
“보상이 굉장히 중요하기는 합니다. 위험보다 기회로 받아들이게 하려면 창업이 성공했을 때의 보상을 키워 주고 실패 때 비용을 줄여 줘야 합니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바뀔 때까지 형평성 논의를 유보하고 성공에 대해 제대로 보상해 주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일례로 스톡옵션 행사에 따르는 소득에 대한 세금 감면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현재는 근로소득에 합산과세돼 40%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돼요. 정부가 특정 기업을 인위적으로 키울 수는 없으니 인센티브 시스템을 고쳐 사람들이 벤처에 뛰어들도록 해야죠.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 양도소득세를 감면해 주는데 벤처에 뛰어들도록 하는 유인책으로 스톡옵션 세율을 낮추자고 하면 형평성을 따집니다. 부동산 경기 대책도 중요하지만 국가적으로 혁신의 역량을 키우는 게 본질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경제가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뀌려면 혁신 역량이 커지고 기술형 벤처가 많이 생겨야 합니다. 이건 당위적인 명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 구체적으로 스톡옵션 소득에 대한 세율을 제안한다면 어느 선이 바람직하다고 보나요?
“벤처에 현금을 투자하면 10~20%의 양도세를 냅니다. 벤처 참여를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일종의 현물 투자라고 본다면 같은 수준인 10%(중소기업)~20%(대기업)로 낮출 수 있다고 봅니다. 다른 나라들도 근로소득에 합산과세를 합니다만 창조경제를 외치고 선도형 경제로의 이행이 시급한 마당에 우리나라도 그래야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는 3억원 이상 로또에 당첨되면 세율이 주민세 포함해 33%인데 벤처에 참여하고 받는 주식 보상에 대한 세율이 그보다 높은 셈이라고 말했다. “다소 지나친 단순 비교이기는 하지만 이런 세율 정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차라리 로또를 사라는 것 아닌가요? 창조경제를 한다고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는 그렇게 돼 있지 않다는 거죠.” 로또의 행운을 노리는 것보다 벤처 참여 쪽이 정부로서는 사행성이 더 강하다고 보는 셈이라고 우겨도 할 말이 없을 듯싶다.

“삼성전자보다 큰 벤처 나와야”

✚ 창조경제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정부 때 스톡옵션 규제를 못 풀면 앞으로는 더 어렵겠어요?
“이 정부에서 세율 인하가 이뤄졌으면 합니다. 어렵다면 한시적으로 10년만이라도 해 봤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우수한 이공계 인력이 벤처에 뛰어들 거예요. 실리콘밸리라고 거기 사람들이 기업가정신이 더 투철해 벤처에 뛰어드는 거 아닙니다. 벤처에 대한 기대수익이 크니까 투신하는 거예요. 우리도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벤처가 활성화됩니다. 기업가정신에 대해 교육을 하고 투자 많이 하라고 벤처 펀드에 돈을 넣어 주더라도 벤처에 인재들이 모이지 않으면 벤처 정책이 성공할 수 없습니다.”

✚ 실리콘밸리에서 가까운 스탠퍼드대 출신인데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부러운 게 뭔가요?
“우수한 인력을 모으기가 훨씬 쉽습니다. 우수한 사람들이 모이면 좋은 팀을 만들 수 있고 기업의 성공 확률이 높아지죠. 미국은 시총 기준 50대 기업 중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절반 가까이가 생긴 지 20~30년이 안 된 회사들인데 우리는 코스피ㆍ코스닥 통틀어 50위권에 20년 안 된 회사가 네이버ㆍ다음카카오ㆍ엔씨소프트 정도입니다.”

 
✚ 왜 이런 차이가 생겼다고 보나요?
“미국은 우수 인력이 벤처로 몰렸고, 이런 현상은 벤처 참여에 대한 보상과 관계가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창업해 3~5년 경영하다 회사가 망해도 구글ㆍ애플에서 데려갑니다. 실패의 경험을 사려는 게 아니라 애초에 우수한 인력들이기 때문이죠. 스탠퍼드 졸업생 중 상위 10~20%는 창업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이공계 명문 출신이 창업 전선에 뛰어들게 하려면 큰돈을 벌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 더 획기적인 벤처 육성 정책은 없나요?
“가장 좋은 벤처 육성책은 성공하고 크게 성장하는 벤처가 많이 나오도록 하는 겁니다. 벤처의 성공 사례를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주는 게 곧 벤처 활성화 방안이에요. 저 역시 협회장으로서 벤처를 대변해야겠지만 맡고 있는 회사를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게 백 마디 말보다 낫습니다.”

정 회장은 미국 스탠퍼드대 전자공학 박사로 KT 선임연구원으로 있던 1998년 쏠리드를 창업했다. KT 사내 벤처 1호로 출범했고 통신장비 회사다. 지난 10여년간 KT와 SK텔레콤에 무선통신중계기를 납품한 업계 1위 기업. 해마다 생산량의 30~50%를 수출하는데 해외 매출을 70~80%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고 그는 말했다. 매출액의 7%를 연구ㆍ개발(R&D)에 투자한다. 인큐베이션을 하는 회사에 대한 지분 투자까지 합치면 R&D 투자가 10%가 넘는다고 한다.

✚ 그런 투자가 실패하면 대표에게 투자한 돈 내놓으라고 합니까?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융자가 아니라 투자인데요. 우리 같은 회사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금융권은 이런저런 책임을 대표에게 묻죠.”

✚ 나름의 경영철학이 뭡니까?
“‘오늘의 편법은 내일의 비용이다.’ 원칙대로, 상식대로 경영합니다. 구성원들에게는 자기 분야의 프로가 되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실력을 쌓아 프로가 되면 사실 편법을 쓸 필요도 없어요.”

✚ 17년 전 창업을 했는데, 창업자 연대보증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신용으로 융자 받는 길이 더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무조건 연대보증을 요구해 대출 담당자가 여신 심사 실력이 늘지 않아요. 기술평가를 본령으로 하는 기술신용보증기금도 연대보증을 요구합니다. 투자는 대출과 달라 리스크를 안고 하는 건데 우리나라는 위험자본 개념이 확립돼 있지 않아요. 창업에 성공한 사람이 재창업하기가 어려운 것도 위험자본을 운용하는 펀드조차 창업자에게 개인 재산을 투자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미국의 벤처캐피털은 이런 역할 분담을 확실히 합니다. 그렇더라도 모든 연대보증을 없애는 것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죠.”

 
✚ 창업 자금의 조달 경로가 은행 대출에서 투자로 바뀌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초기 투자자에게 투자금을 빨리 회수할 수 있게 하는 등 혜택을 더 많이 줘야 합니다. 언제든지 회수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위험 투자가 이뤄집니다. 그래야 투자가 활성화되고 창업이 늘어나요. 빨리 회수할 수 있게 해 줘도 투자자 교체가 이뤄져요. 창업 초기보다 매출이 발생할 때를 선호하는 투자자도 있거든요.”

✚ 벤처와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해 대기업이 크게 늘면 대ㆍ중소기업 간 상생이 이뤄질까요?
“우리나라는 대기업 숫자가 전체의 1%가 채 안 됩니다. 10%만 돼도 중소기업이 거래 대기업의 불합리한 요구를 뿌리칠 수 있어요. 지금은 협력사가 원청 기업의 요구조건을 못 맞추면 해외로 나가야 하는데 해외 진출이 만만치 않아요.”

✚ 대기업이 늘어나게 하려면 제도와 환경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요?
“공정거래가 강화되고 지적재산권 보호가 잘 이뤄져야 합니다. 지금은 대기업이 중기의 지재권을 침해해도 중기의 승소 확률이 낮고 승소해도 벌금이 너무 적어요. 만일 속도위반 과태료가 1000원이라면 누가 과속에 신경을 쓰겠습니까? 미국은 경력직을 채용할 때 이전 회사에서 취득한 지식 중 지재권 침해 우려가 있는 것은 사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습니다. 지재권을 침해할 경우 타격이 커 면책을 받으려는 것이죠.”

벤처 기대수익 끌어올려야

✚ 침해 비용이 적어 기술 탈취가 오히려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입법권이 있는 국회가 나서야 하나요?
“양형 기준 체계상 벌금 액수를 높일 수 없는 사정도 있습니다. 국회도 국회지만 법조계가 양향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거죠. 1970년대 추격형 경제 시절에 만들어진 법체계를 고치려면 사회적 합의도 이뤄져야 합니다.”

✚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는 벤처들에 팁을 주시죠.
“해외에 팔려고 하는 제품ㆍ서비스에서 고객이 과연 가치를 느낄 수 있을지 자문해 봐야 합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현지 인력 활용 등 현지화할 만한 역량이 있는지, 가격이든 품질이든 내세울 만한 경쟁력이 있는지도 따져 봐야죠. 품질은 처음부터 글로벌 수준을 지향해야 합니다.”

✚ 젊은 세대에게 어떤 조언을 주고 싶습니까?
“세상이 달라졌고 더 크게 달라질 겁니다. 이렇게 달라진 기준으로 살아갈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수명 연장이죠. 이제 정말 장기적인 안목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설계하지 않으면 나중에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오래 하려면 적성에 맞고 관심도 있는 분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리스크가 작아요. 무엇보다 스스로의 시각으로 선택하고 나름대로 살아가는 역량을 키우라고 하고 싶습니다.”

 
✚ 창업을 권하시나요?
“모든 사람이 창업을 하고 혁신적인 일에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창업에 관심 있고 역량도 된다면 창업이 더 안정적인 길이 될 수도 있어요. 대기업 입사는 물론 교수나 연구원보다 자신의 경쟁력을 더 잘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죠. 창업엔 리스크가 따르지만 투자 유치도 회사 경영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하면 설사 망하더라도 과거처럼 패가망신하는 일은 없습니다.”

✚ 창업을 하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근거가 뭔가요?
“그래프를 한번 그려 보죠. 가로축에 시간, 세로축에 경쟁력을 배치할 때 시간이 흐를수록 경쟁력이 커지거나 적어도 현상 유지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정적인 조직, 편한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반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창업을 하면 자전거 탈 때처럼 계속 페달을 밟을 수밖에 없습니다. 멈추는 순간 회사가 넘어지기 때문이죠.”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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