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복합점포 24時

저성장에 빠진 금융회사가 ‘대안’을 찾아냈다. 은행과 증권을 합친 ‘복합점포’가 그것이다. 점포운영비용을 줄이면서 새로운 고객을 창출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인지 수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과연 복합점포는 금융회사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4월 28일 문을 연 우리은행-삼성증권 복합점포를 찾아가 봤다.

▲ 최근 은행과 증권 업무를 함께 볼 수 있는 복합점포 개점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사진=지정훈 기자]

서울시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1층에 있는 우리은행 영업점. 이례적인 풍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은행 한편에 삼성증권 영업점이 둥지를 틀고 있어서다. 두 점포를 구분하는 칸막이도 없다. 자유롭게 점포를 오가며 은행업무와 증권업무를 볼 수 있다. 이 영업점은 이른바 ‘복합점포’다.

# 오전 8시50분 풍경
5월 13일 수요일 오전 8시50분. 같은 공간이지만 아침업무를 준비하는 모습이 천양지차다. 우리은행 직원은 저마다 컴퓨터를 켜고 업무에 필요한 자료를 정리 중이다. 삼성증권 직원의 손놀림은 더 바빠 보인다. 9시에 개장하는 증시 업무를 준비하는 듯 컴퓨터 앞에 앉아 업무에 집중한다. 드디어 9시. 업무시작을 알리는 사내방송이 울린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다함께 고객을 맞을 준비를 한다. ‘복합점포’의 아침 풍경은 여느 은행ㆍ증권 영업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복합점포는 저성장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다. 증권과 은행간 협업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고 신규점포 개설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다. 기존에는 은행과 증권사가 한 점포를 쓰더라도 벽ㆍ칸막이 등으로 구분하고 출입문도 따로 사용해야 했다. 공동상담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원과 사전협의를 거쳐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금융규제개혁방안’을 통해 복합점포 도입 관련 규제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고객이 은행ㆍ증권 등 각 금융상품별 점포나 창구를 일일이 찾아가야 했던 불편함을 줄이고 다양한 상품의 가입ㆍ상담 등이 가능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복합점포의 포문을 연 곳은 NH농협금융이다. 올 1월 5일 NH농협은행과 NH투자증권은 서울 광화문에 최초의 복합점포인 ‘NH농협금융플러스센터’를 열었다. 지난 11일에는 경기도 분당에 ‘분당NH금융플러스센터’를 개설했고 올해 서울과 지방 주요도시에 복합점포 10곳을 열 계획이다. 3월에는 IBK기업은행과 IBK투자증권이 ‘IBK 한남동 WM(자산관리)센터’를 오픈했다. KB금융지주는 ‘청담개인자산관리(PB)센터’, 신한금융지주는 ‘신한창조금융플라자’를 개점했다. 지방 금융사 가운데는 BNK금융그룹이 경남 창원에 지방 최초의 복합점포를 개설했다. 

# 오전 10시 풍경
오전 10시. 시간이 지날수록 영업점을 찾는 고객은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은행창구를 이용하는 고객만 늘어날 뿐 삼성증권을 찾거나 은행을 통해 삼성증권 점포를 이용하는 고객은 찾기 어렵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아직은 복합점포를 찾는 고객이 많지 않다”며 “은행으로 인식하고 있는 고객이 많아 은행 업무를 보러 오는 고객이 주를 이룬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개점 초기라 복합점포가 개점한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며 “하지만 은행을 방문했다가 증권 상담을 받는 고객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복합점포에 관한 홍보를 크게 하지 않고 있다”며 “입소문이 나면 복합점포를 찾는 고객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새로운 트렌드 복합점포 허와 실

# 낮 12시 풍경
낮 12시. 복합점포의 기대감이 조금씩 사라진다. 가장 많은 고객이 찾아오는 시간대지만 삼성증권을 찾는 고객은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다른 금융사의 복합점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2일 찾은 NH농협금융의 ‘NH농협금융플러스센터’와 KB금융지주의 ‘청담 PB센터’에도 은행 창구를 찾는 고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지만 증권창구는 대체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금융사는 복합점포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은행만큼 증권사도 온라인 거래와 같은 ‘비대면 채널’ 거래가 늘어나고 있어 굳이 복합점포를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게 영업점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복합점포의 지향점이 처음부터 잘못 설정됐다는 지적도 많다. 복합점포를 활성화하겠다고 나선 이유 중 하나는 은행을 찾은 고객을 ‘자산관리’ 쪽으로 유인해 수익을 높이겠다는 거였다.
▲ 금융사가 복합점포 개설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이를 이용하는 고객은 아직 많지 않다.[사진=뉴시스]

하지만 은행 고객 중 상당수는 자산관리에 별 관심이 없다. 자산관리는 부자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우리은행 영업점에서도 이런 문제가 나타났다. 복합점포를 찾은 이명숙(가명ㆍ58세)씨는 “은행 업무와 증권 업무를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은 장점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자산포트폴리오와 같은 프라이빗뱅킹(PB) 상담은 자산이 많은 부자를 위한 정책이라 생각해 받아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산한 금융사 복합점포

복합점포가 고객보단 금융회사의 이득을 지향할 공산이 크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금융지주 소속 은행원이 같은 계열의 펀드나 보험 상품을 집중적으로 추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판매 비중을 규제하고 있다”며 “하지만 복합점포가 활성화되면 이런 규제를 은근슬쩍 피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판매비중 규제를 복합점포에 적용하면 복합점포 활성화 취지에 어긋하고 오히려 고객의 선택권을 막을 수 있다”며 “직원의 핵심성과지표(KPI) 등 근본적인 인센티브 구조를 투자수익률과 만족도 등의 고객중심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지금과는 다른 직원 성과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상품판매와 계약건수 위주의 성과평가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 오후 4시의 풍경
오후 4시. 어느새 복합점포 업무 마감시간이 다가 왔다. 이날 삼성증권과 우리은행의 복합점포를 찾은 고객은 150여명. 그중 대부분은 은행을 이용하는 것에 그쳤다. 증권 창구를 들리거나 은행창구를 찾았다가 삼성증권에 들리는 고객은 10여명에 불과했다. 막 증권계좌 개설을 마친 강남석(가명ㆍ68세)씨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등 온라인 거래가 어려웠는데 복합점포를 찾아 은행업무도 보고 증권 상담도 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복합점포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어 보인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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