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인상, 그 뻔한 결과

▲ 정부는 담뱃값 인상으로 금연율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늘어난 건 세수와 기업의 영업이익뿐이다.[사진=뉴시스]
담뱃값 인상이 추진되던 지난해 9월. 수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담배소비량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결국 ‘증세논란’만 일어날 거다.” 정부는 국민건강을 위한 선택이라며 ‘담뱃값 인상과 증세’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담뱃값이 인상된 지 5개월여. 우려는 현실이 됐고, 서민 주머니는 털렸다.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세수 증대 효과가 정부 예상치를 웃돌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정부가 담배판매로 거둬들인 세수는 전년 동기 대비 6000억원이 늘었다. 그중 절반 이상(58.3%)인 3500억원이 4월에 걷혔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 걷힐 세수의 증가액만 약 3조4000억원(전년 대비 세수증가액을 대입해서 나온 4월 기준 담배반출량 예상치를 토대로 구한 수치)에 달할 전망이다.

정부가 애초 예상했던 2조8547억원보다약 5500억원 더 많다. 담배판매량의 회복세라는 걸 감안하면 총 세수는 최소 10조원을 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담뱃세 총액이 6조7427억원이었으니 약 1.5배 더 많은 셈이다.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꼼수 증세’가 현실화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해 “담뱃값 인상이 증세를 위한 것 아니냐”는 주장들이 불거져 나오자 이를 전면 부인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 지난해 9월 11일 범정부 금연종합대책 브리핑을 통해 “담뱃값 인상으로 증액된 건강증진부담금을 금연정책 사업에 활용해 성인 남성 흡연율을 현재 44%에서 2020년 29%까지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9월 16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담뱃값 인상은 세수 목적이 아닌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4개월이 지나 세수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동안 ‘국민건강증진’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됐을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애초의 목적대로 담배반출량은 꽤 많이 줄었다. 올해 1~3월  담배반출량은 5억1900만갑으로 2014년 9억3000만갑의 절반 수준이다.

 
중요한 건 줄어든 담배반출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거다. 담배업계의 분석에 따르면 담배판매량은 지난해 12월 4억갑에서 올해 1월 1억8500만갑으로 확 줄었다가 3월 2억5000만갑, 4월 3억500만갑으로 다시 늘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올해 1~3월 총 담배반출량에다 전년 대비 증가한 세수 비율을 대입해 보면 4월 담배반출량은 약 3억275만갑으로 예상된다. 월 판매량이 지난해 수준(44억7200만갑)에 근접했다는 얘기다.[※참고 : 담배반출량은 제조ㆍ수입업체가 소매점에 파는 양을 나타내기 때문에 실제판매량과 거리가 있지만 장기간으로 보면 반출량과 판매량이 대략 일치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결국 담뱃값을 올려 담배소비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주장은 물 건너간 셈이다.

사실 가격정책에 따라 담배소비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주장은 이미 있었다. 역설적이지만 담뱃값 인상으로 담배소비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 자료에서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토대로 2009년 조재국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작성한 ‘담배반출량과 흡연율 변화추이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보자.

당시 조 연구위원은 1997~2008년까지 연도별 담배반출량을 비교하면서 “담뱃값 인상 시기에 맞춰 담배반출량이 줄었다”는 논리를 폈다. 실제로 1997년 5월 1갑당 부담금이 2원 늘자 반출량은 4억4500만갑에서 3억9200만갑으로 11.9% 줄었고, 2001년 담뱃값이 200원 인상됐을 때는 총 반출량이 2000년 50억3200만갑에서 47억9900만갑으로 4.6% 줄었다. 2004년 12월 부담금이 1갑당 354원 늘었을 때는 반출량이 3억7700만갑에서 2005년 1월 7200만갑으로 80.9%나 급락했다. 조 연구위원은 “사재기를 감안해도 담뱃값 인상이 담배반출량 하락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한 게 있다. 줄었던 담배반출량이 다시 늘어나 원상태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1998년 45억1100만갑이었던 총 반출량은 2002년 44억7400만갑으로 줄어들었지만 다시 2004년에 다시 53억9100만갑으로 늘어났다. 2008년에는 46억7100만갑을 유지했고, 지난해 총 담배판매량은 44억7200만갑이었다. 담뱃값 인상으로 담배소비량이 잠깐 줄었을지는 몰라도 실질적인 감소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금 상황과 똑같다. 

 
세수는 늘었지만 건강 대책은 전무

담뱃값 인상과 관련해 나온 우려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담뱃값 인상이 담배제조사와 유통업체의 수익을 늘려준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이 역시 현실이 됐다. 국내 대표 담배제조사인 KT&G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428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다른 제조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유통업체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BGF리테일(CU)은 423억원(전년 동기 대비 278% 증가), GS리테일은 397억원(전년 동기 대비 213% 증가)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실적이 좋아지면서 당연히 주가도 올랐다.

지난해 한국담배소비자협회(이하 담소협)가 “담배제조사와 유통업체의 부당이득이 예상된다”며 “부당이득을 올리는 일이 없도록 담뱃값 인상에 맞춰 담배 포장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결과다. 최비오 담소협 기획국장은 “올초 담뱃값이 오른 후 일선 소매점에서 2014년에 생산된 담배가 버젓이 팔린다며, 이게 합법적인지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쳤다”며 “업체들은 최근 대놓고 부당이득을 챙겼다고 말하고 있지만 처벌을 받은 업체는 단 한곳도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는 담뱃값 인상으로 인해 담배판매량이 줄어들 거라는 이유로 담배제조사와 유통업체의 이익을 1갑당 232원 보전해주도록 해 앞으로도 부당이득은 계속될 전망이다.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물가의 동반상승 문제도 제기됐다. 조하연 연세대(경제학) 교수는 지난해 9월 “담뱃값은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의 비중이 480개 품목 중 상위 20위에 속한다”며 “CPI 가중치가 높은 만큼 담뱃값 인상이 물가상승을 부추길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다수 언론에서는 “담뱃값 인상을 제외하면 소비자물가 석달째 마이너스” “소비자물가 5개월째 0%대, 디플레 우려” 등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를 올려 디플레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탄력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 목소리 외면한 당연한 결과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우려는 담뱃값 인상으로 서민 호주머니가 더 털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보건사회연구원의 ‘국내 흡연율의 사회 계층별 불평등과 변화 추이’ 보고서에 이미 저소득층의 흡연율이 고소득층보다 훨씬 높다는 결과가 나와 있다. 담배소비량과 흡연율이 급격히 줄어들지 않는다는 걸 감안했을 때, 서민의 담뱃값 지출이 더 클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하다.

2006년 9월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은 참여정부가 담뱃값을 500원 올리려 하자 이런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흡연율 감소의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의 뜻을 거스르며 세수확충의 목적 아래 이뤄지는 정부의 담뱃값 인상 시도를 반대한다.” 현재 시민단체들이 주장한 것과 똑같은 논리다. 국민건강증진이라는 슬로건으로 추진된 담뱃값 인상이 한낱 증세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도구였다는 방증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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