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론스타 ISD 소송 딜레마

론스타와의 끈질긴 인연을 끊을 수 있는 투자자-국가소송(ISD)이 시작됐다. 재판에서 패할 경우 상소 절차가 없어 한국정부는 5조원이 넘는 혈세를 론스타에 배상해야 한다. 천문학적인 차익을 남기고 ‘먹튀’라는 오명을 쓴 론스타가 소송까지 불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ISD 소송의 관전 포인트를 살펴봤다.

▲ 한국정부와 론스타의 ISD 소송의 첫 심리가 5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에서 열렸다.[사진=뉴시스]

‘먹튀 자본’ 론스타와 한국정부의 투자자-국가소송(ISD)이 시작됐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세계은행본부 국제투자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선 론스타와 한국정부의 ISD 소송 첫 심리가 열렸다. ISD 소송이 관심을 끄는 건 46억7900만 달러(약 5조1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소송액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를 상대로 벌이는 첫 ISD 재판이라는 점도 관심을 부추기는 이유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막대한 차익을 남긴 론스타는 왜 한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걸까.

시계추를 1997년으로 돌려보자. 그해 12월 3일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했다. 이른바 ‘IMF 외환위기’가 터진 것이다. IMF는 구제금융의 대가로 자본시장의 전면 개방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구제금융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기업은 부채비율을 낮추고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통해 자산매각 등의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정부는 공적자금을 부실화된 은행에 투입했고 금융사를 합병하거나 해외에 매각하는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런 상황 속에서 등장한 게 미국계 사모투자전문회사(PEF)인 론스타다. 외자유치에 열을 올리던 1998년 론스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와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약 5000억원의 부실채권을 사들이면서 한국에 진출했다. 이후 론스타는 2001년 6월 서울시 역삼동에 위치한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를 6632억원에 매입하면서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2002년 한빛여신전문, 2003년 극동건설과 외환은행을 사들였다.

론스타는 한국 투자를 통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둬들였다. 2001년 사들인 스타타워는 2014년 12월 싱가포르투자청(GIC)에 매각, 2400억여원의 차익을 남겼다. 투자금 1700억원에 사들인 극동건설은 2007년 웅진홀딩스에 6600억원에 팔아 4900억원의 차익을 남겼고 그사이 유상감자와 배당을 통해 2220억원의 수익을 챙겼다. 외환은행 매각과 고액배당으로 챙긴 금액은 4조6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론스타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고도 만족하지 않았다. 2012년 2월 3조9000억원을 받고 하나금융그룹에 외환은행을 매각한 지 3개월 만인 5월 22일 론스타는 한국정부에 중재의향서를 보냈다. 2008년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외환은행 지분매각을 위한 주주매매계약을 체결했지만 한국정부의 승인지연으로 매각에 실패해 손해를 입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론스타는 중재의향서를 통해 “매도자의 자격을 문제 삼아 매각이 좌절돼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사상 첫 ISD 소송시작

론스타의 탐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세청이 주식매각대금에 3900억원의 양도소득세를 부당하게 징수하는 등 총 4조6000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2012년 11월 21일 국제투자분쟁센터(ICSID)에 중재를 제기했고 그 재판이 5월 15일 열린 것이다. 그사이 론스타의 소송가액은 46억7900만 달러(5조1000억원)로 증가했다.

론스타는 미국계 사모펀드(PEF)다. 하지만 론스타는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BIT)에 따라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론스타가 벨기에에 설립한 자회사(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한국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ISD소송의 원고는 ‘LSF-KEB홀딩스SCA’ ‘스타홀딩스SCA’ 등 론스타가 벨기에에 세운 자회사다.

그렇다면 이번 소송의 관전 포인트는 뭘까. 첫째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실패에 한국 정부의 책임이 있느냐다. 2007년 9월 론스타는 HSBC와 외환은행 지분 51.02%를 5조9376억원에 매각하기로 합의한 후 그해 12월 금융위원회에 지분인수 승인을 신청했다. 하지만 매각은 이뤄지지 않았다. 2006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과 2007년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이 발생하면서 각종 재판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결국 론스타는 2008년 9월 HSBC와의 외환은행 인수 계약파기를 발표했다.

둘째는 국세청이 론스타에 부과한 양도소득세 8500억원이 적법하느냐다. 론스타는 ‘한ㆍ벨기에 투자보호협정(BIT)’에 따라 세금을 낼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론스타의 벨기에 자회사가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한 만큼 투자협정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셋째, 한국정부가 이 재판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점이다. 일단 외형적 분위기는 열세다. 론스타의 법률대리인은 미국계 로펌인 ‘시들리오스틴(Sidley Austin LPP)’과 법무법인 ‘세종’이 맡고 있다. 그런데 시들리오스틴은 한국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통상분쟁 자문과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법률 자문을 맡았던 곳이다. 한국정부의 통상분쟁 대응전략을 꿰뚫어 보고 있는 로펌이 론스타에서 진영을 펼친 셈이다.

넷째, 국내 사법권의 결정이 ISD 재판에서 인정되느냐다. 론스타와 관련된 국내 소송에선 대부분 한국정부가 승리했다. 하지만 이런 재판 결과가 ISD에서도 인정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ISD의 취지가 외국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내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ISD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2011년 국내 사법계가 ‘한ㆍ미 FTA의 ISD 규정이 국내 사법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 관전포인트는 한국정부의 대응이다. 한국정부는 론스타가 중재의향서를 보낸 2012년 이후 비밀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투자협정분쟁 관례상 공개가 어렵고 정부의 대응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4조6000억원에 만족하지 않는 론스타

문제는 ISD를 대비해 기획재정부ㆍ외교부ㆍ법무부ㆍ금융위원회ㆍ국세청 등 6개 부처로 만들어진 태스크포스(TF)팀에 론스타가 한국에 진출했을 때 실무를 담당했던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주형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 등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단체가 이해상충이 있을 수 있는 금융관료를 배제하고 법무부 주도로 중재소송에 임할 것을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대주주 적격성이 없는 산업자본이었다는 점만 명확히 하면 ISD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주장하면 론스타의 외환은행 특혜인수가 기정사실화된다는 점이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작업에 참여했던 금융관료가 이를 불편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론스타에 특혜를 준 ‘원죄’가 있는 정부가 ISD 소송에 소극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5조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될지 모르는 재판의 과정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도 보고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의 원죄를 인정하기 싫다면 특혜를 준 것이 아니라 론스타에 속았다는 주장이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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