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사면초가

▲ 한국은행이 딜레마에 빠졌다. 기준금리 결정에 부진한 수출과 가계부채를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사진=뉴시스]

수출이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나아질 기미를 보이던 소비도 ‘중동호흡기증후근(메르스)’ 확산으로 위축되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의 필요성이 커졌지만 섣불리 인하를 선택할 수도 없다.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에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을 준비하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정책이 딜레마에 빠졌다. 겨우 회복 조짐을 보이던 경기가 다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정책금리 추가 인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대외 여건은 금리인하 가능성을 힘들게 하고 있어서다. “미약하지만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4월 28일 열린 경제동향 간담회에 참석해 경제가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기준금리 인하 등의 영향으로 장기침체에 빠져 있던 우리나라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은은 5월 기준금리를 1.75%로 동결했다. 정책효과를 지켜볼 여유가 생겼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긍정적인 분위기는 한달만에 우려로 바뀌었다.

이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 ㆍ연준) 의장이 5월 22일(현지시간) 프로비던스 상공회의소 연설에서 “올해 안 어느 시점에는 연방기금금리 목표치를 높이기 위한 초기 조치에 나설 것”이라며 “통화정책의 정상화 절차를 시작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 결과,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 총재는 5월 26일 개최한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옐런 연준 의장이 연내 금리 인상 시사 발언으로 국제 금융시장의 움직임과 자금흐름을 잘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회복세를 보이던 경제지표가 악화되면서 기준금리 추가 인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데 있다. 사실 정부와 한은은 그동안 긍정적 경기개선의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들어 2분기 경기지표가 경기 회복세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총재는 지난 5월 금통위에서 “심리지표로 보면 경기 개선에 긍정적인 신호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흐름을 지속적으로 지켜볼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발표되고 있는 국내 경기지표는 이런 전망과는 엇갈린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에 따라 한은 안팎에서는 ‘금리 인하는 물 건너갔다’는 입장과 ‘6월 금리 인하가 절박해졌다’는 설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부진한 경제지표, 언제까지…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5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5월 무역수지는 63억 달러를 기록하며 40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세부사항을 살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9% 감소한 424억 달러를 기록했고, 수입은 15.3% 감소한 361억 달러를 기록해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의 모습을 보였다. 특히 수출도 5개월 연속 감소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8월의 -20.9% 이후 5년 9개월 만에 가장 크게 감소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6개월 연속 0%대에 그쳤다.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는 109.82 (2010년=100)로 전년 동월대비 0.5% 상승했다. 이는 전월대비 0.3% 상승한 수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전년 동월 대비 1.0% 상승을 기록한 이후 지난해 12월부터 올 5월까지 0%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투자와 생산도 위축되는 모습이다. 4월 설비투자는 일반기계류 등의 투자 감소로 전월 대비 0.8% 감소했다. 건설기성은 건설과 토목공사 실적 감소의 영향으로 전월에 비해 2.6% 줄었다. 이에 따라 전산업 생산은 전월 대비 0.3% 감소하며 두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제조업 경기도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마킷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5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7.8을 기록했다. 이는 조사 대상 24개국 가운데 4번째로 낮은 것으로 디폴트(국가채무불이행)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48.0)보다도 낮았다. 한국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한 곳은 브라질ㆍ인도네시아ㆍ러시아 등이다. [※참고: PMI지수가 50을 넘으면 경기 확장을 50을 밑돌면 경기 위축을 의미한다.]

이런 가운데 갑작스럽게 불거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의 확산으로 여행ㆍ음식업계 등에 초비상이 걸리면서 살아나던 경기회복 불씨가 다시 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2003년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생했던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1분기 10.8%에서 2분기 경제성장률은 7.9%로 곤두박질쳤다. 윤여삼 대우증권 수석연구원은 “지금까지 확인되는 경기 지표들이 썩 좋지 않았다”며 “‘메르스’ 요인 때문에 중국 관광객 감소 우려가 커지면서 5월 소비 지표도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한국은행은 1.75%의 기준금리를 1.5%로 0.25%포인트 낮춨다.

금리를 둘러싼 한은의 고민

하지만 시장은 기대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증권과 채권시장이 일부 ‘역주행’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기준금리를 낮춘 당일인 11일에는 만기 10년짜리 국고채 금리가 예상과 반대로 상승했다. 다음날에는 증권업종 지수가 전날 대비 큰 폭으로 하락했다. 도리어 가계부채 리스크만 키운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가계신용잔액은 1099조3000억원에 달했다. 특히 가계대출은 1년 만에 967조7000억원에서 1040조4000억원으로 72조7000억원이 증가했다. 한은은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최근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있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며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 가계대출 증가세가 쉽게 꺾일 것 같지 않다”고 밝혔다. 수출부진에 메르스까지…. 한국경제 안팎이 지뢰밭이다.
이기현 더스쿠프 객원기자 lkh@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