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사스 vs 2015 메르스

2003년 중국발 중증급성호흡기중후군 ‘사스’가 왔을 때 정부는 국민의 건강을 지켜냈다. 당시 세계보건기구(WTO)로부터 ‘사스 예방 모범국’이란 평가도 받을 정도였다. 2015년 이번엔 중동에서 ‘메르스’가 왔다. 하지만 정부는 무기력하게 바이러스에 지배당했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2003 사스
원톱 대책본부 바이러스 ‘지배’

▲ 정부의 ‘메르스 대응’은 2003년 사스 때와 크게 달랐다. [사진=뉴시스]
2003년 중증 급성 호흡기 중후군(사스·SARS)의 공포가 전세계를 휩쓸었다. 2002년 11월 중국 광둥성廣東省에서 시작된 사스는 이후 홍콩·베트남·캐나다·대만·미국 등 전세계 30개국으로 퍼져나갔다. 8439명의 추정환자가 발생했고 이 가운데 812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3년 상반기 사스의 영향으로 입은 경제적 손실은 300억 달러(약 33조2280억원)에 달했고 1분기 10.8%의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2분기 7.9%로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단 한명의 확진환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3명의 추정환자와 17명의 의심환자가 발생했을 뿐이다. 중국과의 지리적 접근성과 왕성한 교류에도 사스가 국내에서 확산되지 않았던 건 사스 발생 초기부터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사스가 유행하기 시작한 2003년 2월 이미 사스 방역 강화를 위한 정부지침을 전달하고 3월 13일 국내 감시체계를 가동했다. 3월 16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사스 경계령을 발표하자 즉각적으로 사스 경보를 발령, 방역시스템을 가동하고 보건소 등에 비상근무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7월 7일 사스방역작업이 종료될 때까지 114일의 비상방역 기간 동안 국립보건원을 중심으로 13개 국립검역소와 전국 242개 보건소가 24시간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했다. 정부는 사스 감염 위험지역 입국자 23만명을 전화로 추적조사했다. 항공기 5400여대의 탑승객 62만여명, 선박 1만여척의 탑승객 28만여명 등 90만여명을 검역했다. 또한 환자 접촉자 등 2200여명이 자택격리됐고, 응급의료 상담전화를 통해 3300여건의 사스 상담이 이뤄졌다.

이는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신속한 대응체계가 마련돼 있었기 때문이다. 국장급·차관급 대책회의를 연이어 개최했고 국무총리 직속 ‘범정부 종합상황실’을 설치해 방역체계를 점검했다. 사스와 관련된 유언비어와 공포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무총리가 대국민담화를 발표했고 방역기간에 총 120여회의 보도자료와 190여회의 브리핑을 통해 사스 방역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2003년 4월 홍콩과 중국에서 사망자가 속출하자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고 부족한 검역 인력을 보강하기 위해 군의관·간호장교·의무병 등 70명의 군인력을 투입했다. 또한 66억원의 예비비를 확보해 사스 방역을 위한 장비를 마련하고 사스 추정·의심환자 진료비를 지원 방안을 구축했다. 정부의 신속한 조치가 있었기 때문에 사스의 성공적인 방역이 이뤄질 수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2003년 4월 28일 국내 첫 사스 추정환자가 발생했지만 공항 검역 과정에서 걸러졌고 그 즉시 격리 조치돼 2차 감염을 방지할 수 있었다.

2015 메르스
대책본부 난립 바이러스에 ‘지배’

▲ 2003년 정부의 적극적 대응이 사스의 국내 확산을 막았다. [사진=뉴시스]
최근 ‘메르스(MERS)’를 ‘코르스(KORS)’로 불러야 한다는 비아냥 섞인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만 전염 기운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한국형호흡기증후군’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거다. 그 말 속에는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기 어려운데 한국이라서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것 아니냐’는 조롱조의 타박도 숨어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오명까지 얻어야 했을까. 대부분의 전문가는 정부의 안이함이 이번 일을 확대하는데 기여했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보건당국의 ‘초기 대응 실패’와 이후에도 나타난 컨트롤타워 부재 등 수많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는 이번 일을 두고 “국가가 뚫린 것”이란 말까지 나왔다. 정부의 안이함은 메르스 발병 초기부터 취해온 정부의 입장과 방침서부터 잘 드러난다. 정부는 우선 메르스 감염과 방역 과정에 대해 ‘비밀주의’를 고수했다. 정부는 6월 4일 밤 박원순 서울시장이 급작스럽게 기자회견을 열고 메르스 확정받은 삼성서울병원의 의사가 재건축조합 총회 참석 사실을 폭로하기 직전까지 철저하게 감염병원을 비공개에 부쳤다. 심지어 의사들마저 “환자를 다뤄야 할 의사들도 메르스 관련 병원 이름을 모르는 상황”이라며 “최소한의 정보 공유는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할 정도였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충분한 정보 제공을 하지 않아 메르스를 확산시키고 불안을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또한 메르스 문제를 담당하는 주무부처를 정하는 데 있어서도 메르스에 대하는 정부당국의 안이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당초 정부는 메르스 첫 확진 환자가 나온 후에야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장 지휘 아래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를 설치했다. 그런데 사태가 점차 커지자 5월 28일 뒤늦게 책임자를 장옥주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격상했고 여전히 진전이 없자 결국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이 대책본부 사령탑을 맡았다. 메르스 발생 2주 만이었다. 청와대는 메르스 발병 2주째인 6월 2일 메르스 관련 비서실내 ‘메르스 관련 긴급 대책반’을 편성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6월 3일 ‘민관합동 긴급대책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우왕좌왕하고 있다.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가 구성되고 총리실이 컨트롤타워로 나섰으나 정부 안에서조차 메르스 대응기구가 난립하고 있다. 현 정부서 만들어진 메르스 관련 정부기구는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민관합동종합대응 TF’ ‘메르스 관련 긴급대책반’ ‘중앙안전관리위원회’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 등이 있다. 여기에 9일 박 대통령이 전권을 부여한 ‘메르스 즉각대응팀’까지 더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의 판단력 부재도 문제다. 메르스 초기부터 정부는 “메르스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없다” “3차 감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가 결과가 그렇지 않게 되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위기상황에 대한 소극적인 판단이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현재 정부가 설정한 재난단계의 수위도 확진자 급증 추세와 갈수록 커지는 공포감에 떨고 있는 국민들의 정서를 무시한 채 여전히 ‘주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결국 리더십 부재가 화禍를 불렀다. 메르스는 천재天災가 아니다. 명백히 인재人災다.
김은경·강서구 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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