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사와 임금공유, CEO들에게 상생해법 ‘훈수’
협력사와 임금공유, CEO들에게 상생해법 ‘훈수’
  • 성태원 대기자
  • 호수 146
  • 승인 2015.06.16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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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

▲ 2013년 9월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 ESH체험관 개관식에 참석한 박성욱(오른쪽) 대표가 화재진압 체험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박성욱(57) SK하이닉스 사장이 최근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노조와 함께 큰 박수도 받았다. 지난 7일 발표한 협력업체와의 임금공유제 때문. 재계에 ‘손에 잡히는 동반성장’이 뭔지 보여준 획기적인 사건이란 평까지 듣고 있다. 노조의 아이디어와 양보 덕분이지만 그의 ‘통 큰 상생의지’도 한몫했다. 2년 연속 대규모 실적으로 수렁에 빠진 회사를 구해낸 그의 경영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 7일. 박성욱 사장은 의미 있는 선언을 했다. 협력업체와 임금공유제를 실시하겠다는 거였다. 재계의 시선이 그에게 쏠린 건 말할 것도 없다. 재계 관계자는 “박 사장이 협력업체와의 임금공유 프로그램으로 재계의 쟁쟁한 선배 CEO들을 한 방 먹인 셈”이라고 촌평했다. 그는 ‘기술통通’으로 불리는 3년차 CEO다. 그래서인지 2013년 2월 사장이 될 때부터 우려 섞인 시각이 많았다. 전공인 기술개발은 몰라도 경영이나 대외관계는 “잘 해낼 것 같지가 않다”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재임 2년 반 만에 실적을 통해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첫번째가 2년(2013~2014년) 연속 사상 최대급 실적 달성이다. 두번째는 이번 임금공유제 프로그램 도입이다. 둘 다 웬만한 CEO는 이뤄내기 힘든 사안들이다. 특히 임금공유제는 지금까지 나왔던 대ㆍ중소기업 상생相生협력 방안 중 가장 획기적이란 얘기를 듣고 있다. 성과를 공유한 사례는 여럿 있었다.

하지만 성과와 무관하게 원청업체의 임금 인상분 자체를 협력업체와 나누는 방식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ㆍ중소기업 간, 정규ㆍ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숙제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은 각각 대기업과 정규직의 50~60%에 불과한 실정이다.

SK하이닉스 노사가 올 하반기부터 도입하기로 한 ‘상생협력 임금공유 프로그램’의 대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올 임금 인상분의 20%를 협력사 직원의 처우와 안전ㆍ보건 환경 개선에 내놓자는 거다. 임금 인상분 3.1% 중 직원들이 0.3%를 내면 회사가 0.3%를 추가로 내놓는 ‘매칭그랜트’ 방식이다. 임직원(2만2000여명)은 2.8%의 임금 인상만 적용 받고, 나머지 인상분은 협력사 직원들에게 돌린다.

 
지난해 SK하이닉스의 총 인건비가 1조60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재원은 60억〜70억원으로 예상된다. 이 돈은 경기 이천과 충북 청주 사업장에 근무하는 5개 협력사 직원 4000여명에게 지원된다. 1인당 평균 지원액은 150만원 상당. 해당 협력업체들에 평균 6.5%의 임금인상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한다. 이들은 SK하이닉스 근로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그들이 직접 하지 않는 장비 세정洗淨, 라인 내 물류 업무 등을 맡는다.

그렇다면 박 사장이 노조와 어떻게 해서 이런 참신한 화두를 재계에 던질 수 있었을까. 이 회사 임금협상은 지난 5월 6일 시작됐다. 2년 연속 실적이 좋았던 터라 노조의 인상 기대치는 높았다. 접점을 찾지 못했던 협상은 지난 5월말 급진전했다. 양측이 한발씩 물러나 협력회사를 위한 재원 마련에 나서자는 아이디어가 나오면서부터다. 정식 안건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모범을 보이자’는 데 노사 양측이 공감했다는 것. 박 사장은 “이번 결정은 타이밍이 중요한 반도체 산업에서 경쟁력 확보를 통해 리더십을 확충해 나간다는 의미와 함께 대ㆍ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모델까지 만들어 낸 것”이라고 자평했다. 

협력사 직원 1인당 150만원꼴 지원 

최근 두드러진 실적개선 속에서도 틈만 나면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할 것을 촉구해온 그는 “반도체 업계의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하고 이기려면 협력사와의 단단한 상생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올 지원액은 약 66억원으로 추산된다. 하반기부터 특별도급비 형태로 지급하며, 향후 해마다 지속성을 갖고 지원한다는 것. 이를 위해 6월 16일 협력업체 노사와 협약식을 갖고 신의성실한 지원을 공개 천명한다.

박 사장과 함께 이번 결단을 이끈 주역은 청주공장과 이천공장의 김준수(54)ㆍ박태석(46) 두 노조위원장이다. 박 위원장은 “귀족노조, 정규직만을 위한 노조, 양극화 등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걸 보고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는 또 “노조원 80% 이상이 찬성하는 등 의외로 지지율도 높았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최고 수준의 실적을 올리고 성과급도 받은 김에 ‘올해 실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결정 후 노조원들이 ‘잘 한 일’이라며 만족감을 표시했고, 협력업체 직원들도 무척 고무된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의 반응도 뜨거웠다. “노조도 사회적 책임의식으로 자기 몫을 양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 보여줘” “정규직 양보로 비정규직 숨통 터준 하이닉스 노사” “기업 상생에 희망의 불 밝힌 SK” 등등이다.

이번 결정의 밑바탕에는 SK하이닉스 특유의 노사문화가 깔려 있다. 노사가 터놓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이번 결정을 끌어냈다는 분석이다. 이 회사 이천 노조는 1987년 설립 이래 지금까지 무분규 기록을 갖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땐 “회사를 살리겠다”며 노조가 앞장서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노사는 공동운명체’라는 의식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박 위원장도 “사측과 매달 투자ㆍ재무 등 경영 관련 사항을 공유한다”며 “지난해 규정까지 바꿔가며 사상 최고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등 신뢰를 쌓았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연봉의 5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물론 5조1094억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이 밑받침이 됐다. 1983년 현대전자로 설립된 이후 20년 넘게 워크아웃과 해외매각 위기 등을 겪다 2012년 SK그룹으로 편입됐다. 2013년 박 사장 취임 후 경영호전으로 2년간 대규모 흑자가 발생했고, 비로소 성과급도 받게 됐다. SK그룹 캐시카우로 우뚝 섰지만 그 이전의 운명은 기구했다는 얘기다. 

▲ SK하이닉스는 노사문화가 훈훈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사진은 지난해 심기진 힐링캠프에 참가한 SK하이닉스 임직원 및 가족의 모습.[사진=뉴시스]
SK 주력사 CEO 중 유일하게 유임

지난 연날 인사에서 SK텔레콤ㆍSK이노베이션 등 SK 주력 4개 계열사 CEO가 모두 교체됐다. 하지만 실적이 좋은 SK하이닉스 박 사장만은 유임됐다. 옥중 경영 중인 최태원 회장의 신임이 크다는 게 확인된 셈. 1984년 SK하이닉스 전신인 현대전자 반도체연구소에 입사해 30여년간 근무한 그는 정통 ‘하이닉스맨’이다. 2005년 하이닉스반도체 연구소장(전무), 2010년 하이닉스반도체 연구개발제조총괄(부사장)등 기술자의 길을 걸었다. 사장 취임 후 기술개발과 경영난 극복을 위해 선후배 간 ‘열린 소통’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SK하이닉스가 주력인 D램뿐 아니라 낸드플래시ㆍ시스템반도체 등에서도 터를 잡아야 5~10년 뒤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포트폴리오 강화가 필요하다는 얘기. 박 사장은 “변화 속도가 흥망을 좌우하는 IT 산업에선 적절한 때에 변하지 않으면 바로 낙오한다”며 임직원들을 독려한다.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협력업체와의 임금공유란 사상 초유의 카드를 빼든 박 사장. 이번 도전이 어떻게 경영성과로 연결될지, 우리 사회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주목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i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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