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가 능사인가

▲ 안전규정을 안전하지 않게 바꾸면 그 결과는 참사로 이어졌다.[사진=뉴시스]
안전불감증이 없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사고가 안 날 수도 있다’는 인식에 있다. 하지만 틈만 나면 안전규정을 줄이거나 갈아엎은 상황에서 사고가 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불행하게도 규제완화의 결과는 오롯이 참사로 이어졌다. 언제까지 규제만 완화하고 있을텐가.

화재 사고에서 끊이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 하나가 있다. 샌드위치패널이다. 샌드위치 모양으로 스티로폼을 중간에 넣고 양쪽에 철판을 붙여 만든 판재다. 언제부터 쓰였을까.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0년대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도시미관을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등장했다. 시공이 쉽고, 보기에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샌드위치패널은 화재에 취약한 최악의 판재로 정평이 나 있다.

샌드위치패널의 위험성이 일반인에게 알려진 건 1999년 6월에 발생한 경기도 화성시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를 통해서다. 이 사고로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등 4명, 총 23명이 숨졌다. 당시 씨랜드는 컨테이너를 쌓아 올린 구조적인 문제도 안고 있었지만, 인명피해를 늘린 주범으로 꼽힌 건 샌드위치패널이었다. 열이 가해지면 철판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스티로폼이 타들어가면서 유독가스를 내뿜어 인명피해가 늘어났던 거다. 2008년 1월 발생한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당시 사망자가 40명이나 됐던 이유도 샌드위치패널에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판재가 여전히 건축물을 짓는데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IMF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살린다며 각종 건축 안전규제를 완화했다. 그중엔 건물 계단에 관한 안전규정도 포함됐다. 애초 계단의 수를 늘려 피난로를 확보한다는 취지에서 건축법은 계단간 이격거리 규정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1997년에 이걸 없앤 거다. 계단과 계단 사이를 10m 이상 떨어뜨리라는 규정이 ‘두개의 계단이 붙어 있으면 안 된다’로 바뀐 것.

그 결과는 2012년 5월 부산 부전동의 시크노래방화재로 나타났다. 이 참사로 9명이 숨졌는데, 이유가 섬뜩하다. 대피용 계단은 나눠져 있었지만 통로는 하나밖에 없었던 거다. 이 통로가 연기에 휩싸이자 분리된 계단은 의미를 잃었고, 미처 대피하지 못했던 이들이 질식사했다.

 
1999년 2월에는 ‘지붕은 내화구조로 만들어야 한다’는 건축법 규정이 ‘지붕틀’로 바뀌었다. 그러자 건설사들은 지붕틀만 내화구조로 만들었다. 2014년 전남 담양 펜션 화재 당시 억새풀 지붕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2006년 1월부터 아파트의 ‘발코니 확장’을 허가했다. 발코니를 구조 변경해 거실이나 침실 등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거다. 소방안전 전문가들은 발코니가 화재시 위층으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아주고 임시 피난처로도 사용된다며 우려를 나타냈지만, 이는 무시됐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2009년에 웬만한 건축기준을 죄다 무시하고 지을 수 있는 ‘도시형생활주택’이라는 걸 만들어 공급했다.

이 두가지 규제완화는 하나의 사고를 발생시킨 불쏘시개가 됐다. 올해 1월 5명의 목숨을 앗아간 의정부 아파트 화재다. 외장마감재는 불에 활활 타올랐고, 그 불은 발코니가 없는 윗집을 거침없이 덮쳤다. 순식간에 옆 건물로 옮겨 붙은 불길은 다닥다닥 붙은 건물 4채를 잡아먹은 후에야 잡혔다. 마감재만이라도 내화력이 강한 재료를 썼다면, 혹은 발코니만 있었더라도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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