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위기 겪은 권오준 포스코 회장

▲ 지난해 3월 취임한 권오준 회장은 ‘위대한 포스코(POSCO the Great) 재건’과 구조조정을 기치로 내걸었다. [사진=뉴시스]
권오준(65) 포스코 회장이 최근 리더십 위기를 겪었다. 내홍內訌 때문이다. 포스코 사령탑과 계열사 대우인터내셔널 사이에 ‘미얀마 가스전 매각 파동’이 벌어진 것. 내분은 한달 만에 일단 봉합됐다. 공개리에 매각을 반대했던 전병일(60)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은 6월 16일 자진 사퇴했다. 회장 측근인 조청명(55) 가치경영실장(부사장)도 6월 10일 보직 해임됐다. ‘쇄신과 구조조정’을 내건 권 회장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할 지 주목된다.

포스코에서 일어났던 ‘미얀마 가스전 파동’의 전말은 대개 이렇다. 5월 26일 전병일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은 포스코그룹이 검토해온 자사의 미얀마 가스전 매각안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자신에 대한 해임 얘기가 나돌던 6월 10일엔 ‘당장은 물러날 뜻이 없다’는 요지의 이메일을 사외이사들에게 보냈다. 모두 항명抗命 사태로 비칠 만한 보기 드문 일들이었다. 이를 본 권 회장은 측근부터 도려냈다. 매각안 유출에 대한 책임을 물어 6월 10일 조청명 포스코 가치경영실장(부사장)을 보직 해임했다. 6월 11일에는 전 사장 해임조치설과 관련해 언론에 ‘해임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해명성 자료를 내도록 했다.

 
언론에 항명처럼 보도된 책임을 물어 한성희 홍보실장(상무)을 경질했다. 전 사장도 6월 16일 임시이사회를 통해 자진 사퇴했다. 포스코는 그에게 회장 보좌역을 맡겨 역점사업인 사우디 국민차 사업을 챙기도록 했다.
“창사(1968년) 47년 역사에서 이런 항명 사태는 처음 봅니다.” 포스코 한 간부의 코멘트다. 포스코 수뇌부가 내린 의사결정이 계열사에 의해 부정되고 공격 받는 일은 잘 없었다는 얘기다. 사실 그렇다. 포스코 수뇌부의 의사결정은 대개 큰 중량감을 보여 왔다. 때론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인상까지 주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자’며 줄기차게 도전해 온 이 회사의 역사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민영화가 됐고, 조만간 창립 반세기도 맞지만 의사결정의 양태는 아직 민간기업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지금도 포스코 사람들은 ‘무엇을 꼭 해야 하겠다’고 할 때 ‘우향우右向右 정신’을 곧잘 얘기한다. 이는 포스코 건설 당시 고故 박태준 회장이 임전무퇴를 강조한 말에서 유래한다. “선조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 건설이 실패하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만큼 모두 ‘우향우’해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 물론 대우인터내셔널 임직원(3000여명) 입장에선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구조조정도 좋지만 자신들이 십수년 고생 끝에 일궈놓은 알짜 사업(미얀마 가스전)을 막무가내로 팔려고 하느냐며 항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가스전 구조조정의 명분이 약하고 자신들도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자 반발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대우인터내셔널은 2010년 인수·합병(M&A)을 통해 포스코 계열사로 편입됐다. 사라진 대우그룹 모태기업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재계 6위권의 포스코 품에 안긴 지 5년이 됐다. 한때 대우실업, ㈜대우 등으로 불리며 수출 한국의 첨병 역할을 했던 국내 굴지의 종합상사다. 장사와 관련된 의사결정에 관한 한 오랜 경험과 글로벌 노하우를 가졌다는 자부심도 있다.

따라서 이번 파동을 ‘한 지붕 두 회사’의 기업문화 차이가 충돌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권 회장과 전 사장이 사업을 보는 시각과 의사결정의 입장이 서로 달라 생긴 일이란 해석이다. 평소 권 회장은 “포스코 외에는 (그것이 잘 되든 못 되든) 모든 게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강조해 왔다. 사령탑에서는 그런 측면에서 미얀마 가스전 사업 매각을 검토했을 것이다. 전 사장 측은 십수년 투자와 노력 끝에 이제 회사의 캐시카우가 된 사업을 팔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포스코 내에 구조조정 대상 계열사가 많은데 굳이 잘 되는 사업을 팔려는 건 피인수 기업에 대한 차별대우가 아니냐는 시각도 깔려 있어 사태가 다소 복잡했다.

미얀마 가스전의 가채 매장량은 총 4조5000억ft³(입방피트). 국내 천연가스 3년 소비량과 맞먹는다. 대우인터내셔널은 2000년 탐사권을 획득해 2004년 개발에 나섰고 2013년 상업생산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2조원을 투자해 가스전 운영권과 지분 51%를 보유한 상태. 향후 25〜30년간 연평균 3000억〜4000억원의 세전 이익을 예상할 정도로 효자사업이 됐다. 최근 회사 이익의 70%가량을 이 사업이 가져다주고 있다. 전 사장은 6월 16일 사퇴의 변을 통해 “미얀마 가스전 분할 및 매각 검토는 더 이상 추진 않는 것으로 내부 정리가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47년 만에 일어난 항명사태   
  
이번 파동에 대한 외견상 수습은 포스코 스타일대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진행됐다. 다만 전 사장 해임이란 초강수는 피하고 타협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앞으로 갈 길이 먼만큼 전술적 후퇴를 한 것으로 비친다. 포스코 8대 권오준 회장의 리더십 특성이 반영됐다는 해석도 나왔다. 기술통인 그는 평소 합리적인 성품이지만 한번 결정한 일은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는 평을 들어왔다. 연구원 시절 그는 ‘불독’이란 별명을 들었을 정도다. 지난해 3월 취임 당시 그는 ‘위대한 포스코(POSCO the Great) 재건’과 구조조정을 기치로 내걸었다. 올 들어 포스코건설이 비자금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자 지난 5월 14일 비상경영쇄신위원회를 설치하고 비상경영까지 선포한 바 있다.
 
하필 이런 시기에 내분이 생겨 그의 입장이 더욱 난처해 진 것 같다. 기술통인 권 회장은 역설적으로 정치력이 강했던 다른 선배 회장들과 달리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선배 회장들이 대개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막강한 교섭력을 바탕으로 포스코 수장 역할을 광내며(?) 했던 것에 반해 그는 손에 피 묻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일각에선 그가 포스코 안팎에서 소위 ‘빚진 게 별로 없는’ 기술자 출신이어서 역으로 포스코 쇄신과 구조조정에 적임자란 평도 내놓는다. 그는 지난 16개월간 ▲철강 본원경쟁력 강화 ▲신성장사업 선택과 집중 ▲재무구조 획기적 개선 등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 왔다. 하지만 재무구조 개선 작업만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 지난 15일 포스코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퍼블릭 인베스트먼트펀드(PIF)와 포스코건설 주식 양수도계약을 체결했다. 왼쪽부터 권오준 회장, 압둘라만 알 모파디 PIF총재. 황태현 포스코건설 사장. [사진=뉴시스]
계열사 및 자산 매각, 인적 구조조정 등을 수반해 계열사와 종업원, 정부, 채권단, 지역민 등과의 이해관계를 잘 조절해야 하기 때문. 이번 사태가 대표적인 예가 돼 버렸다. 포트폴리오 강화 차원에서 인수했던 회사가 쇄신책과 구조조정에 발목을 잡을 줄 누가 알았으랴.  포스코 수뇌부의 의사결정 DNA를 고려할 때 최근 그의 리더십 위기를 너무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리더십에 상처를 입긴 했지만 남은 임기(20개월) 동안 쇄신과 구조조정에 힘이 빠질 우려는 적다는 얘기다. 역대 회장과 달리 이번처럼 계열사 이견異見을 수용한 것은 권 회장만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
 
이번 파동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소신껏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거함 포스코 8대 선장이 가진 책무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6월 15일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에 포스코건설 지분 38%(1조2400억원 상당)를 매각하기로 본 계약을 체결한 것은 그에게 큰 원군援軍이 될 것 같다. PIF는 제조업을 키우려는 사우디 정부 계획에 발맞춰 사회간접자본 건설, 자동차 산업 육성 등을 위해 파트너로 포스코를 택했다. 권 회장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내분을 잘 수습하고, 국민기업 포스코를 재건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i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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