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 타는 한반도

 2015년 초여름. 반갑지 않은 손님이 왔다. 가뭄이다.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등 중부지방에서는 논밭이 쩍쩍 갈라지고 저수지가 말랐다. 농작물에 물을 주느라 시위진압용 물대포차까지 지원에 나섰다. 그럼에도 피해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가뭄이 올해만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 '물대란'을 막기위한 '4대강 살리기'사업은 가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사진=뉴시스]

# 때는 2020년 7월. 지구촌 축제인 올림픽이 일본 도쿄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 대표팀이 연일 승전보를 올리고 있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한국이 ‘물 부족 대란’에 휩싸여서다. 지역별로 따져도 역대 최대 가뭄이다. 2013년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세워진 다기능보와 댐은 이 지독한 가뭄을 막아낼 수 없었다.

전국적으로 생활ㆍ공업ㆍ농업용수로 필요한 물은 263억9000t. 그러나 공급 가능량은 이보다 4억3400t이 부족한 259억5600t이다. 2020년 추정 인구는 4932만명. 1인당 연간 8t, 하루 22L의 물이 모자라는 셈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 1.5L들이 물병 14개를 개개인에게 배급해야 할 판이다. 특히 물 공급체계가 미흡한 도서ㆍ해안ㆍ산간지역에서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한강과 낙동강ㆍ금강ㆍ영산강 등 전국 4대 강에는 강물이 넘쳐나고 있지만 그보다 조금 떨어진 농지는 쩍쩍 갈라져 먼지를 날리고 있다. 지역별로는 영산강과 섬진강 주변의 상황이 심각하다. 영산강 주변은 1억5000t이나 부족하고 섬진강 권역 1억t의 물이 더 필요하다. 수도권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한강 권역은 4000만t이 부족하다.

물이 부족하면 농민들이 가장 괴롭다. 2020년 농업용수의 수요량은 153억t. 하지만 공급량은 이보다 2억5100만t이 부족한 150억4900만t이다. 2020년 현재 경작 가능한 면적은 163만8000㏊. 물이 부족해지자 2만6800㏊가 불모지로 변했다. 특히 모내기철인 6~7월에 비가 오지 않아서 더욱 피해가 커졌다.

산업계도 물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물을 이용해 열연작업을 해야 하는 철강ㆍ비철강 업계의 상황이 심각하다. A사는 열연강판 등을 생산하는 철강업체다. 한해 생산량이 220만t인 제철소가 철강 1t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물은 5t. 하지만 물 부족 사태로 용수공급이 1%(11만t)가 줄자 생산량은 2만2000t이 줄었다. 수력발전소의 생산력 저하로 매일 ‘블랙 아웃’ 공포에도 떨고 있다. 그야말로 최악의 사태다.

이 무서운 이야기가 거짓말 같은가. 국토해양부가 수립한 ‘수자원 장기종합계획’에 담겨있는 2020년 물 부족 전망을 풀어서 정리한 것뿐이다. 권역별로 최대 가뭄이 발생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이보다 더 심한 가뭄이 찾아온다면 이 시나리오는 더 암울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만 해도 한반도는 타 들어가고 있다. 올해(2015년 1월 1일~6월 14일) 전국 누적강수량은 286.7㎜로 평년(348.4㎜)과 비교해 78%에 불과하다. 특히 강원 영동은 39%(141 .9㎜) 서울ㆍ경기는 55%(161.5㎜)에 그쳤다. 속초(139.8㎜)와 강릉(144㎜)은 기상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후 가장 비가 적게 내렸다. 인천 강화군은 132.1㎜로 2001년(120.4㎜) 이래 처음으로, 경북 울진군은 165.8㎜로 1981년 이래 최저다. 피해가 심한 지역은 벌써부터 제한급수를 시작했다.

물 배급 시대 올까

정부도 이런 극심한 가뭄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다. 수자원장기종합계획 보고서는 “기후변화에 의해 가뭄의 발생빈도와 강도가 증가될 전망”이라며 “물 부족에 대한 지역별 취약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각종 통계자료를 근거로 우리가 물 부족 국가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2006년 나온 영국 생태환경 및 수문학센터(CEH)의 물빈곤지수(WPI)에서 우리나라는 62.4점을 기록, 147개 조사국 중 43위의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순위가 내려갈수록 물 복지 수준과 이용가능성이 낮은 국가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29개국만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20위에 불과하고 29개국 평균(67)을 한참 밑돌고 있었다.

결국 정부는 ‘물 대란’을 막기 위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완공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다기능 보 16개 중 영산강의 승촌보와 죽산보, 낙동강 상류에 있는 상주보, 낙단보, 구미보 등 5곳만이 비교적 물 부족 지역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머지 11개는 수자원장기종합계획에서 분류한 물 부족 지역과 무관한 곳에 있었다.

국무조정실 4대강사업조사평가위원회도 지난해 12월 작성한 ‘4대강사업 조사평가 보고서’에서 “다기능 보 건설계획 관련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수자원 공급 측면에서 보의 위치선정 기준 및 과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4대강 사업이 가뭄대응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용수공급계획과 용수공급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4대강 사업이 물 부족과 가뭄 해소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로 진행됐으며 이후에도 수자원을 가뭄 지역에 공급하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결국 4대강 사업은 가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올해 같은 극한의 가뭄이 언제든 또 올 수 있다는 거다. 먼 미래도 아니다. ‘2011년 유엔 미래보고서’는 “2025년 세계인구의 절반이 물 부족 상황에서 생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나라라고 안전할까.
물 부족 현상은 수자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다. 30년(1978~2007년) 동안 한국의 연평균 강수량은 1274㎜. 세계 평균 강수량의 1.6배에 달한다. 수자원총량은 연간 1297억t이다. 하지만 높은 인구밀도가 문제다. 강수량을 인구로 나눈 1인당 연 강수총량은 2660㎥로, 세계 평균치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강수량은 풍부하지만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살고 있어 인구 대비 수자원량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비가 내리는 시기도 문제다. 190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10년 평균 강수량의 변화는 증가추세에 있지만 변동폭도 함께 증가했다. 최저 754㎜(1939년)에서 최고 1756㎜(2003년)까지 편차가 크다. 변동폭의 증가는 극한 가뭄과 홍수 증가의 원인이 된다.

특히 홍수기에 편중된 강수량으로 치수관리가 어렵고 여름철에 물을 댐 등에 저장하지 못할 경우 갈수기인 겨울과 봄철에 물 공급이 곤란해진다. 국내 수자원총량 1297억t 중 활용할 수 있는 수자원이 26%인 333억t에 불과한 이유다. 70% 이상의 물이 활용되지 못한 채 바다로 흘러가거나 증발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한국의 지형 특성도 물 관리를 어렵게 했다. 수자원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량변동계수’. 이는 하천의 최대 유량을 최소 유량으로 나눈 수치다. 유량변동계수가 낮을수록 수자원 관리가 쉽다. 한국의 유량변동계수는 90으로 무척 높다.

무서운 미래가 현실이 되면…

프랑스 센강(34), 독일 라인강(18)보다 2~3배 높은 수준이다. 한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낙동강의 유량변동계수는 260, 섬진강은 270에 이른다. 이처럼 유량변동계수가 높은 이유는 하천이 산지 주변에 있어 경사가 급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하천의 유계량은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급증했다가 가뭄 때면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한국기후변화학회 관계자는 “최근 반복되는 가뭄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며 “지구온난화로 인해 가뭄의 빈도가 높아진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번 가뭄이 들었을 때 그 정도가 심해질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건조하고 고온인 상태에서 비가 오지 않으면 태양에너지가 땅에 도달했을 때 수증기가 더 빨리 증발해 가물어지는 원리”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전망했던 2020년의 무서운 미래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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