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스트레스 쌓이는 기업들

물 발자국(Water Footprint). 얼핏 물모양의 발자국을 의미하는 말 같다. 생소하지만 어쩐지 예쁜 단어다. 그런데, 물 발자국의 의미를 알고 나면 예쁘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크게 찍힌 물발자국이 산업계를 ‘물 전쟁 시대’로 이끌 공산이 커서다.

▲ 물발자국 인증제도가 국내 기업들에게 수출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125mL)을 만드는데 드는 물의 양은 얼마나 될까. 많아봐야 커피를 담은 컵 용량이 200mL쯤 되니 그 정도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정답은 141L. 슈퍼마켓에서 파는 1.5L 생수병 90개가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물뿐 아니라 우리가 먹고 소비하는 제품을 생산ㆍ유통하는 데 들어가는 물(가상수)까지 합친 수치다. 이처럼 막대한 물 소비를 하는 제품은 커피만이 아니다. 소고기 1㎏에 1만5415L, 초콜릿 1㎏에 1만7196L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반도체나 가전제품 생산에도 많은 물이 들어간다. 투자은행 JP모간에 따르면 지름 200㎜의 반도체 웨이퍼 한 장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은 대략 13t.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전체 물 소비의 25%가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이유다. 제품 공정마다 화학제품을 처리하는 데 물이 필요하고, 전기를 생산하는 데도 상당량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개념을 ‘물발자국(Water Footprint)’이라고 부른다. 2002년 네덜란드의 아르옌 훅스트라 트벤터대 교수가 처음 고안했다. 제품의 원료 취득에서 제조, 유통, 사용, 폐기까지 전 과정에 사용되는 물의 총량, 물과 관련된 잠재적 환경영향을 모두 정량화한 것이다. 우리 정부 역시 이 생소한 개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발자국 산정 방법을 국가표준(KS)으로 제정하고 고시하기로 한 것이다. 이재만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에너지환경과장은 “유럽연합(EU)에서 물 소비량이 많은 제품에 대해 물발자국 인증 등을 요구하는 규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까지는 이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특별한 제재가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미국과 호주, 스페인 등에 이어 EU까지 물발자국에 대한 국제표준을 만들고 있다”며 “우리나라 역시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물 발자국 규제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해외의 경우 물 부족 문제 때문에 일부 국가에서 기업들에게 물의 사용량을 규제하고 있다. 미국, 호주, 스페인 등은 물을 사용해 만드는 제품의 물발자국 정보를 기업이나 생산자에게 요구해 인증 또는 등급을 매기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EU도 유사 제도를 2020년까지 도입하기 위해 맥주와 커피, 고기 같은 식음료뿐 아니라 배터리를 비롯한 IT 장비를 대상으로도 물발자국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 정부도 물발자국 ‘표준활용해설서’를 개발하고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물발자국 산정에 필수적인 자료를 구축할 계획이다. 물 발자국이 크게 찍힌 기업에게는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 국내 산업계에 ‘물 사용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여기에 향후 선진국의 물발자국 인증제도가 우리 기업들에게 무역기술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수출에 많은 비중을 의존하는 우리 산업계가 ‘물’ 때문에 수출길이 막힐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