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멘토링❶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청년실업률 10.7%. 외환위기 이후 최대치입니다. ‘인구론(인문계 출신 90%는 논다)’과 ‘7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집 마련, 희망, 꿈을 포기한 세대)’란 말이 우리 사회에 유령처럼 떠돕니다.  The SCOOP(더스쿠프)가 ‘청춘 멘토링’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The SCOOP 지면을 통한 지상 멘토링입니다. 멘티와 멘토 사이에서 가교 노릇을 해 보겠습니다. 이를 위해 고교생, 대학생, 대졸 취업준비생 32명에게서 고민을 들어 봤습니다. 6월 23일 첫 멘토인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과 만났습니다.

▲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스물다섯에 생긴 식견으로 세운 목표가 50대 후반까지 유지될 거라고 믿는다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Q 멘티가 멘토에게
어떤 일에 기울이는 노력과 그에 따르는 성과는 항상 비례하나요? 성공은 과연 노력의 산물인가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아무런 보장도 없이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노력한 만큼 성과가 안 나와 ‘멘붕’이 오면 어떻게 극복하나요?

A 멘토가 멘티에게
나는 노력과 성과가 정비례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노력했는데 성과가 나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마음이 조급한 사람은 노력과 성과가 비례하는 정도랄까 비례의 폭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안 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그럴 땐 노력의 효율을 높여야죠. 그렇게 느끼는 건 어쩌면 성과, 나아가 성공에 너무 목말라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 물론 운도 작용하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그런 요인들도 있지만 이들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성과는 노력의 결과물이 될 겁니다.

사회 초년생이 일찍이 자기 경력의 종착역을 상상해 보고 일직선으로 달려 그 역에 다다르는 사례가 얼마나 될까요? 일관성 있게 노력한다고 가정을 하더라도 말이죠. 나는 거의 없을 거라고 봐요. 왜일까요? 이 초년생이 대학을 나왔다면 나이가 스물다섯쯤 되겠군요. 스물다섯에 바라보는 세상과 나이 마흔에 보는 세상은 완벽하게 다릅니다. 스물다섯에 생긴 식견으로 세운 목표가 50대 후반까지 유지될 거라고 믿는다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겁니다.

그보다, 작은 목표를 세우고 성실하게 그 목표를 이루다 보면 그런 목표조차 없는 사람보다 더 빨리 성취할 수 있을 겁니다. 더 넓게 볼 수도 있을 거예요. 이런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더 큰 성공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성과가 노력에 비례한다고 보는 게 맞아요.

‘노력과 성과의 비례 법칙’에 회의를 품는 건 어쩌면 스펙과 그에 따르는 보상의 관계에 대한 의문 때문인지도 모르겠군요. 스펙은 과연 노력해 쌓은 만큼 보상이 따를까요? 나는 기업에 있는 사람이니 성공한 사람의 예로 CEO를 들어 보죠. 지금 50대 후반에서 60대의 대기업 CEO들은 1960년대 후반에 이른바 스펙을 쌓은 사람들입니다. 그 시절 좋은 학교 나와 좋은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35~40년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죠. 그럼 이 공식대로 스펙을 열심히 쌓으면 30년 후 대기업 CEO가 돼 있을까요? 1960년대 후반 여러분 아버지 세대의 성공 방정식이 지금도 유효할까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스펙 쌓느라 골몰하는 젊은이들 보면 그래서 안타까워요.

 
채용 때만 보는 스펙

한마디로 스펙은 성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그 후엔 거의 소용이 없어요. 스펙이 성공으로 가는 길에 디딤돌이 되지는 않는다는 거죠. 나부터 사람을 뽑고 나면 그 사람 이력서를 다시 보지 않습니다. 어느 학교 나왔는지 알면 뭐 합니까?

우리 회사 들어와 어떻게 일하느냐가 중요하지. 취업의 관문이 너무 좁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사정이 다르니 스펙에 목매는 거, 이해는 합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갈 확률을 좋은 스펙이 어느 정도 높여준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어느 조직이든 들어가고 나면 그 조직이 요구하는 인재가 돼야 합니다. 기업이라면 그 회사가 제시하는 사원 상에 가까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죠. 일반적으로 목표지향적이고, 소통과 네트워킹 잘하는 사람을 선호합니다. 여담이지만 우리 회사는 인간존중 노선을 중시하는데 여기서 벗어나면 탈선자로 낙인찍혀 거기서 커리어가 끝납니다.

성과지향적 성향이 강해야 성공하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성과라는 건 과정의 산물입니다.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성과를 올리려 들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편법, 요행, 정치에 기댔다가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통하는 조직도 있고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그런 시도가 먹히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아닙니다. 여러분이 살아갈 세상에서는 편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성과를 중시하는 과제지향형 타입의 경우 관계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작은 과제는 어찌어찌 해내더라도 협업이 필요한 큰 과제는 못해요. 사람의 능력은 유한하기 때문이죠. 아무리 능력자라도 자기 혼자서 다 할 수는 없어요. 특히 역량이 세분화된 오늘날엔 네트워킹 능력이 있어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관계지향형 타입이 아니더라도 협업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관계 역량은 있어야 돼요. 독불장군형은 원천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결국 성과와 과정, 과제와 관계를 양립시킬 수 있어야 성공합니다.

이 두 가지를 양립시키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역량 이상의 것을 목표로 하면 최선을 다해 봤자 어차피 안 됩니다. 그런데 자기 역량의 한계를 알아야 남의 힘도 빌리죠. 물론 자기 역량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경우도 있죠. 어떻든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고 역량의 한계를 뚜렷이 인식해야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려면 인간적으로 성숙해 져야 합니다. 성숙해지면 자신을 알고 자신의 한계도 인정하게 되죠. 중요한 건 스펙 좋은 사람이 아니라 성숙한 사람이 리더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요즘 젊은이들은 성숙해지기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본인들 탓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미친 부정적 영향이죠.
스펙 좋은 젊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어 볼 때가 있습니다. “자네의 목표 또는 관심사를 10가지만 얘기해 봐.” 그럼 어학 능력 향상, 해외 경험 쌓기, 친구들과의 교분 쌓기 등을 꼽습니다. 대개 스펙과 무관치 않은 것들이죠. 예외 없이 나의 성장, 나의 희망사항 등 나 자신에 관한 것들입니다. 자신이 가장 중시하는 개인적 어젠다에 타인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스펙이 좋은 사람일수록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만 안다는 거죠.

자신의 역량 한계 알아야 

그렇다 보니 스펙 잘 쌓은 덕에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자기 어젠다에서 타인을 고려해 본 적이 없으니 남을 움직일 줄 모르고 남들을 대상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줄도 모르는 거죠. 결국 리더가 되는 데 실패합니다.

▲ 박용만 회장은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실수와 실패를 인정해 아픈 청춘, 그래서 성장하는 청춘이 돼라”고 강조했다.[사진=지정훈 기자]
리더는 타인을 의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보죠. 우리 회사에 일년에 두번 ‘두산인 봉사의 날(Global Day of Service)’이 있습니다. 이날이 되면 전세계 전사업장 전직원이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봉사를 합니다. 본래 그룹의 전 구성원이 대대적으로 운동회 같은 행사를 하자고 해 그럼 하룻동안 어떤 형태로든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하는 봉사의 축제를 만들자고 했죠. 그런데 이게 회사의 사회공헌활동에 그치지 않고 여기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타인이라는 어젠다가 구성원들의 머리에 입력됩니다.

출발은 동정심, 연민, 베풂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봉사 활동을 통해 저마다 자신과 타인의 관계가 균형 있게 머릿속에 자리잡게 되더라고요. 나만의 삶이 지닌 의미, 타인도 포괄하는 삶의 의미 이 두 가지를 음미하다가 전보다 타인을 더 위하고 타인과 어우러져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균형 잡힌 삶이야말로 바로 리더십의 출발점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성공 가능성도 커 지죠.

남 알아야 리더십 발휘해 
“목구멍이 포도청이다”란 속담이 있습니다. 먹고살려면 해서는 안 될 짓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죠. 속뜻은 “나의 지금 이 언행은 내 뜻이 아니고 나는 본래 이런 사람 아니다”입니다. 그럼 밖에서 이렇게 행동한 사람이 집에 들어가 가족들에게는 다르게 행동할까요? 아닙니다. 결국 동일한 인격체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회사 생활 한 20년 하면 집에서 자식에게도 은연중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주입하게 됩니다. 자식 교육에도 실패하는 거죠.  

흔히 리더라고 하면 스펙 좋고 성과 지향적인 사람을 떠올리는데 그런 사람은 사실 리더로 성장하기 어려워요. 또 이런 사람이 리더가 되면 자기 발전밖에 몰라 아랫사람을 도구로 이용하려 들고 아랫사람은 그 밑에서 성장을 못합니다. 제대로 된 리더는 말하자면 타인과 어우러지는 과정을 잘 소화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들이 봉사활동조차 일종의 스펙으로 생각하는 건 난센스예요. 봉사는 스펙이 아닌데 우리나라에 들어와 스펙 아닌 스펙으로 변질된 거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유를 설명하는 데 인색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상당수가 기업 조직에 몸담겠지만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것도 일을 시키는 상사에게 ‘왜냐(why)’고 묻지 못해서입니다. 윗사람은 자신이 내리는 지시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아랫사람은 그 이유를 묻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랫사람들 나름대로 넘겨짚다 보니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겁니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이유를 안다면 하지 않아도 될 여벌의 일까지 하니 이래저래 야근이 많을 수밖에 없죠.

한국인은 소통도, 업무 처리도 참 비과학적인 방식으로 합니다. 나도 이 사실을 우리 회사 해외 사업장의 외국인 구성원들에게서 듣고 깨달았습니다. 이들에게 한국 회사와 일하면서 힘든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80%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일을 시킬 때 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이유를 물어 보면 화를 냅니까? 일을 제대로 하려고 그 일을 왜 시키는지 물어 보는 겁니다.” 그런데 일을 시키면서 이유를 설명하려면 그 일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을 때보다 아무래도 번거롭죠.

 
여러분은 조직에 몸담으면 일을 할 때 그 일을 왜 하는지 스스로 자문하고 상사에게 물어 보고 나중에 일을 시키는 입장이 되면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바랍니다. 막상 우리나라 조직에서 상사에게 일을 시키는 이유를 묻기란 쉽지 않아요. 알바를 할 때도 그렇지 않나요? 그럴 땐 ‘침묵의 공감’을 시도해 봐요. 속으로 ‘이 일을 왜 시켰을까? 저분은 일을 시켜 놓고 왜 불쾌해 할까? 이러는 나는 왜 불편하지?’ 침묵 속에서 자기 자신과 나누는 대화로 문제의 60%는 해결됩니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안 나오면 멘붕이 오죠. 그럴 땐 자신을 돌아 보세요. 혹시 나의 노력이 효율적이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게 아니고 정말 노력했지만 사장과의 친분 덕에 옆 자리 동료가 나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면 그 회사를 박차고 나오세요. 그런 회사는 앞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엔 법만 있고 규범이 없습니다. 규범이란 법이라는 울타리 안에 더 좁게 친 울타리입니다. 법보다 더 엄격한 잣대죠. 선진 사회는 그 사회의 리딩 그룹이 규범을 만들고 그 규범을 지키는 데 솔선수범합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합법적인 행위라도 규범에 어긋나면 사회적 제재를 받습니다. 합법적인 병역면제도 공직선거 때나 인사청문회에서 문제 삼는 이유죠. 리딩 그룹이 규범을 잘 지키는 사회는 구성원들이 규범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법보다 더 높은 기준인 규범을 만들고 앞장서 지키는 우리 사회의 리더가 되십시오. 그 전에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인정하고 약속을 지키는 믿을 만한 사람이 되십시오. 실수와 실패는 아프지만 그래도 인정해야 배우고 성장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실수와 실패를 인정해 아픈 청춘 그래서 성장하는 청춘이 되십시오.
이필재 더스쿠프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