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타이베이 인문 답사기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이곳 사람들의 삶은 여유가 넘친다. 서울에서의 삶이 ‘프레스토(매우 빠르게)’라면 타이베이에서는 ‘라르고(아주 느리게)’다. 더운 지방 특유의 느릿함과 중화권의 ‘만만디’ 문화의 선율이 연주하는 변주곡 템포인 셈이다. 그래서 타이베이를 만나려면 시간과 관점의 전환이 약간 필요하다.

「타이베이」는 독자들을 서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타이베이 속으로 끌고 간다. 역사·문화·정신 등을 통해 깊숙이 들여다보는 인문 답사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타이베이를 제대로 즐기려면 단순히 보고, 듣고, 맛보는 것으론 부족하다.

저자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과 행정학을 공부했지만 역사와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중화권에 눈길이 많이 갔다. 그러던 차에 대만 교육부 장학생으로 선발됐고 3년간 유학 생활을 했다. 그동안 사회과학 전공자의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눈으로 대만 사회를 살폈다. 그러나 자신의 두 번째 고향이라 당당히 말할 만큼 애정이 가득하다. 이 책엔 저자의 그런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에게 타이베이와의 첫 만남은 밋밋하고 실망스러웠다. 온통 칙칙한 회색과 낡은 모양새다. 빌딩이나 집들은 칠이 벗겨져 콘크리트 맨살이 드러나고 이끼도 끼어 있다. 사람들의 모습도 수수하다 못해 초라하게 느껴졌다. 세계 25위권의 경제력에, 세계 4~5위 정도의 외환보유액을 가진 대만 경제를 생각한다면 다소 당황스런 모습이었다. 이런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대만이 세워질 당시엔 임시 거처에 지나지 않았다. 초대 총통인 장제스는 중국으로 돌아갈 염원을 품었기에 도시 인프라 조성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타이베이의 날씨도 한몫했다. 사람들은 무더위와 잦은 태풍으로 훼손되는 외형에 개의치 않는다. 대만 사람들의 가치관도 체면보다는 실용을 우선시하는 사고방식이다. 타이베이가 회색빛을 띠는 근본에는 겉보다는 속을, 보이는 것보다는 내실을 중시하는 정신과 소박한 취향이 깃들여 있다.

이처럼 이 책은 타이베이의 겉에서부터 안으로 파고들며 역사와 문화, 정신 등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 놓았다. 타이베이 사람들을 말하기도 하고 국립고궁박물원으로 안내해 역사를 소개하기도 한다. 또한 대만 현대사의 대표적인 현장들을 통해 대만인의 정체성과 문화적 특성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설명해 준다. 여행자가 아닌 타이베이 사람들처럼 그곳을 즐길 수 있는 팁도 전한다.

“저에게 ‘타이베이의 눈에 보이는 매력’에 대해 물으신다면, 자신 있게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타이베이는 살면 살수록 정이 드는 곳이고, 타이베이의 매력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깊게 느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타이베이의 가장 큰 매력은 편안함이다. 타이베이는 소박하지만 느긋하게 행복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박소현 더스쿠프 기자 psh056@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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