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 한국여자오픈에서 이정민은 칩샷을 실수해 파를 놓치고 우승도 날렸다.[사진=뉴시스]
“어때요, 참 쉽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더스틴 존슨처럼 3퍼트가 나올 수가 없다. 누구나 밥 로스처럼 그림을 그리고 차범근처럼 볼을 컨트롤할 수 있다. 그게 안 되는 이유는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요령이 아니라 연습이 중요하다.

4.8m 퍼트를 3퍼트로 마무리해 평생의 영광을 날려버린 더스틴 존슨 이야기다. 6월말 현재 세계랭킹 3위다. 그는 6월 21일(현지시간) 워싱턴 주 체임버스GC 18번 홀(파 5)에서 겪은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장인과 가족, 예비신부가 보는 앞에서 4.8m 이글 퍼트. 제117회 US오픈 챔피언 퍼트를 남겨뒀다. 이게 1,2m 오버됐다. 이젠 18홀 연장전을 치를 수밖에 없게 된 상황.

그런데 PGA 투어에서 확률 97% 이상이라는 이 거리에서 버디퍼트가 또 홀을 비껴갔다. 이글은커녕 파가 됐다. 동시에 평생의 영광인 US오픈 우승컵이 날아갔다. 먼저 홀 아웃한 조던 스피스는 존슨의 멍청한 플레이로 올 마스터스에 이어 두 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손에 쥐었다. 존슨은 이날 무려 8개 홀에서 3m 이내의 퍼트를 실패했다. 우승을 스피스에게 떠 먹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얼마 전 TV에 유채 화가 밥 로스의 그림과 차범근의 축구볼 트래핑 슛 동작을 함께 보여주는 광고가 나왔다. “어때요, 참 쉽죠?”란 대사가 실린 이 광고는 유튜브에서도 100만 뷰를 돌파하는 히트를 쳤다. 로스의 사후 1년 뒤인 1996년 EBS에서 방영된 ‘밥 로스, 그림을 그립시다’ 프로그램에서 단 10여분 만에 그림을 완성한 뒤 클로징 멘트에서 나오는 명대사다. 그런데 정말 참 쉬울까. 아마도 로스나 차범근처럼 쉽게 그림을 그리거나 동작을 할 수 있으려면 기본기를 갖췄다 해도 하루 10시간 이상씩 꼬박 몇 년을 쉴 새 없이 반복해야 겨우 될까 말까 할 것이다.

더스틴 존슨은 전에도, 앞으로도 한 라운드에서 3m 이내의 퍼트를 8번 이상 놓치는 경우는 결코 없을지도 모른다. TV 골프채널이나 골프 전문 서적에서 레슨 프로그램을 보면 ‘절대 3퍼트 하지 않는 요령’ ‘100% 벙커 탈출!’ ‘쇼트 게임 문제 없다!’ 등 주제에서 레슨프로들의 시범 플레이는 경탄할 정도로 핀에 착착 달라붙는다. 참 쉽다.

지난 6월 21일 인천 청라 베어즈베스트CC에서 끝난 한국여자오픈에서 박성현에 이어 2위에 머문 이정민의 플레이에서도 ‘어프로치가 참 쉽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최후의 18번 홀 그린 가장자리에서 칩샷 한 볼이 홀을 7m나 오버돼 결국 파를 놓치고 우승도 날렸다. 무엇이 쉽다는 얘기인가.

여기서 주말 골퍼들은 따라만 할 게 아니라 마음속으로 정하고 임해야 한다. 정확도가 가장 낮은 순서는 샌드 웨지 벙커 샷~웨지 어프로치~피칭~일반 아이언이다. 로프트 각도가 큰 클럽일수록 컨트롤이 어렵다. 벙커 샷의 경우 볼을 때리는 게 아니라 밑 둥을 쳐서 모래를 폭발시키는 원리란 점을 이해한다면 모래의 굵기와 양에 따라 거리가 달라진다. 클럽 소울이 모래 속으로 파고 드는 순간 밀리미터 단위로 거리편차가 엄청나게 난다.

웨지의 어프로치도 임팩트 순간 56도가 순식간에 40도, 또는 60도 이상의 로프트로 급변하는 경우도 주말골퍼에게는 비일비재하다. 아이언 클럽 번호가 통상 4도 단위(거리는 10~15야드)인 점을 감안한다면 웨지는 경우에 따라 최대 5 클럽의 차이가 난다는 계산이다. 56도 웨지의 풀 샷이 60야드를 넘지 않기도 하고, 100야드를 훌쩍 넘길 수도 있다. 샌드 웨지로 모래를 몇 그램만 폭발시키려다 자칫 볼부터 때리면 원했던 10야드가 30~40야드짜리 홈런으로 변한다.

유채 화가 밥 로스가 붓을 캔버스에 대는 순간의 강도와 미끄러지는 속도를 TV 화면만 보고 그대로 본뜰 수 있다는 사고자체가 어리석다. 그의 말대로 참 쉽다면 누구나 차범근처럼 볼을 컨트롤할 수가 있다. 그게 안 되는 이유는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요령은 타이거 우즈 못지않게 알고 있지만, 실천을 못하는 건 비단 골프에서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이병진 더스쿠프 고문 bjlee284120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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