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업계에 부는 찬바람

▲ 엔저의 여파로 외국인 관광객 수는 점점 줄고 있다.[사진=뉴시스]
“곧 구조조정 바람이 불 것이다.” 서울 시내 호텔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호텔은 많고, 메르스 사태의 여파와 엔저로 외국인 관광객이 일본으로 몰려가고 있어서다. 그런데도 정부는 호텔 증설만을 외친다. 호텔업계 한 관계자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반복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비상이 걸리자 기획재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타개책의 일환으로 호텔을 더 늘리는 계획을 세워 추진 중이다. 호텔 증설의 근거는 서울 시내에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이 부족하다는 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전망한 올해 외국인 관광객 수는 약 1400만명이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매년 전체 관광객의 80%(1120만명)가 서울을 방문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3년 외국인 관광객 수가 1000만명을 넘어선 이후 최근까지 증가세였다. 한달을 30일로 계산할 때 적어도 하루 평균 3만1111명의 외국인이 서울을 들른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6년 서울 내 호텔 객실 수요를 3만7560실로 잡은 근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호텔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은 다르다. 이들은 “서울 시내 숙박시설이 남아 돈다”며 “얼마 지나지 않아 줄줄이 문 닫는 곳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울시 중구에서 한 비즈니스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한 CEO도 호텔업계 경쟁 심화로 곧 구조조정이 닥칠 거라며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관광산업 증진을 주장하면서도 호텔을 짓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현재 서울 지역은 호텔 포화상태다. 메르스 사태로 수요가 확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이미 2년 전부터 객실가동률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관광객 수요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정부는 호텔만 짓는다고 말한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서울 시내의 ‘호텔 구조조정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먼저 숙박시설이 정부의 주장처럼 그렇게 모자라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올해 5월까지 서울에 들어선 중급호텔만 해도 55개(객실 수 6264개)에 달한다. 그 결과, 지난 5월말 현재 서울 시내 호텔 개수는 256개, 객실은 총 3만6732개로 늘었다. 관광진흥법에 근거해 ‘호텔’로 등록된 현황만 그렇다. 공중위생관리법을 적용받는 일반숙박시설은 지난해 3월 기준 6만5000여개에 달한다. 여기에 도시민박과 게스트하우스 등까지 합하면 11만개를 가뿐히 넘긴다.

 
특히 내국인 관광객의 51%가 여행 시 가족이나 친지 집에서 숙박을 해결하고, 5.7%만 호텔을 이용(나머지는 펜션이 14.3%, 콘도미니엄이 10.5%, 모텔이 5.2%)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 시내 숙박시설은 1일 평균 외국인 관광객을 충분히 수용하고도 남는다는 얘기다.

최근엔 유통 대기업들까지 비즈니스호텔시장에 뛰어들었다. 롯데는 롯데시티호텔 마포점(2009년 4월)과 김포공항점(2011년 12월)을 개관한 이후 비즈니스호텔을 한동안 짓지 않다가 지난해부터 개관이 급격히 늘었다. 2014년 2월 제주점을 시작으로 대전점(3월), 구로점(7월)을 열었고, 올해 6월에는 울산점을 열었다. 명동점 두곳도 12월에 개관할 예정이다.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두곳을 운영하고 있는 GS그룹 계열의 파르나스도 2012년 12월 명동에 나인트리호텔 명동을 개관했고, 2016년에 명동2호점을 낼 예정이다.

1년 반 새 서울 호텔 55개 추가

호텔신라는 2013년 11월 경기도 동탄에 신라 브랜드 최초의 비즈니스호텔인 신라스테이를 개관한 이후, 서울 역삼점(2014년 10월), 제주점(2015년 3월), 서대문점(2015년 5월)을 잇달아 열며 세를 넓히고 있다. 올해 7월 중순에는 울산점, 9월에는 마포점이 개관한다. 2016년에는 광화문ㆍ구로ㆍ천안점 개관을 계획하고 있다. 신세계조선호텔도 올해 5월 남산에 비즈니스호텔인 포포인츠를 개관했다. 외국계 호텔브랜드인 프랑스 아코르계열의 이비스도 동대문에 이비스버짓 동대문(2014년 11월)과 스타일앰배서더 서울명동(2015년 3월)를 개관해 운영 중이다. 

한 레지던스호텔 관계자는 “대기업과 경쟁해서 중소기업이 살아남는 업종을 단 하나라도 본 적이 있는가”라며 “막강한 자금으로 무장한 대기업이 발을 뻗은 이상 중소형 호텔들이 문을 닫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진출해도 객실 가동률이 좋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서울 지역 호텔의 객실가동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가동률 전망도 어둡다. 지난해 한국신용평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아무리 긍정적으로 예상해도 서울 지역 전체 호텔의 객실가동률은 2013년 74.7%에서 올해 73.8%로, 2017년에는 68.6%로 떨어질 전망이다. 최악의 상황에는 61.1%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중저가 호텔업계 관계자들은 메르스 사태 전에 이미 50% 이하로 떨어진 곳이 수두룩하다고 입을 모았다. 객실가동률 하락이 온전히 메르스 사태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유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부분 수도권 외곽으로 빠지고 있어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서울에 숙박시설이 모자라서 외곽으로 몰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업계의 판단은 180도 다르다. 한 레지던스호텔 CEO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숙박시설 객실 수와 각 숙박시설의 객실가동률 등을 종합해보면 수치상으로는 숙박시설이 모자라지 않는다. 그럼에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서울 중심가가 아니라 수도권 외곽으로 몰리는 이유는 뻔하다. 여행사들이 수익을 남기기 위해 관광객들을 외곽으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대기업 호텔들이 여행사에 고액의 리베이트를 줘가며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는 면세점 매출 증대 외에 이런 이유도 있다.”

대기업 진출에 엔저까지…

호텔업계 구조조정을 부르는 또 다른 원인은 엔저다. 실제로 2012년 기준 환율로 1434원이던 엔화는 2013년에 1140원, 2014년 995원, 최근엔 911원까지 떨어졌다. 무려 36%나 떨어진 상황에서 일본으로 발길 돌리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대기업 호텔들과 달리 순수 객실가동에 중점을 두고 영업을 해온 비즈니스호텔업계가 메르스 사태 진정 후를 더 걱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비즈니스호텔 관계자는 “가장 심각한 건 대기업의 중저가 호텔 진출과 엔저”라면서 “여기에 신규 호탤까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느 것 하나라도 풀리지 않으면 메르스 사태가 끝나더라도 중저가 호텔업계는 장기불황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며 “엔저가 당분간 지속될 거라는 걸 감안하면 호텔 공급량을 조절하든지 대기업의 진출이라도 막아야 한다는 건데, 정부는 정반대의 정책을 취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강조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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