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기술탈취 의혹

 중소기업은 자신들의 특허기술을 송두리째 빼앗겼다고 주장한다. 대기업은 우리가 독자개발한 기술인데, 중소기업이 생떼를 쓴다고 맞받아친다. 누가 진실의 혀를 깨물고 있는 걸까. The SCOOP가 우리은행의 기술탈취 의혹을 단독 취재했다. ※ 이 기사는 7월 6일 월요일 발간된「The SCOOP(통권 제149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비이소프트 측 “1년 3개월 전 유니키 관련 사업, 우리은행에 제안.”
■ 복수의 변리사 “우리은행, 중소기업 특허기술 침해 가능성 크다”
■ 우리은행, 유사특허 및 선행기술 조사도 안 하고 ‘금융권 최초’ 홍보

■ 표세진 비이소프트 대표 “금융권 최초? 우리 기술 맘대로 탈취”

우리은행이 한 중소기업의 특허기술을 탈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보안전문업체 ‘비이소프트’에 따르면 최근 우리은행은 비이소프트가 특허출원(2014년 2월ㆍ특허출원번호 10-2014-0013440호)한 보안솔루션 ‘유니키(Uni-Key)’를 무단으로 카피, ‘원터치리모콘’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론칭했다.

표세진 비이소프트 대표는 “국민의 재산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은행이 국민의 재산을 몰래 훔쳐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우리은행의 갑甲질과 도둑질을 끝까지 고발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관련기사 표세진 대표 인터뷰]. 우리은행 측은 “은행은 신뢰를 바탕으로 영업하는 조직”이라며 “중소업체의 아이디어를 뺏을 만큼 돈에 인색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비이소프트가 개발한 ‘유니키’는 금융거래 당사자가 자신의 스마트 기기로 전자금융거래의 시작을 승인하는 솔루션이다. 쉽게 말해, 사용자가 스마트폰에 탑재된 유니키로 ‘ON’을 해야만 금융거래가 시작된다. 피싱(Phishing)ㆍ파밍(Pharming) 등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돼도 유니키만 있으면 금융사고를 막을 수 있다.

이런 유니키는 공교롭게도 우리은행이 올 4월 6일 론칭한 ‘원터치리모콘’ 서비스와 여러 면에서 흡사하다. 한 경제지의 보도를 보자. “… 우리은행은 금융권 최초로 스마트폰을 이용해 전자금융거래를 사전에 제어할 수 있는 신개념 보안서비스인 ‘원터치리모콘’을 출시했다. 이는 스마트폰을 리모콘처럼 이용해 거래 전에 별도로 허용(ON) 상태로 설정해야 금융거래가 가능하도록 한 서비스로 사기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원터치리모콘’이라는 서비스명名을 지우면 ‘유니키 내용’으로 읽힐 정도로 기술이 유사하다.

표세진 대표는 “우리은행은 특허출원도 하지 않은 원터치리모콘을 금융권 최초라고 홍보하고 있다”며 “서비스를 론칭한 다음 특허를 출원하겠다는 건데, 이런 일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꼬집었다. 우리은행 측의 주장은 다르다. 비이소프트의 ‘유니키’는 보편타당한 기술에 불과하다고 반론을 편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일본의 ‘JIBUN뱅크’는 2008년부터 원터치리모콘과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비이소프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 회사 역시 일본 ‘JIBUN뱅크’의 아이디어를 도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도용 여부를 떠나 유니키는 누구든지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는 거다.

하지만 이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아이디어는 사실 특별한 게 아니다. 누구나 생각했을 법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 예는 수없이 많다. 존슨앤존슨(J&J)의 반창고는 한 남편이 칼에 유독 잘 베이는 아내의 손가락에 ‘소독섬유’를 붙여준 게 시초다. 3M의 포스트잇은 “성경책에 끼워둔 메모지를 ‘붙였다 뗐다’ 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이 특허제품으로 이어진 경우다. 보편타당한 아이디어는 특허가 아니라는 우리은행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반창고도, 포스트잇도 특허제품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특허제도’도 존립할 이유가 없다.

독창적 vs 보편타당한 아이디어

최관락 변리사(아이피즈 국제특허 법률사무소)는 “선행기술이 증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제품의 기반이 보편적 아이디어라고 주장하는 건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다”며 “유니키가 누구든지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탄생했다면 우리은행은 왜 그것과 유사한 서비스를 론칭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명한 변리사(다우국제 특허법률사무소)도 “특정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라도 쉽게 발명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며 “일반적인 아이디어라고 하더라도 기술까지 보편타당한 것으로 폄훼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은행 기술탈취의혹’을 풀 수 있는 열쇠는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은행 원터치리모콘의 기술적 내용이 비이소프트 유니키의 특허청구항과 유사하다면 그 의혹은 사실일 공산이 크다[관련기사 법률검토서류]. 김종화 변리사(김종화특허법률사무소)는 감정서를 통해 “유니키의 금융거래 서비스 신청단계와 원터치리모콘의 가입ㆍ신청 단계, 그리고 금융거래시 ‘리모컨 ON’을 설정해야 하는 점 등이 동일하다”며 “지정한 시간 내에서만 금융거래가 가능하고, 시간이 지나면 거래가 자동 차단되는 기술도 실질적으로 똑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원터치리모콘의 내용은 유니키의 특허청구항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며 “이는 원터치리모콘 서비스가 유니키의 권리범위에 속한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양두열 변리사(공감특허법률사무소)는 법률검토의견서에서 “원터치리모콘 서비스는 제한된 시간에만 금융거래가 가능하다는 비이소프트의 특허필수구성요소(all elements)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며 “유니키의 특허가 청구항대로 등록될 경우 원터치리모콘’서비스는 유니키의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기술탈취의혹을 받는 기업이 우리은행이라는 사실을 알고 익명을 요청한 한 변리사는 “정황으로 봤을 때 전형적인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로 여길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기술탈취’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는 더 확실한 근거도 있다. 비이소프트는 지난해 3월 우리은행(고객정보보호부)에 ‘유니키 사업’을 제안했다. 이때부터 지난 4월까지 1년여 동안 우리은행에는 총 5번(이메일 4번ㆍ인쇄물 1번)에 걸쳐 ‘유니키 풀자료’가 전달됐다. 비이소프트 실무자들이 전화를 통해 유니키 기술을 설명한 것도 부지기수다. 우리은행이 원터치리모콘을 론칭하기 전 유니키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특히 2014년 10월엔 우리은행 고객정보보호부 A차장이 비이소프트 측에 “2015년 사업계획을 수립 중이다. 최신 해킹기법에 대응할 수 있는 보안솔루션 등에 대한 고견을 부탁한다”고 요청해 ‘유니키 자료 일체’를 제공하기도 했다. 비이소프트 관계자는 “우리은행의 도둑질이 이때 시작된 것 같다”며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변리사들 “특허침해 소지 크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다. 우리은행은 ‘원터치리모콘’ 서비스를 론칭한 바로 그날(4월 6일)까지 비이소프트 측에 ‘유니키 특허청구항’ 등을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표 대표는 “기술의 핵심내용까지 파악해 자신들의 특허출원에 활용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우리은행 측은 “원터치리모콘 서비스를 개시하기 전 ‘유사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비이소프트 측에 검토를 요청했고, 그 과정에서 (유니키 관련) 자료를 받았을 뿐”이라며 “당시 특허침해 여부를 문의했는데,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 반론도 설득력이 없다. 우리은행이 (비이소프트에) 특허침해 여부를 물었다면 1년 넘게 관련 사업을 추진해온 비이소프트로선 발끈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원터치리모콘이 론칭된 직후 비이소프트 측이 우리은행에 보낸 모바일 메신저와 이메일엔 그런 감정이 묻어 있지 않다[※ 참고: 비이소프트 측은 원터치리모콘 서비스가 론칭된 사실을 5월 중순에야 알아챘다고 밝혔다. 4월 6일 이후 우리은행 A차장과 김종국 비이소프트 부사장이 주고 받은 모바일 메신저ㆍ이메일을 순서대로 정리해본다. 두 사람은 유니키 사업의 ‘카운터파트너’였다.]

#4월 6일

우리은행 A차장→비이소프트 김종국 부사장

모바일 메신저 오후 6시17분: “우리은행 A차장입니다.”

모바일 메신저 오후 6시18분: “j○○○@wooribank.com, i○○@hanmail.net 같이 송부 부탁드립니다.”

김종국 부사장 → A차장

모바일 메신저 오후 6시49분: “제가 메일 주소를 잘못 보냈네요. 외부 미팅중이어서 내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선인증 관련 특허출원내용(유니키)도 오전 중 같이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월 8일

김종국 부사장 → A차장

이메일 오전 10시 20분

“안녕하세요? 비이소프트 김종국입니다. 말씀하신 선인증 솔루션(유니키)의 기본자료를 보내드립니다 … 저희 측 출원신청내용에는 ‘휴대단말기 사용자는 안전결제용 앱을 내려받아 금융거래 사전승인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 선행ㆍ유사특허는 POS기기에서의 카드거래 선인증처리가 있는 듯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에 답변이 됐는지요? 궂은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고, 항상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어떤가. 우리은행이 비이소프트 측에 ‘특허침해 여부’를 물었다면 김종국 부사장이 이렇게 친절하게 이메일 등을 보낼 수 있었겠는가. 그랬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김 부사장의 한탄이다. “A차장은 4월 6일께 유니키의 특허청구항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회사기밀인 특허청구항을 알려줄 수 없어 특허출원내용을 이메일로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우리에게 특허침해 여부를 물었다는 데, 대체 무슨 말인가. 당시만 해도 우리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도 우리은행은 ‘특허침해 여부를 물어봤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특허침해를 확인하기 위해 비이소프트 측에 대면요청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업체 측에서 이를 거부한 채 우회적으로 언론을 통해서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역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원터치리모콘을 론칭한 직후 비이소프트의 카운터파트너였던 우리은행 A차장은 연락을 끊어버렸다. 이상징후를 포착한 표 대표가 5월 15일 A차장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답변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6월 9일 A차장이 표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입장을 전달한 건 사실이지만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표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원터치리모콘이 론칭됐다는 소식을 들은 후 분노가 치밀어 금융감독원에 있는 지인에게 문제을 제기 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A차장이 내게 전화를 걸어 왔다. 연락이 끊긴 지 두달여 만이었다. 그런데 뭐라 했는지 아는가. ‘오해를 풀자. 우리은행으로 들어오라’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 특허를 당신들이 탈취해 놓고 왜 오라가라 하느냐며 성을 냈다. 이게 공식적인 대면요청인가? 어이없어 말도 하기 싫다.”

▲ 표세진 비이소프트 대표는 “우리은행 원터치리모콘이 유니키의 특허범위를 침해했다는 걸 입증해주는 법률의견검토서 등 자료를 확보했다”고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비이소프트는 이르면 7월 10일 미국에 유니키 관련 특허를 출원한다. 필리핀 정부와는 지난 5월부터 ‘유니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앞길이 막혀 버렸다. 사업을 제안했던 우리은행은 ‘유사서비스’를 론칭했다. 유니키에 관심을 보이던 다른 시중은행은 “우리도 (우리은행처럼) 보안솔루션을 개발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개발비ㆍ라이선스비용 등을 감안하면 비이소프트의 피해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표 대표를 비롯한 비이소프트 임직원이 강력 대응을 벼르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7월 6일 비이소프트 주주 200여명이 청와대ㆍ공정거래위원회ㆍ금융감독원에 탄원서를 보냈다. 7월 중에는 금감원 앞에서 평화시위를 열 계획도 갖고 있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일 수도 있지만 앉아서 당하진 않겠다.” 누가 이 도전적인 CEO를 길거리에 서게 했나. 슈퍼갑의 탐욕이 또 중소기업을 울린 걸까. 답을 알고 있는 곳이 있다. ‘우리은행’이다.
이윤찬ㆍ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이필재 더스쿠프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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