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산 합병에 통큰 베팅 “백기사 되고 돈도 벌까”
물산 합병에 통큰 베팅 “백기사 되고 돈도 벌까”
  • 성태원 대기자
  • 호수 149
  • 승인 2015.07.09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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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구원투수 정몽진 KCC 회장

▲ 정몽진 회장이 이끄는 KCC가 삼성물산의 백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사진=뉴시스]
정몽진(55) KCC 회장의 주식투자가 또 한번 화제가 되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복병으로 등장하자 백기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 재계 28위인 KCC가 제조업 기업집단인지 ‘백기사 전문 자산운용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회장 취임(2000년) 이후 잇단 그의 주식투자는 독특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재계에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이번엔 국제전 양상을 보여 더욱 시선을 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문제가 숨 가쁘게 돌아가면서 백기사로 등판한 KCC의 역할이 어떻게 전개될지 무척 궁금해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수석부장판사 김용대)는 1일 삼성물산 주식 7.12%를 보유한 엘리엇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총회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등 가처분 신청에 기각 판정을 내렸다. 일부 언론은 삼성이 승기를 잡고 8부 능선을 넘었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임시 주총(7월 17일 예정)에서 양측이 표 대결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낙관하기엔 아직 이르다. 삼성의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등판한 KCC는 6월 8일 장내 매수를 통해 삼성물산 주식 0.2%(230억원)를 취득했다. 이어 6월 10일엔 자사주 5.76%(6743억원)를 사들였다. 7000억원에 가까운 큰돈을 베팅하고 나선 것. 백기사 역할로 인심을 얻고 커다란 수익도 기대하는 눈치다. 일부에서는 이재용(47)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몽진 회장 간의 평소 친분도 이번 거래를 성사시킨 배경의 하나로 꼽는다.

KCC와 관련해 주목할 사실은 법원이 1일 ‘삼성물산이 KCC에 매각한 자사주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엘리엇의 주장에 대한 판단을 예상과 달리 임시 주총 전으로 미룬 것이다. 따라서 KCC가 사들인 삼성물산 자사주 899만주(5.76%)의 의결권 행사 가능 여부에 잔뜩 시선이 쏠리고 있다. 법원이 엘리엇 요청을 받아들이면 임시 주총에서 5.76%의 의결권 행사가 제한돼 삼성에겐 큰 타격이 되기 때문. 당연히 KCC의 투자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과제는 또 있다. 합병이 의결되더라도 엘리엇이 합병무효를 주장하는 본안 소송을 제기하며 법적 다툼을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는 것. 상법 제236조는 합병 등기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무효 소송을 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B2B(기업간 거래)형 제조업그룹인 KCC의 주식투자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몽진 회장이 2000년 창업자인 부친 정상영(79) 명예회장의 회장직을 이어받은 이래 15년 가까이 꾸준히 진행해온 일이다. 이들 부자는 제조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범현대가와 삼성가 주식을 주로 사들였다.

단순하게 사들인 것이 아니다. 백기사 역할이 필요한 시기에 경영권 참여보다 향후 투자수익을 기대하는 재무적 투자를 했다. 이런 점은 정 회장이 아버지 정 명예회장의 기질을 많이 닮은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아무튼 이들 부자가 투자한 기업 주식은 대개 ‘대박’을 터트렸다. 오죽하면 ‘KCC를 따라 투자하면 돈 번다’는 얘기마저 돌았을까.

주식투자를 주도해 온 젊은 회장 정몽진씨에게 숱한 찬사가 따라붙은 것은 당연했다. ‘투자의 귀재’ ‘백기사 전문’ ‘KCC 자산운용 회장’ ‘한국의 워런 버핏’ ‘기관투자가를 압도하는 족집게’ ‘숨어있는 주식 고수’ 등등이다. 그동안 KCC가 지분 투자에 나섰던 주요 기업으로는 현대중공업, 한라(옛 한라건설), 만도,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 삼성물산 등이 꼽힌다. 재계는 KCC의 투자에 대개 다음 3가지 패턴이 있다고 분석한다. ▲대주주 지분이 낮아 경영권 취약을 걱정하는 기업 ▲그룹 내 지배구조 핵심 기업 ▲KCC 제품 납품이 기대되는 우량 수요처 가능 기업 등이 대상이다.

삼성물산 vs 엘리엇 표대결 ‘후끈’

KCC는 2003년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현대자동차(1.02%), 현대모비스(1.11%), 현대산업개발(4.72%) 등의 지분을 사들였다. 당시는 현대그룹이 2세 분할 과정을 겪은 직후라 범현대가 모두의 지배구조가 취약한 상황이었다. 정상영 회장은 모태그룹에 대한 백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03년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상선 지분 투자 때는 경우가 조금 달랐다. 백기사가 아니라 광복군 같았다고나 할까.

현대그룹 경영 참여를 노리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갈등을 빚는 소위 ‘시숙의 난’이라는 파문을 일으켰다. 그 외는 대부분 재무적 투자에 그쳤다. 1549억원을 투자했던 현대중공업은 2010년 이후 지분 일부를 매각해 6600억원 상당을 회수하고도 지분 5.31%(5000억원 상당)가 남아 있는 상태다.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의 경우 투자원금 7739억원이 올 1분기 말 기준 2조556억원이 됐다. 주식가치가 3배 가까이로 불어난 셈. 이번 삼성물산 투자로 다시 한 번 투자 잭팟을 터트리게 될지 주목된다.

KCC의 주식 투자 행태에 비판적인 시각도 없진 않다. 친족이나 지인기업으로 투자 범위가 한정돼 ‘투자냐 재벌기업 간 지원이냐’라는 지적과 너무 정 회장의 인적 네트워크에만 의존한다는 얘기를 함께 듣는다. 정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온 후 미국 조지워싱턴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까지 받아 재무 투자에 대한 기본을 갖춘 기업인으로 볼 수 있다. 임석정 JP모간 한국대표 등과도 친해 평소에 자문을 많이 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순위 28위(2015년 4월 기준)인 KCC는 도료ㆍ판유리ㆍ건축내장재ㆍ창호재ㆍ실리콘(유기) 등을 주로 생산ㆍ판매한다. 전형적인 제조업을 하는 B2B형 기업이란 얘기다. 올해 창립 57주년을 맞는 KCC의 지난해 매출은 3조3998억원, 당기순이익은 3266억원이었다(그래픽 참조).

그런데 올 1분기 말 매도가능금융자산이 무려 2조9213억원에 달한다. 이는 1분기 말 회사 총자산 8조6302억원의 33.8% 상당을 차지한다. 매도가능금융자산이란 시장에 내다 팔아 현금화할 수 있는 다른 회사 주식, 채권 등을 말한다. 주로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ㆍ현대중공업ㆍ현대종합상사ㆍ한라ㆍ현대자동차 등 13개 상장사 주식이다.

1분기 말 이들 13개 주식의 취득원가는 8942억원, 장부가액(시가)은 2조8744억원으로 표시돼 있다. 1분기 말에 팔았으면 거의 2조원에 달하는 차익실현이 가능했다는 얘기. 그러고도 1분기 말 현재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행 예금 등)이 7396억원에 달할 정도로 KCC의 자금력은 좋다. KCC의 지난 몇년간 실적 추이를 보면 매출은 3조2000~3조4000억원에서 오락가락한다(그래픽 참조). 매출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느낌이 역력하다. 재계 일각에서는 정 회장이 재무적 투자를 통해 성장 둔화를 보상받으려 한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재무적 투자로 성장둔화 보상?

정상영 명예회장은 현대가家 일원답게 털털하고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는 자기 힘으로 KCC를 일군 것을 늘 자랑스럽게 여겼다. 막내인 그는 “큰형 정주영 회장 덕분에 회사를 키웠다”는 말을 제일 듣기 싫어했다. 동국대에 다니던 22세 때 금강스레트공업이란 회사를 차려 독자적으로 사업을 일궈냈다. 이제 칼자루는 KCC에 포진한 세 아들에게 넘어가 있다. 3형제인 정몽진 회장과 정몽익(53) KCC 대표이사 사장, 정몽열(51) KCC건설 대표이사 사장 등이 그들이다. 비교적 큰 탈 없이 2세 승계의 길을 닦아온 그들의 독특한 경영 행태가 주목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i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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