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리포트

▲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사진=뉴시스]
6030. 이 무미건조한 네자리 숫자가 무얼 의미하는지 아는가. 내년에 적용될 시간당 최저임금이다. 협상 당시엔 경영계가 5580원, 노동계는 1만원을 제시했다. 결론적으로 양측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노동계가 주장한 ‘최저임금 1만원’은 과도한 숫자였을까. The SCOOP가 ‘1만원’이라는 숫자가 갖고 있는 ‘함의含意’를 분석했다.

6월 9일 새벽, 2016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6030원. 올해(시급 5580원)보다 8.1% (450원) 인상됐다. 주당 40시간 기준으로 월 126만270원이다. 볼품 없어 보이지만 진흙탕 싸움 끝에 건져 올린 숫자다. 그만큼 많은 사연이 내포돼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과 이 둘을 중재하는 공익위원 9명, 총 27명으로 구성돼 있다. 4월 9일 1차 전원회의를 시작으로 ‘마라톤 협상’이 시작됐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노사간 요구 간극이 너무 컸다. 사용자위원은 5580원 동결을 주장했지만 노동자위원은 1만원을 제시했다. 100%에 가까운 인상률을 주장하자 사용자위원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서기도 했다. 최종결정일로 삼았던 6월 29일을 훌쩍 넘어서까지 협의가 계속된 이유다.

7월 3일 노사 양측은 최저임금 1차 수정안에 이어 2ㆍ3차 수정안을 제시했다. 노동계는 3차 수정안을 통해 요구 수준을 1만원에서 8100원까지 내렸다. 경영계는 5715원까지 올렸다. 그럼에도 간극(2385원)이 좁혀지지 않자 공익위원단의 중재안인 심의 촉진구간(5940~6120원ㆍ인상률 6~9%)이 발표됐다. 이번엔 노동계가 집단 퇴장했다. 이들이 요구한 두자릿수 인상률에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7월 9일 새벽, 사용자ㆍ공익위원 18명만 참석한 자리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표결했다. 적용금액은 6030원, 인상률은 8.1%이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기업 경쟁력을 고려하면서도 최대한 인상을 이끌어 내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일 것”이라며 “이번 최저임금 인상이 근로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평가했다. 일부 보수언론 역시 8년 만에 최고 인상률이라며 앞다퉈 칭찬했다. 앞자리 수를 5(580원)에서 6(030원)으로 바꾼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나왔다.

정말일까. 우리는 이 문제를 다시 주목하려 한다. 최저임금 인상논란이 비단 돈문제 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계의 최초요구안을 다시 살펴보자. 노동계가 최초 요구한 1만원의 기준은 생계비다. 계산방식은 다음과 같다. “도시근로자 1인 가구 가계지출을 산정하고, 경상조세ㆍ법정사회보험료 등 공적 비소비지출을 제외한다. 여기에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평균 가구원수(2.5명)을 곱한다.” 이런 복잡한 수식을 통해 계산된 월 생계비가 약 208만9035원, 시급으로는 9995원(약 1만원)이다. 노동계가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한 까닭이다. 하지만 이 산정방식은 매서운 비판을 받았다. 생계비를 책정하는 수많은 변수를 감안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부 노동전문가조차 “합리적인 수치는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고 ‘최저임금 1만원’의 의미를 평가절하할 순 없다. 다른 함의含意가 있어서다.

우리나라는 1986년 12월 31일 ‘최저임금법’을 제정ㆍ공포하고 1988년 1월 1일 최저임금제를 실시했다. 당시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462.5원. 이후 2016년 6030원으로 올랐으니 1203%가 상승한 셈이다. 연 평균 9.6%씩 오른 셈이다. 수치만 보면 상당한 상승률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물가 등을 고려한 실질가치가 아니라서다.

김수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위원은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필요하다”며 “지금 수준의 최저임금과 인상률로는 노동자 가구의 생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는 없어서다”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을 1만원 수준으로 올리는 게 지나친 주장은 아니라는 거다.

또 다른 근거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노동기구(ILO) 등은 최저임금을 파악할 때 ‘노동자 평균임금÷최저임금’이라는 수식을 사용한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이 비율이 50%는 돼야 임금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비율이 50%가 되려면 최저임금이 어느 수준이어야 할까. 기준이 있다. 공공부문이다. 2014년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평균 최저임금 8109원, 평균임금의 49.5%였다. 이에 따르면 ‘최저임금 1만원’은 과도한 수치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지금껏 억제된 인상률을 고려하면 최저임금 1만원을 터무니없는 수치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넘지 못하는 50%의 벽

한편에선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이 주장의 근거는 OECD 자료다. 2013년 한국의 연간 최저금액은 1만2038달러로, OECD 회원국 중 14위를 차지했다. 얼핏 최저임금이 양호한 듯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최저임금에 현행 법정노동시간인 월 209시간이 아닌 2007년 이전 기준인 월 226시간을 곱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우리나라의 연 최저임금 수준이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다.

더구나 이 통계의 기준이 된 OECD 25개국 가운덴 덴마크ㆍ핀란드ㆍ스웨덴ㆍ스위스ㆍ이탈리아 등 최저임금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국가들은 빠져 있다. 이 국가의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않아도 노조 교섭 등을 통해 이미 많은 임금을 많이 받고 있다. ‘최저임금 OECD 14위’라는 순위가 중요하지 않은 이유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최저임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여기에서 보듯 최저임금은 단순한 ‘돈문제’가 아니다. 생계ㆍ복지 등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최저임금제도를 만든 취지도 ‘삶의 질’에 있다.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끌어올려 불평등한 상황을 단계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만든 게 최저임금제라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제도는 ‘양극화’‘소득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힘을 쓰지 못했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임금불평등(하위 10% 임금 대비 상위 10% 임금ㆍ2011년 기준)은 4.85배로 멕시코(5.71배), 미국(5.03배), 이스라엘(4.91배)에 이어 네번째로 높다[※ 참고: 2011년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멕시코는 2008년 기준.] 최저임금제도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기업은 최저임금을 끌어올리는 데 불만이 많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 임금이 올라가면 투자여력이 줄어들고, 그러면 제품경쟁력이 떨어진다. 그 결과, 시장에서 제품이 외면을 받고, 공장가동률이 떨어지며, 노동자는 구조조정이 된다. 시장은 위축되고, 기업은 또 실적이 악화된다….”

이윤주도냐 소득주도냐

기업 입장에서 임금인상은 ‘악순환’의 첫번째 고리다. 다시 말해 임금이 아니라 이윤을 키워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런 ‘이윤주도 성장론’을 대체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되고 있는 글로벌 불황이 ‘이윤주도식 성장론’을 맹목적으로 쫓았기 때문이라는 반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들어 소득이 늘면 소비가 활성화돼 기업과 경제가 성장한다는 ‘소득주도 성장론’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저임금 1만원론’을 중요한 화두로 삼아야 하는 까닭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시각은 가계부채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저소득층이 가계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소득 1분위 부채보유 가구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2012년 430%에서 지난해 524%로 껑충 뛰었다. 부채가 소득을 짓누르고 있다는 거다. 더구나 이들은 낮은 신용도 탓에 소득의 70%가량을 원리금 상환에 투입하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이윤주도성장’이 아니라 ‘소득주의 성장’임에 틀림없다.

김유선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생계비를 바탕으로 노동계가 주장한 최저임금 1만원은 설득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는 아니다. 네자리 숫자만 언급되는 소폭의 인상률로는 양극화로 인한 한국 경제 리스크를 막을 수 없다. 1만원은 대폭 인상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도달해야 할 숫자다. 결국 언제가 되느냐의 문제겠지만 말이다.” 최저임금 1만원은 무미건조한 숫자가 아니다.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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