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에 청년 없는 이유

▲ 일선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청년들이 이런 곳으로 밀려오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사진=뉴시스]
청년백수가 넘치지만 건설현장엔 젊은이들이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고생을 안 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그 누구도 처우 문제를 꼬집지 않는다. “건설현장은 1970년대 수준인데, 2015년을 사는 청년을 그곳에 보내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하는 이도 없다. The SCOOP가 이 문제를 짚었다.

올해 29살인 나선호(가명)씨. 그는 청년실업률이 전체 평균의 3배에 육박하는 환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취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극심한 취업난으로 중소기업에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제 몇달 있으면 선호씨의 나이도 서른. 집에 손 벌릴 처지도 아니고 모아놓은 돈도 없어 한숨만 나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는 사람은 낙오자로 취급받기 일쑤다. 선호씨는 그런 평가를 받기 싫었다. 그런 그에게 주변 어른들이 던지는 조언은 대부분 비슷했다. 뭐든 가리지 말고 일을 해서 돈을 벌라는 거였다. 선호씨는 건설현장에 뛰어들었다.

건설현장이 인력난에 시달린다는 얘기도 얼핏 들었다. 하루 일당은 8만원 수준. 서비스직종 아르바이트보다는 수입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선호씨는 3개월 만에 ‘이건 아니다’며 원점으로 돌아왔다. 힘들어서가 아니다. 건설현장에선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다.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선호씨와 비슷한 생각으로 건설현장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꽤 늘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 7월 건설근로자공제회가 건설일용직을 전수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20대 건설일용직은 연평균 1%씩(2009년 대비 4.7%) 늘었다. 30대도 0.5%가량 늘었다. 반면 40ㆍ50ㆍ60대는 각각 0.2%, 3.5%, 2%씩 줄었다.

물론 20대 건설일용직이 늘어난 데는 외국인(중국인) 노동자의 유입도 있다. 그러나 20대 건설일용직 증가세와 ‘일시적(단기) 근로’의 증가세가 정비례한다는 건 20대 구직자의 상당수가 건설일용직을 한번쯤은 경험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제회는 “취업난 때문에 20대가 건설현장으로 유입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대부분 몇달 안 돼 선호씨처럼 손 털고 나온다는 거다. 건설일용직의 갑갑한 현실 때문이다.

무엇보다 임금이 턱없이 적다. 선호씨처럼 아무런 기술이 없는 이들은 대략 7만~8만원의 일당을 받는다. 올해 상반기 현장 임금의 기준이 되는 대한건설협회의 발표자료를 봐도 8만7000원 수준이다. 그것만 보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평균 근무일수는 월평균 15~20일에 불과하다. 날씨에도 제약을 받고, 연속성도 없다. 공사가 끝난다고 해서 곧바로 다른 공사현장으로 투입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제로 손에 쥐는 액수가 이보다 더 적다는 점이다. 8만7000원은 원청건설사 인건비로 책정되는 금액이다(건설협회 자료는 공사단가의 토대가 된다). 국내 건설산업은 최소 2단계 이상의 하청이 이뤄지는 구조다. 대부분의 건설일용직이 인력소개소를 통해 공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1만~2만원은 소개비로 떼인다. 

무늬만 그럴듯한 건설일용직 일당

매월 임금이 얼마나 달라질지 모르니 삶의 계획을 짤 수도 없다. 은행 정기적금조차 이들에겐 꿈같은 얘기다. 정착도 힘들다. 건설현장을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어서다. 숙식이 제공되지 않는 현장이라면 이에 따른 비용까지 발생한다. 최근엔 외국인, 특히 중국인들이 현장에 대거 유입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일자리를 뺏긴다는 우려보다 그들로 인해 임금 단가가 내려가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에서도 철저히 배제돼 있다. 지난해 8월부터 고용노동부는 근로계약서를 반드시 체결하도록 했지만,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거나 여전히 쓰지 않는 현장이 적지 않다.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서 일하는 한 일용직노동자는 “매일 고용관계를 갱신하는 우리같은 입장에선 불이익이 있어도 감내하고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수밖에 없다”며 “근로계약서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근로기준법에 제시돼 있는 노동자의 다양한 권리들을 건설일용직은 누릴 수 없다는 거다. 대표적인 게 바로 ‘일당’으로 불리는 포괄임금제다. 근로시간으로 임금을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연장근로나 야간근로 등을 하더라도 시간외 수당이 없다.

근로조건도 엉망이다.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사비용이 100억원 이상인 공사현장에서는 탈의실ㆍ세면실ㆍ휴게시설 등을 갖추도록 돼 있다. 하지만 건설일용직들은 이런 시설을 제대로 이용해 본 경험이 없다. 한 건설일용직은 “원청업체들은 비록 가건물이라 하더라도 이런 시설들을 갖춰 놓지만 하청업체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대규모 아파트단지 공사장의 경우 휴게시설을 이용하려면 수백미터를 가야 하는데, 누가 에어컨 바람 좀 쐬겠다고 그 고생을 하겠느냐”고 설명했다. 편의시설은 ‘그림의 떡’이라는 얘기다.

 
사회보험이 제대로 적용되지도 않는다. 지난해 기준으로 볼 때 산재보험 가입률은 전체 평균인 97.5%와 비슷하다. 하지만 2000만원 미만의 공사(하자ㆍ보수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노동부 통계(2014년말 기준)에 따르면 ‘5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수는 247만명으로 ‘5~49명 이하 사업장’ 724만명의 3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산업재해율은 1.19%로 ‘5~49명 이하 사업장(0.61%)’의 두배다. 결국 건설일용직 대부분은 산재보험이 있어도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얘기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의 가입률(일일노동자 기준)은 각각 8.9%, 8.5%로 10%가 채 안 된다. 고용보험은 44.2%로 전체(88.5%)의 절반 이하다.

임금체불은 고질적인 병폐다. 올해 2월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 임금체불액은 3031억원(23%)으로 제조업 다음으로 많았다. 그 피해는 건설업에서도 가장 하위에 있는 일용직노동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석호 전국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은 “단계별 하도급 구조 때문에 체불임금을 누구에게 받아야 하는지조차 애매한 상황이 벌어진다”며 “석달치 임금을 밀린 상태로 공사를 계속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체불임금은 노동부 신고로 받을 수 있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마포 효창지구의 한 건설일용직은 “체불임금을 받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며 “일도 못하고 돈 받으러 다녀야 하는데, 그러면 건설일용직은 일도 못하고 돈도 못 받는 이중고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건설노동자 “청년들 오지 마라”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건설현장에라도 가서 일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옛날 중동건설 붐이 일던 시절이 아니다. 당시는 건설현장이 돈을 버는 곳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갈 곳 없는 막바지들이 거쳐 가는 곳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건설현장에 오면 잔뼈 굵은 어르신들은 그들을 내보내려 한다. 앞날이 캄캄하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에 청년을 끌어들이려면, 건설일용직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이런 노력도 없이 ‘요즘 청년은 힘든 일을 하지 않는다’며 몰아세워선 안 된다. 방법도 있다. ‘적정임금제도’다. 건설노동자의 직종별 적정임금을 국가가 고시하도록 해서 지역이나 여건에 따른 임금차별 방지와 적정한 임금을 보장하자는 거다.

그러려면 건설사의 저가수주 경쟁 개선도 불가피하다. 어쩌면 건설업계 환경을 변화시킬 단초가 될지도 모른다. 이미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2년 ‘건설기능인의 육성과 지원에 관한 법률안’에 적정임금제를 포함해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3년째 국회 계류 중이다. 그사이 박근혜 정부가 ‘중동 건설 바람’을 일으켰다. 우리 청년을 그곳으로 보내라며….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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