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와호장룡 ❷

▲ 리무바이는 청명검을 든 용을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제압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찰스 틸리(Charles Tilly) 등 사회변혁이나 사회혁명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는 사회변혁의 원인과 과정, 결과를 기존 질서의 ‘수호세력(Contenter)’과 ‘도전세력(Challenger)’의 대립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그 대립의 결과는 물리력을 포함한 자원의 동원능력을 어느 세력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영화 ‘와호장룡’에서 리무바이(주윤발 분)와 슈리엔(양자경 분)은 기존 질서의 ‘수호세력’을, 용(장쯔이 분)과 푸른여우는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세력’을 상징적으로 대표한다. 청명검은 ‘물리적 자원’을 상징한다. 용은 무당파의 ‘무당심결’ 정수를 익혔다고 자부하고 청명검까지 손에 넣은 후 기존 세력에 도전장을 낸다. 그러니 용에게 기존 질서는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마치 한 순간에 강호를 제패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와호장룡’이 기존의 무협영화와는 차별성을 띠고 있지만 무림 신흥고수의 데뷔라는 틀은 철저하게 따른다. 우리나라 조폭영화에서 신흥조폭이 잘나가는 나이트클럽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과 비슷하다. 화려한 진열대는 반드시 박살나야 하며, 진열장은 유리진열장이어야 한다. 그래야 호쾌하게 부술 수 있다.

중국 무협영화에서도 신흥고수는 매번 번잡한 ‘○○반점’에 밥을 먹으러 들어가고, 자리에 앉으면 껄렁한 동네 무술인들이 매번 시비를 걸어온다. 그러면 신흥고수는 그들을 그동안 갈고 닦은 최첨단 무술로 박살내면서 데뷔한다. 용은 ○○반점에 들어간다. 여기 몰려든 ‘지역사회 고수’들은 그 용모와 이름, 손에 든 무기까지 너무 살벌해서 오히려 코믹해 보인다. 용은 이들을 청명검 한 자루로 가볍게 제압하고 ○○반점을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어버린 후 “오늘은 아미산에 오르고 내일은 무당산을 정복하겠다”고 호언한다.

용의 도발이 이쯤 이르자 기존 질서 ‘수호세력’의 대표인 리무바이와 슈리엔은 진압에 나선다. 그러나 용에 대처하는 리무바이와 슈리엔의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슈리엔은 단순명쾌하게 가차 없는 응징과 진압을 주장하는 반면, 무림 절정의 최고수 리무바이의 태도는 다소 신중하다.

▲ 용은 지역사회 고수들을 물리치며 새로운 고수로 등장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슈리엔과 용의 대결에서 용의 무공은 객관적으로 슈리엔의 무공에 못 미치지만, 용이 가진 청명검의 위력은 실로 가공할만하다. 슈리엔이 휘두르는 온갖 둔중한 병장기들을 무 썰듯 토막내며, 대결을 무승부로 이끌어간다. 노장사상의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말이 입증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버들가지처럼 휘청휘청하는 부드러운 청명검은 무시무시하게 둔탁한 병장기들을 간단히 토막 낸다. 그 와중에 분에 못이긴 슈리엔은 용에게 “너는 청명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독설을 퍼붓고 용은 “청명검 덕분이 아니라 이건 순전히 내 실력”이라고 맞받는다.

용을 제압하지 못한 슈리엔을 대신해 리무바이가 나선다. 여기서 ‘와호장룡’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대나무 숲의 대결’이 펼쳐진다. 경공술의 초절정 고수들인 리무바이와 용은 대나무 숲까지 구질구질하게 뛰어가거나 걸어가지 않고 훨훨 새처럼 날아간다. 대결할 때도 대나무 숲 속이 아닌 숲 위를 날아다닌다. 과장과 거짓말도 도를 넘으면 황당하고 김새기 마련이지만, 이 장면은 오히려 환상적이다. 모든 극단極端에는 경계가 사라지고 일치한다고 하듯, 초절정 고수들의 대결은 폭력적이기 보다 평화스럽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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