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없는 가계부채 대책

▲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으로 금리가 낮아지면서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100조에 육박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가계부채 1100조 시대. 가계부채 증가세를 막지 못한 정부는 다시 ‘대책’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효과를 두고 말이 많다. 가계부채 문제로 고통 받는 채무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철저하게 금융회사 입장에서 마련된 대책이라서다. 가계부채 대책에서 또 가계가 빠진 셈이다.

“수급 불균형을 완화하고 주택 거래를 저해하는 규제를 정상화해 시장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 부동산 규제 완화로 가계부채가 금액면에서는 조금 늘겠지만, 가계대출 구조가 개선되면 리스크가 줄게 될 것이다.” 지난해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정부는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8월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했다. 이후 올해 7월까지 4차례 금리를 낮춰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인 1.5%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최 부총리의 전망은 빗나갔다. 가계부채가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2013년과 2014년 6%대로 증가속도가 안정화되던 가계부채는 올해 1분기 7.3%로 높아졌다. 3월말 기준으로 1100조원에 육박하는 등 증가세는 점점 커지고 있다.

결국 정부는 7월 22일,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크게 세가지다. ▲주택 담보대출은 처음부터 원금과 이자 모두 나눠 갚아라 ▲소득 범위 내에서 대출 취급이 이뤄지도록 은행들은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철저히 따져라 ▲은행권에 돈을 빌리기 어려울 경우 상호금융권과 제2금융권의 신용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금융회사가 주택대출을 취급할 때 상환능력을 보다 정교하게 심사할 수 있도록 객관성 있는 소득 자료를 활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근로소득자의 경우 원천징수영수증, 사업소득자의 경우 소득금액증명원, 연금소득자의 경우 연금지급기관 증명서 등 구체적인 자료를 첨부하는 식이다.

분할상환 유도가 상책일까

상환부담이 높은 대출은 분할상환을 유도하기로 했다. 과도한 대출을 막기 위해서다. 신규 주택대출을 취급할 때 소득수준이나 주택가격에 비해 대출금액이 큰 경우엔 일정수준 초과분에 분할상환 방식을 적용할 예정이다. 대출을 증액하거나 다른 대출로 대환할 때에도 분할상환을 적용하기로 했다. 다만 기존대출이라도 분할상환으로 변경하는 경우에는 기존의 LTVㆍDTI 등을 그대로 인정한다. 이 경우 최초 대출시점보다 주택가격이 하락했거나 소득이 감소했어도 일시에 목돈 상환 없이 장기ㆍ분할상환 대출로 전환이 가능해진다. 이런 방식으로 정부는 분할상환 비율의 최종목표를 기존 40%에서 45%로 5% 포인트 높이고 연도별 목표도 조정해 나갈 예정이다.

변동금리 상품에는 금리상승 리스크를 반영하기로 했다. 변동금리 주택대출의 경우 대출가능 한도를 계산할 때 취급시점의 금리에 일정 수준의 ‘스트레스 금리(Stress rate)’를 반영한다. 금리가 오를 경우 상환부담액이 커지는 효과를 반영해 대출한도가 낮아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대출금리를 올리지는 않지만 변동금리 대출은 금리 상승시 상환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해 고정금리 대출을 받도록 유도하겠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은행권의 대출 문턱을 높여 가계부채의 전체 규모를 억제한다는 내용이다.
정부가 1년 만에 갑자기 정책 방향을 선회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가계대출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크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가시화될 경우,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 가계부채가 부실화될 수 있다는 위기론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본질적 대책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LTVㆍDTI 규제를 강화하지 않은 만큼 가계부채 증가세를 둔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DTI 규제 강화와 가계대출을 막는 근본대책이 없어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 의지가 있는지 의심된다”며 “비본질적인 서민대출 억제로 가계부채를 야기한 책임을 면피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부동산 거품이 여전한데 은행문턱만 높이는 것은 현 정부만 폭탄을 피하기 위한 단기적 처방이라는 얘기다.

가장 중요한 소득증대 방안이 빠진 것도 문제다. 실질적으로 가계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가계가 빚을 갚을 수 있어서다. 1100조 가계부채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이자 외에 원금상환능력이 없는 서민들이다. 김한중 하나금융경영 연구원은 “분할상환만 강조한다고 해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가계소득 증대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오히려 “분할상환 대출은 가계에서 갚아야 하는 돈이 늘어나는 것이고, 결국 민간소비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알맹이가 빠졌다

특히 신규 대출을 분할상환 대출로 유도하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 주택담보대출 중 일부는 부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기존에 만기 일시상환 조건으로 변동금리(3.5%), 만기 20년 대출을 받은 사람은 매월 58만원의 이자만 내다가 만기에 2억원을 한꺼번에 내던 것을, 20년 만기에 고정금리(2.8%)ㆍ분할상환 조건으로 새로 대출을 받을 경우 매월 109만원을 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추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대출자는 가계 부실에 빠질 공산이 크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금리인상 기조로 돌아설 경우 주택담보 대출자들은 ‘이자 폭탄’을 맞게 될 가능성도 있다. 가계부채 중 700조~800조원은 기준금리 영향을 받는 변동금리형으로 추산되는데, 한은이 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려도 이들은 연간 1조7500억~2조원의 이자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가계부채, 여전히 우리나라 경제의 가장 큰 뇌관으로 남아 있다는 얘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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