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자판기 시대 개막

▲ 다이소는 전국 145개 매장에서 휴대전화 자판기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사진=지정훈 기자]
휴대전화를 자판기에서 살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조건만 맞으면 단돈 1000원으로도 스마트폰을 구매할 수 있다. 통신사는 물론 요금제, 약정유형, 할부기간도 선택 가능하다. 대리점에 들러 알 수 없는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다. ‘휴대전화 자판기’, 통신시장에 작은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다.

서울 홍대 정문 앞 다이소 매장 1층. 이곳에선 흥미로운 거래가 이뤄진다. 자판기에서 휴대전화를 사고 파는 것이다. 말이 ‘휴대전화 자판기’지 엄밀히 따져보면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다. 휴대전화 판매업체인 폰플러스컴퍼니가 개발한 이 자판기는 지난해 8월 이후 전국 약 145개 다이소 매장에서 운영 중이다. 최근 일부 중저가 보급형 휴대전화를 1000원에 팔면서 일약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다이소에서는 공시지원금과 추가지원금을 연동했을 때, 월 3만~4만원대의 납부금으로 이용할 수 있는 KT·LG유플러스 통신사의 중저가 휴대전화들이 있다. 삼성 갤럭시 줌2, LG G3비트와 VU3, 화웨이의 X3, 소니 C3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게 뭐야’라는 반응도 있다. 기존 대리점에서도 ‘기기값 0원’ ‘공짜폰’ 등을 대수롭지 않게 팔아서다.

하지만 휴대전화 자판기가 관심을 모은 건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기존 대리점에선 찾아보기 힘든 ‘보급형 휴대전화’를 싼값에 팔고 있어서 이목을 끌고 있는 거다. 폰플러스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최근 중저가 휴대전화의 수요가 높아졌지만 막상 대리점에 가면 높은 가격대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추천받기 일쑤예요. 이런 면에서 휴대전화 자판기는 다르죠. 모델별 기준 요금제를 소비자가 직접 조절할 수 있어, 사용자의 니즈에 따라 휴대전화를 고를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 자판기의 핵심은 ‘값싼 가격’이 아니라 ‘선택권 보장’이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1000원짜리 휴대전화를 소비자의 선택권을 십분 반영하면서 판매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무엇보다 유통구조가 기존 판매점(대리점)과 크게 다르다. 휴대전화 자판기는 통신사와 판매점(폰플러스)이 제휴를 통해 유통구조를 단축(직거래 방식)한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널리 알려져 있듯 휴대전화 기기값이 비싼 이유는 제조사 출고→이통사→대리점(판매점) 등 단계를 거치면서 마진이 붙어서다.

 
더구나 대리점은 고객 상담·유치를 위해 직원을 고용하고, 목 좋은 곳에 매장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인건비·임대료 등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부담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사람도, 공간도 필요 없는 ‘휴대전화 자판기’는 비용 면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응준 폰플러스 컴퍼니 대표는 “휴대전화 자판기는 인건비나 임대료가 따로 들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마진을 덜 붙여도 되는 구조”라며 “대신 보조금을 조금 더 늘려 소비자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이런 휴대전화 자판기의 수익은 아직 관심만큼은 아니다. 일 판매량이 매장당 1~2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이소와 폰플러스는 이 사업의 초기 상황을 ‘실패’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판매량보단 휴대전화 자판기가 가져올 유통혁신에 더 주목하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휴대전화 구매자가 자판기를 통해 각 모델의 할부원금과 요금제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요금제의 경우, 모델별 기준 요금제를 시작으로 상향조절이 가능해 사용자의 니즈에 따라 요금제를 조정할 수 있다. 디지털 서명방식을 도입해 소비자들은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다. 특히 지난 5월부턴 휴대전화 자판기를 통해 단말기 보조금 등을 자동 계산해주는 ‘할인 혜택 비교 서비스’, 우체국보다 2만~7만원 높은 금액에 휴대전화를 팔 수 있는 ‘중고폰 매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잠재력이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비자는 대리점이 아닌 다이소 매장에서 할인혜택을 비교한 후 저렴한 가격에 휴대전화를 구입하고, 높은 가격에 중고 휴대전화를 파는 ‘일석삼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응준 대표는 “통신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다이소 매장에 설치한 휴대전화 자판기를 통해 다양한 고객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이를 발판으로 고객들이 보다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휴대전화 판매방식을 계속 선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이소와 폰플러스는 아직 국내에 론칭되지 않았거나 너무 비싸 구입이 어려운 외산 휴대전화를 직구(직접구입) 형태로 사들여 선보이는 프로모션도 준비중”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9월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된 후 보조금의 위력은 상당히 약해졌다. 공시지원금은 한정적인데다 모두 공개되고 있어 소비자를 유혹하는 것도 힘들다. 정확한 정보제공이 중요한 마케팅 수단으로 떠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래의 통신시장은 공급자가 아닌 고객이 이끌 가능성이 크다. 정보의 흐름이 공급자에서 고객 쪽으로 흐르고 있어서다. ‘휴대전화 자판기’를 단순히 혁신적 시스템쯤으로 평가해선 안 되는 이유다. 이 자판기는 통신시장의 기존 질서를 바꾸는 변화의 시그널일지 모른다.  

 
김은경 더스쿠프 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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