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비만 Exit | 살과 사랑 이야기

▲ 육류는 반찬이지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다. [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술 약속을 하지 않는 필자의 귀가시간은 늘 빠르고 일정하다. 퇴근길엔 집 근처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사곤 한다. 토마토·바나나·당근 등 가공되지 않은 것들을 주로 사는데, 과자 코너에 도달하면 고민에 빠진다. 그냥 지나가야지 하면서도 지나치지 못하거나 되돌아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집에서 기다리는 쌍둥이 녀석들이 반기는 것은 늙은 아빠가 아니라 내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이다. 봉투 안에서 흙 묻은 고구마나 감자 따위가 발견되면 입맛을 다시고 방으로 들어가지만, 과자·아이스크림 따위가 있으면 생기가 돈다. 공교롭게도 맛이 좋은 음식은 보편적으로 열량이 높다. 대부분 가공식품이나 패스트 푸드가 강한 단맛과 짠맛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당분과 염분의 과잉섭취로 이어져 비만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

특히 필자는 어린이의 입맛에 걱정을 많이 한다. 이들의 입맛이 단맛·짠맛에 치우치면 쓴맛·신맛·감칠맛은 뒷전으로 밀려서다. 제한된 미각은 담백한 맛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데, 이것이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의 폭을 좁히는 원인이 된다. 실제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선호하는 음식을 묻게 되면 대략 10가지 내외로 국한된다. 학교 급식실에서 식단을 작성하는 영양교사의 애로가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실제로 배식을 하다 보면 나물류보다는 닭튀김을 나누어 주는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더 인기가 있다. 그렇다면 소금·설탕·지방이 우리의 입맛에 각인된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인류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짠맛·단맛을 내는 염분과 당분은 인간이 성장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 영양소이다. 아사 직전의 상태로 인류가 생존해 왔으니 종족에게 고열량의 음식을 제공하는 우두머리가 대우받았음은 물론이다.

들판의 풀보다 사투 끝에 잡은 멧돼지를 무리 앞에 던져놓는 두목이 더욱 멋지지 않았겠나. 불을 피우고 해체한 사냥감을 구워 종족의 구성원에게 돌릴 때 우두머리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을 것이다. 배부른 원시인들은 이내 모닥불 주위에서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괴성을 지른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 아닌가. 아빠가 그릴 위에 고기를 굽는 현대인의 캠프장 풍경과 흡사하다.

당당한 듯, 그러나 조용하게 고기를 굽는 가장의 모습에서 가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육식 자체가 우리 몸에 나쁘진 않지만 문제는 양이다. 돼지 보쌈이 고열량을 내는 음식 1위에 선정됐듯, 삶으면 지방이 제거된다는 그릇된 상식도 문제다. 인간에게 허용된 육류의 양은 하루 탁구공 2개 크기만큼이다. TV 생존 프로그램에서 보듯, 직접 잡은 고기의 양이 적어 출연자들이 맛만 보지 않는가. 육류는 식욕을 돋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다.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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