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13人의 경영론

 

한국 경제를 어찌할꼬.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마는 법? 우려했던 대로 저성장이 고착화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 경제의 성숙화로 경제적 역동성의 저하는 불가피해 보인다. 출구는 있는가? 경영의 선수들인 CEO들의 육성을 들어봤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이 구조화하고 있다. 5분기째 0%대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분기 0.8% 성장해 회복 기미를 보이는 듯하더니 2분기에 다시 지난해 4분기 수준인 0.3%(한국은행 실질 국내총생산 속보치)로 주저앉았다. 이 때문에 우리 경제가 더블딥(경기 재침체)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대두하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걱정도 깊어졌다.

한은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가뭄 피해를 2분기 성장률 하락의 주 요인으로 꼽았지만 가파른 가계부채 증가세, 회복 조짐이 없는 소비 및 투자 심리, 수출경쟁력 약화 등 구조적인 요인이 기저에 도사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기업들도 안개 속을 지나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 3분기 매출 전망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전분기 전망치(114)보다 12포인트 낮은 102를 기록했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업들의 기대감도 뚜렷하게 낮아진 셈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정책 요인은 차치하고 기업 경쟁력 약화의 요인은 무엇인가? 저성장ㆍ저금리ㆍ저물가ㆍ고실업률ㆍ정부 부채 증가 등이 일상화하는 뉴 노멀 시대, 기업은 이런 환경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나? 지난 1년 간 ‘이필재의 人sight’에 소개된 13명의 CEO의 눈으로 되짚어 본다.

1. 기업 생태계 재편돼야

거대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 중인 중국 기업에 맞서려면 경쟁력 있는 벤처 기업이 많이 나오고 이들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벤처 기업 쏠리드의 창업 CEO인 정준 벤처기업협회장은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1%가 채 안 되는 대기업 숫자를 크게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이 전체의 10%만 돼도 중소기업이 거래 대기업의 불합리한 요구를 뿌리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이 늘어나게 하려면 관련 제도와 기업 생태계가 바뀌어야 한다. 정 회장은 “대기업ㆍ중소기업 간 공정거래가 강화되고 지적재산권 보호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해도 중기가 재판에서 이길 확률이 낮고 승소해도 벌금이 너무 적어요. 만일 속도위반 과태료가 1000원이라면 누가 과속에 신경을 쓰겠습니까?”

미국 스탠퍼드대 전자공학 박사인 그는 미국의 경우 경력직을 채용할 때 이전 회사에서 취득한 지식 중 지재권 침해 우려가 있는 것은 사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는다고 말했다. 타사의 지재권을 침해할 경우 타격이 크다 보니 회사가 마련한 자구책이다.

The SCOOP가 최근 단독 보도한 우리은행의 기술 탈취 의혹은 대기업의 중소기업 지재권 침해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우리은행은 중소기업인 비이소프트로부터 이 회사가 자체 개발한 개인정보 보호 보안 솔루션 ‘유니키’의 기술 자료를 다섯 차례 받고서 이와 유사한 서비스 ‘원터치리모콘’을 독자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언론매체들이 이 문제를 다루자 비이소프트를 상대로 소송을 개시했다.

 

中企 특허 빼앗겨도 저항 어려워

이 과정에서 우리은행은 비이소프트가 해당 기술을 개발하기 전인 2013년 초 원터치리모콘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말을 바꿨다. 비이소프트는 우리은행 측에 유니키 도입을 제안하기 전인 지난해 2월 특허를 출원했다. 우리은행은 원터치리모콘을 자체 개발했다고 발표한 직후인 지난 4월 특허를 출원했다. 특허 출원 시점 간에 14개월의 시차가 있다.

표세진 비이소프트 대표는 “국내에서는 중소기업이 특허 기술을 자체 개발해 대기업에 제안했다가 빼앗겨도 저항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송이 벌어질 경우 이기더라도 몇년이 걸린다. 영업손실, 재판비용 등을 감당할 길이 없는 중소기업으로서는 부도를 맞을 수밖에 없다. 그는 “아무리 부당해도 슈퍼갑에게는 덤빌 수 없는 게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지난 2월 벤처기업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회장은 “대ㆍ중소기업 간 갑을문화의 폐단이 심각하지만 기술ㆍ인력 탈취 문제로 대기업이 제대로 징계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니 대기업이 아이디어가 뛰어난 벤처를 돈 주고 사들이기보다 그 회사의 아이디어를 베끼려 드는 겁니다. 벤처가 대기업과의 특허심판에서 한번이라도 이긴 적 있나요? 우리나라 시장은 시장원리가 아니라 힘의 논리에 좌우됩니다.”

생태계 교란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남 회장은 “정부가 게임의 룰만 만들고 민간에 의해 자금이 선순환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게임의 룰을 정하고 마중물도 붓고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형을 되찾도록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2. 대중소기업 간 상생은 필수

기업 CEO는 아니지만 하버드 출신의 사회생물학자인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은 ‘불가사리론’을 폈다. 정부가 불가사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닷가 물웅덩이에서 최상위 포식자는 불가사리다. 그의 말을 들어 보자. “물웅덩이에서 불가사리를 계속 끄집어내면 그 밑의 가장 경쟁력 있는 2~3종만 살아남아 생물 다양성이 오히려 낮아집니다. 불가사리는 닥치는 대로 먹어치웁니다. 결국 가장 많이 걸리는 놈, 경쟁력이 있어 많이 살아남은 종이 불가사리의 주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불가사리가 있으면 역설적으로 경쟁력이 없는 종도 살아남게 되죠. 정부는 경쟁력 있는 특정 기업이 불공정하게 시장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아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살아남아요.”

글로벌 경쟁이란 결국 개별 국가의 기업 생태계끼리 벌이는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대ㆍ중소기업 간 상생이 중요한 까닭이다. 독일의 글로벌 기업 BMW코리아의 김효준 사장은 “한국의 자동차 부품 공급업체는 우리 회사의 파트너로 BMW의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는 한국 부품 제조업체와 상생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22개 BMW 1차 벤더사가 향후 3년 반 동안 독일 본사에 납품할 부품은 금액 기준으로 8조2000억원어치. 2ㆍ3차 벤더까지 합치면 BMW의 국내 벤더사는 약 200개에 이른다.
 

▲ BMW는 협력 업체와의 상생을 강화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빠르게 극복했다.[사진=뉴시스]

BMW의 판매법인인 BMW코리아 직원의 인사고과표엔 협력업체인 딜러의 수익성이 포함돼 있다. 딜러의 수익성이 좋아지면 BMW코리아의 수익성은 나빠질 수 있다. 자칫 ‘제살 깎아먹기’가 될 수도 있는 이 정책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진가를 발휘했다.

미국 자동차 빅3도 고전한 그 시절 BMW는 딜러와의 공고한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가장 빨리 실적을 회복했다. 이 정책의 제안자이기도 한 김 사장은 “상생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꾸준히 확대해 나간다는 점에서 BMW코리아는 좋은 기업을 넘어 훌륭한 기업, 존경 받는 기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곱씹어 볼 만한 이야기다.

3. 뉴노멀시대 화두는 지속가능성

현대 기업의 화두는 ‘지속가능성’이다. 지속가능성의 필요조건은 무엇인가? 최양하 한샘 회장은 “시장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은 시장 변화를 예측하고 나아가 시장을 바꿔놓는다”고 주장했다. “구글, 아마존 같은 회사가 좋은 예죠. 그런데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기만 해도 우수 기업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 회사 역시 시장의 변화를 쫓아가기에 급급해요. 하물며 시장이 바뀌는데 실기하고 못 따라가는 회사는 망합니다. 기업의 영화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습니다. 흥망성쇠를 겪게 마련이고, 망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최우선 목표죠.”

가구업계의 독보적 1위 기업 한샘을 21년째 이끄는 그는 “한샘이 판매하는 것은 가구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부엌, 침실, 욕실, 거실 등의 공간을 설계해 팔고 있다는 것이다. 한샘이 영위하는 ‘업業’을 주거환경 개선 사업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주거환경과 관련한 비즈니스는 다 하는 만큼 사업 영역이 넓다.

 

기업 최우선 목표 “망하지 않는 것”

“음식 장사, 옷 장사처럼 기본적으로 의식주 중 주생활을 커버하기에 산업 자체는 망하려야 망할 수가 없습니다. 아닌 말로 삼성전자는 망할는지 몰라도 시장 변화에 적응하는 한 한샘은 망하지 않습니다.” 스웨덴산 다국적 가구 공룡 이케아의 국내 진출은 국내 가구 회사에 흥망을 좌우할 수도 있는 메가톤급 변수다. 최 회장은 “대기업ㆍ협력업체 간 공조가 잘 이뤄지면 오히려 국내 가구업계가 상생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4. 미래 시장을 선점하라

대기업들은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쌓아 놓고도 몇 년째 투자를 하지 않는다. 고용 창출도 외면하고 있다. 기업경영평가사 CEO스코어에 따르면 30대 그룹의 3월 말 기준 사내유보금(자본잉여금+이익잉여금) 규모가 710조원이 넘는다. 1년 새 약 38조 원(5.7%) 늘었다. 대학 3학년 때 국내 벤처 1호 격인 비트컴퓨터를 창업한 조현정 회장은 “우리나라 기업은 미래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무인자동차 시대가 5년 안에 열릴 겁니다. 미국의 구글은 자동차회사가 아니지만 무인자동차를 개발해 112만㎞ 시내주행을 마쳤고 4개주에서 시내주행 면허증을 발급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현대자동차조차 이런 SW를 개발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준비에 실패하는 건 실패를 준비하는 것과 같아요.”

“디자인이 창출하는 혁신으로 우리나라 제조업의 사양화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디자인 구루’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는 자신이 디자인한 것 중 최고의 걸작을 꼽아 달라는 기자의 요구에 “다음에 선보일 작품”이라고 털어놓았다. “아직은 최고가 없다는 거죠. 날마다 기대에 차 하루를 시작하고 지금도 무엇에 꽂히면 잠이 안 옵니다.” 기업가정신이란 “여전히 배고프다(I'm still hungry)”는 공복증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5. 경영권 세습은 잠재 위협요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길이 열리며 삼성에 ‘이재용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재벌그룹의 시장 장악력, 경제 지배력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강해졌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라 총수자본주의를 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미엔 경영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경영자란 책임을 지고 이해당사자에 대한 의무를 다해 경영을 하는 거지 경영할 권리란 성립하지 않습니다. 경영권이란 한국에만 있는 개념일뿐더러 더욱이 경영할 권리가 세습된다는 건 그야말로 총수자본주의적 발상입니다. 북한의 권력 세습은 비판하면서 경제 권력의 세습을 당연시하는 건 난센스예요. 사유재산의 세습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경영권 세습은 지속가능할까?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은 “재벌 ‘경영권 세습’은 장기적으로는 지속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순혈주의를 고집해서는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는 “재벌 기업에서 일어나는 경영권 세습은 자연계엔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이라고 덧붙였다. 인간은 물론 기업도 자연계의 일부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최 원장은 “오너든 전문경영인이든 제대로 된 리더가 경영권 승계를 하는 게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능력 있는 자식이 태어나면 경영을 맡기고 자식이 능력이 안 되면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야죠. 도요타가 이렇게 전문경영인 체제와 오너 체제를 오갑니다.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경영을 하기만 해도 실패할 확률이 낮아집니다.”

6. 임금 불평등 해소해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 3월 현재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 대비 49.1%로 1년 전(49.9%)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정규직이 100원 받을 때 비정규직은 50원도 채 못 받는 셈이다. 정규직ㆍ비정규직 간 임금 간극은 비정규직 규모가 급증한 2000년대 초반 이래 좁혀지지 않고 있다. 원ㆍ하청업체간 임금 격차는 더 심각하다.

경제권력 세습 당연시하는 건 난센스

일례로 삼성전자의 경우 2ㆍ3차 하청기업 평균임금이 비정규직을 포함하는 본사 직원 평균임금의 30% 안팎이다. 한마디로 임금 구조가 왜곡돼 있다. 장하성 교수는 “세금 거둬서 하는 재분배보다 원천적으로 왜곡돼 있는 분배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국민소득 99.9%의 원천이 임금소득인데 임금으로 분배되는 부가가치의 비중이 지난 15년 간 지속적으로 줄어들었어요. 한국 자본주의의 화두죠. 기업이 더 많은 소득을 임금으로 분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필재 더스쿠프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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