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블랙 호크 다운 ❶

▲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전쟁의 민낯을 더 생생하게 전달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블랙 호크 다운(Black Hawk Down)’은 리들리 스캇(Ridley Scott) 감독이 2001년에 내놓은 작품이다. 이 영화를 감상하기는 적잖게 고통스럽다. 첫째, 배역 인물들을 식별해서 따라가기 거의 불가능하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미국 최정예 ‘레인저’와 ‘델타’ 부대 요원들이다. 죄다 까까머리인 것은 물론, 똑같은 전투복 차림에 헬멧까지 깊숙이 눌러쓰고 있다.

거기에다 전장戰場의 시커먼 그을음까지 얼굴에 뒤집어쓰고 피까지 엉겨 붙은 상태로 시종일관한다. 도무지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개성과 개인의 말살’이라는 전쟁의 몰인간성을 고발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된 연출일 수도 있겠으나 캐릭터 중심의 관람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화제의 대작 ‘진주만(Pearl Habor)’에 전격 주연으로 발탁돼 스타덤에 올랐던 조시 하트넷(Josh Hartnet)의 매력을 ‘블랙호크 다운’의 매트 에버스만(Matt Eversman) 하사에게서 기대하긴 어렵다. 그라임즈 일병(Grimes)으로 분한 이완 맥그리거(Ewan McGregor)가 ‘물랑루즈(Moulin Rouge)’에서 열연했던 배우라는 것도 실감하기 어렵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생명으로 여기는 할리우드 배우들로서는 매우 억울한 심정들이었을 것 같다. 촬영 중에 ‘못해먹겠다’고 스캇 감독에게 대들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둘째, ‘13일의 금요일’과 비슷한 피범벅의 엽기적 공포물을 유난히 선호하는 관객이 아니라면 실제 전투의 참상을 그대로 전달하는 영상고발 성격의 생생한 장면들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리들리 스캇 감독이라는 브랜드는 사실 그 이름만으로도 영상의 ‘엽기성’을 예고하고 있다. 스캇 감독은 SF시리즈 ‘에일리언(Aliens)’과 대작 ‘글래디에이터(Gladiator)’, 잔혹극 ‘한니발(Hannibal)’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운전병의 옆구리에 박격포탄이 박히고, 시가전의 병사 엄지손가락이 반쯤 잘려 덜렁거린다. 차라리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면 덜 끔찍스러울 것 같다. 시가전 중에 길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병사의 손을 다른 병사가 배낭에 주워 담고 뛰기도 한다. 정통으로 로켓탄을 맞은 소말리아 민병대원이 아예 폭죽 터지듯 완전 분해되는 만화 같은 장면도 등장한다. 엽기적 참상의 압권은 포격당한 미군 병사의 하체가 완전히 없어지고, 동료들이 그 반토막을 질질 끌어 구조하며, 반토막 병사가 딸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를 동료 병사에게 부탁하는 장면이다.

▲ 영화는 ‘개성과 개인의 말살’이라는 전쟁의 몰인간성을 그대로 보여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스캇 감독은 이미 ‘에일리언’에서도 반토막의 사이보그 인간이 우윳빛 피를 쏟으며 말을 하는 장면으로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더니, 이 ‘블랙호크 다운’에서는 아예 진짜 인간의 반토막을 연출한다. 이쯤 되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에서 한 병사가 자신의 떨어진 팔을 들고 해변을 어슬렁거리는 장면을 외면한 관객들은 엄살쟁이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다분히 시각적인 불편함일 뿐이다. 정신적인 불편함은 이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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