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의 Tax Class

▲ 이권경제와 부정부패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진정한 진보ㆍ보수정책은 나오기 힘들다.[사진=뉴시스]
주요 미디어에 늘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진보와 보수다. 과연 우리는 진짜 진보와 보수를 얘기하고 그에 맞는 경제정책을 내놓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전근대적인 이권경제와 부정부패, 고착화된 계급질서 등이 판치고 있는 상황에선 진짜 진보와 보수가 설 수 없어서다. 진보와 보수를 말하려면 ‘밑 빠진 독’부터 땜질해야 한다는 얘기다.

36개의 간단한 객관식 설문을 통해 자신의 정치성향을 알 수 있는 영문 웹사이트(www.celebritytypes.com)가 있다. 설문을 마치면 자신의 정치성향이 수평과 수직선이 교차하는 4사분면의 한 점에 표시된다. 수평선의 좌우는 정치적 좌우(진보 또는 보수 성향)를, 상하는 국가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인식(공산주의 또는 자유주의 성향)을 각각 보여준다. 이 사이트를 한국인이 이용해 보면 여러모로 색다른 체험이 될 것이다.

특정한 가설 형식의 설문에 ‘동의’ ‘약간 동의’ ‘동의도 반대도 아님’ ‘약간 반대’ ‘적극 반대’ 등 5점 척도로 대답을 하는 식인데, 대략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몇몇 현직 국회의원을 포함해 한국의 진보 지식인 상당수는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재정지출을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좋은 아이디어인가”라는 설문에 대한 답으로 ‘동의’ 또는 ‘약간 동의’를, “정부는 부자들의 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분배해야 하는가”라는 설문에는 극소수의 부자나 자유주의 학자들을 제외하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대부분 ‘동의’를 고를 것이다.

또 “자원배분에는 통상 정부보다 시장이 나은가”라는 설문에 대해서도 잠깐 고민은 하겠지만 ‘약간 반대’나 ‘적극 반대’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증세를 해야 하는가”라는 설문에는 ‘동의’를, “자유무역이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개발원조보다 나은가”라는 설문에는 ‘반대’를 각각 고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은행장이나 기업 최고경영자의 보수 상한을 정해야 하는가”라는 설문을 접하면 진보주의자라고 하더라도 잠시 망설일 것이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성향이 강한 사람’이나 ‘기분 내키는 대로 설문을 해치우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단박에 ‘동의’나 ‘약간 동의’를 고르기는 쉽지 않은 설문이기 때문이다.

국익 앞에 사라지는 정의

“외산 제품에 수입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자국의 일자리를 보호하는 좋은 방법인가”라는 설문에 ‘동의’하는 한국 사람은 의외로 많을 것이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 중 상당수는 민족주의자이고, 관세가 일방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무시하기 일쑤다. 보호무역이 자신들이 그토록 욕하는 재벌기업들을 튼튼하게 먹여 살리는 중요한 장치라는 사실 앞에서는 대충 얼버무릴지도 모른다. 한국사회의 자칭 진보주의자 상당수는 ‘국익’ 앞에서 ‘사회정의’라는 가치를 희생할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할 만큼 용감하기 때문이다.

“예산낭비적인 정부 프로그램이 너무 많은가” “주식투기는 다른 경제적 활동보다 덜 바람직한가”라는 설문에는 진보나 보수를 떠나 ‘동의’를 고를 확률이 높다. 한국인들 중 상당수는 주식투자(투기)만 하며 살아가는 회사나 개인들에게 반감을 갖고 있어서다. 그러나 증권회사나 투자자문회사에 다니는 친지에게는 전혀 반감을 갖지 않고 심지어 부러워한다. 자본소득이 나쁘게 보는 이유가 오로지 ‘내가 그것들을 얻지 못해서’라는 얘기다.

“노조는 이로움보다 해로움이 큰가”라는 설문에 진보주의자는 거의 100% ‘동의하지 않음’을 고를 것이다. 보수주의자들도 자신에게 ‘꼴통’이라는 접두사가 붙는 것을 꺼린다면 비슷하게 답할 것이다. 반면 크든 작든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 종업원들이 노조를 결성하려 한다면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너희가 어찌 감히 나한테 이럴 수 있는가”라며 격정을 토로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노동운동그룹 내에서 벼슬아치처럼 행세하는 몇몇 대기업노조 간부들의 행태를 좀 더 속속들이 아는 사람들도 자신이 진보든 보수든 답을 고르는 데 망설일 것이다.

“정부가 일자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실업수당을 줘선 안 되는가”라는 질문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은 이로움보다 해로움이 큰가”라는 설문에 선뜻 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최저임금이 저임노동의 가이드라인이 되는 면도 있어서다.

“정부가 무상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의료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진보나 보수를 떠나 대부분 ‘동의’ 쪽으로 의견이 기울 것이다. 다만 연간 수천명씩 배출되는 의사들과 제약회사, 보건의료계 공직자들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대다수 근로대중들이 부담해야 할 건강보험료가 10여년 만에 2배 가까이 올랐고, 정부가 조만간 이를 크게 상향조정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민감한 사람은 드물다. “평등이 경제성장보다 더 중요한가”라는 설문은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물음처럼 유치하지만,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한국인’이라면 꽤 비장한 표정으로 ‘동의’를 고를 것이다.

 
필자도 해당 웹사이트를 통해 정치성향을 테스트했다. 필자는 그동안 스스로를 매우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사람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테스트 결과, 약간 우파적이며 뚜렷한 자유주의 성향이 나타났다. ‘나이 먹으면 보수화된다’는 속설이 들어맞는 것일까. 단연코 아니다. 필자는 그동안 마르크스 원전에서 얻은 개념으로 진보의 잣대와 덕목을 정의했고, 그 잣대로 정부 보도자료에 제시된 통계와 정책을 재단했다. 국가가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좀 더 많은 몫이 배분되도록 생산요소들에 대한 분배(산업정책)와 소득재분배(조세재정정책)를 행하라고 촉구했다. 그런 모습이 꽤 정의롭게 보여 으쓱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뿌리 깊은 한국의 ‘이권경제’는 온통 더 많이 가진 자, 더 힘 센 자들을 위한 분배정책으로 점철돼 있다. 소득재분배를 위해 필수적인 투명한 소득파악은 핵심 기득권층인 관료들에 의해 철저히 차단돼 있다. 한국사회가 그런 구조임을 나이 마흔을 넘어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이권시스템 고쳐야

이권경제의 주축인 관료사회는 조선시대 ‘이호예병형공’의 이권시스템을 고스란히 계승해 국부를 분점하고 있다. 세금을 통제할 수 있는 관료사회는 대의민주주의의 장치인 의회도 세금으로 매수한다. 요컨대 국민들이 뽑은 대의 정치인들은 국민이 낸 세금을 주무르는 철옹성 관료집단으로부터, 그 세금으로 매수당해 국민 수탈을 돕거나 방조하는 기막힌 일이 자행돼 온 셈이다.

지금 한국의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부끄러워지기 전의 필자처럼 너무나 정의로운 자아에 흠뻑 도취해 있다. 밑 빠진 독인 줄 모르고 오로지 물(복지재원)을 많이 붓는 것이 숭고한 사회정의의 가치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밑 빠진 독부터 때워야 한다. 그걸 깨닫고 나면 용렬했던 풋내기 진보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상현 납세자연맹 정책전문위원 master@susta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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